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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Nov 09. 2019

아버지와 이별의 시간은 다가오고

아버지는 한 달 전 췌장암 말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그림이 나의 일상에 펼쳐지는 이 순간. 현기증과 함께 눈앞이 까매졌다. 죽음의 블랙홀을 향해 광속으로 돌진하는 아버지의 영혼은 내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놓고 있었다. 죽음은 잠깐 동안에 찾아온 것이지만 이별은 영원의 세계로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것밖에 남지 않았나요?... 외과적 수술, 항암치료도 어렵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너무 늦게 오신 대다가 간, 담낭, 췌장, 복막에 모두 전이가 됐고...” 끝말이 흐려짐과 동시에 서늘한 한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2년 전 전신 C.T 검사에도 암이 발견되지 않았고, 작년에 받은 검사에도 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암 판정. 그것도 말기라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일 거 같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 정도면 통계적으로 3개월 정도 봅니다. 경우에 따라선 급격히 상황이 악화돼 좀 더 일찍 떠나실 수도 있습니다. 우선 환자분 황달이 심해서 일단 그것부터 잡을 수 있도록 약 처방을 해 드리겠습니다.” 감정을 배제한 낮은 톤의 의사의 음성은 기계적으로 다가왔다.

함께 지내온 삶의 이정표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라져 갔다. 아버지와 함께 한 세월 가운데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 너무나 많았기에 이렇게 갑자기 이별할 순 없었다. 지금 이 시간이 무척 혼란스럽고 어렵다.


√ 나와 아버지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마냥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감정 표현이 없는 냉엄하고 혹독한 해병대 교관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 이상적으로 그려져 있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상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실 속 아버지 모습이 난 무척 싫었다. 아니 너무나 증오했다.

사랑과 인정, 칭찬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표정한 눈초리와 차가운 음성. 난 그때부터 내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와 혼란을 겪으며 그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까지 많은 눈물과 노력이 있었다.

가족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분노와 고립감들을 홀로 삭여가며 인생을 배워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리적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가족 구성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도 팽배했다. 내 마음속 가정은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다른 부모, 다른 가정환경들을 우리 집과 비교하며 내가 처한 현실을 비관하며 까칠한 청소년이 되었다. 완벽한 가정이라는 환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성인이 된 후에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원에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 상담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도 이때 자라온 토양과 깊은 관계가 있을 듯하다.

신음하는 세상의 고통에 함께 공명하는 가운데 나의 고통도 회복되는, 결국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아버지와 3형제

√ 아버지의 이면

아버지는 5세에 척추결핵에 걸리셨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가 귀했던 그 시절 3년간 사선을 넘나들던 고통이 온몸에 각인되어 있다. 당신께선 그 당시 할아버지가 의사가 아니셨다면 이미 일찍 죽었거나 허리 장애인으로 평생 불구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척추 하나가 녹아서 없다고 했다. 난 어린 아버지의 시선으로 그때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한창 아이들과 뛰어놀며 동심을 키워갈 시기에 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불안과 두려움을 호흡하며 살았을 것이다. 병원이라는 장소 또한 늘 산 자와 죽은 자가 교차되는 곳이기에 슬픔과 우울의 정서를 피부로도 느꼈을 것이다.

허리에 깁스를 한 채로 옴짝달싹 못하게 묶인 채 3년을 누워 지냈다. 대. 소변을 할머니께 전적으로 내맡긴 가운데 수치심과 무력감도 깊이 쌓여만 갔을 것이다. 답답하고 무료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신문지로 도배된 천장을 보며 한글이나 한자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외우는 것뿐이었다. 소년은 죽음의 공포, 병마 그리고 6.25 동란을 겪는 가운데, 그의 인생 전반부 스케치북은 온통 불안과 우울로 채색되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냉정함과 강박적 성향의 뿌리엔 당신 안에 숨어 울고 있는 ‘내면 아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림자 안에 억압돼 있던 요소들이 빛으로 통합되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비난, 판단, 평가의 모습으로 투사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면처럼 세상을 판단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죽음에서 살아난 아이는 악착같이 공부해 비상한 암기력과 수리 계산 능력으로 중소기업은행(現 IBK)에 입사해 기획실 차장, 최연소 지점장을 거치며 퇴직하실 때까지 성실한 삶을 이어가셨다.

질곡의 세월을 이겨낸 그 아이가 이제 가족과 세상에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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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서 오히려 가족을 위로하시는 아버지

오늘도 입원실을 찾았다. 앙상한 고목처럼 바짝 마른 아버지 모습을 보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아버지. 한 말씀을 이어가신다.
“어렸을 땐 곧 죽을 거 같아서 60세까지만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77세까지 살았으니 목표는 다 이뤘어.”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죽음까지 포용한 강인한 의지와 신앙심에 경외심마저 든다.
“다른 영적인 존재로 다시 부활하는 것이니, 고통만 심하지 않게 죽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배가 불러오고 점점 더 아프긴 해”

내면의 불안과 우울을 숨긴 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한 의지력과 생명력으로 한 평생 가족을 위해 내달려 온 삶의 이야기에 숙연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쳐놓은 틀과 울타리는 왜 이렇게 많고 높았을까? 그 틀 속에서 갇혀 아버지를 원망하며 보냈던 세월을, 그 울타리를 깊숙이 박느라 서로를 속박하고 상처를 주었던 그 세월을...

시간이 흘러 대학원에서 심리. 상담을 공부하며 아버지의 내면에 얼마나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넓어진 가슴으로 서로를 용서하는 시간들을 지금 함께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없다. 우리는 사물의 단면만을 보고 판단 평가할 때가 많다. 사물의 한 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하는 것도, 이것저것을 구분하고 시비를 가르는 일상의 이분법적 의식세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성숙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진정한 변혁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때 세상의 근원적 진실을 볼 수 있음을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배운다. 성경 말씀처럼 옛 자아가 죽고 진정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그날을 아버지는 기다리고 계신다.

어둠은 빛으로 이어지고 죽음이 있음으로 생명이 있는 우리의 모순적 대립의 질서에 아버지도 순응하시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실존적 한계를 초월해 비상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아버지를 통해 직관적으로 깨닫고 느끼는 요즈음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버지의 뒷모습.
하루라도 더 함께 머물고 싶다.
고맙고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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