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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Dec 10. 2020

허무를 넘기 위해서

   가을. 아버지는 떠났다.
   가을. 아이들은 찾아왔다.

나의 뜻과 상관없이 피고  () ()

운명이라는 대본 아래 삶과 죽음도 무대  배우들처럼 잠시 섰다가 퇴장한다.

숙명론자들은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기계처럼 정해진 운명에 순응해 가는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인생의 고통과 상실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켜있다.

니체는 “삶이라는 것은 심연 위에 걸쳐져 있는 밧줄과 같다. 건너가는 것도 힘들고, 돌아서는 것도 힘들고, 멈춰  있는 것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광대한 우주 시간에 비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사. 아침 안개처럼 찰나 같은 삶이지만
저마다 분투하는 삶의 현장은 천년 시름을 안고 사는  같다.

니체의 주장대로 운명의 허무를 넘어서 초인이 되기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1 동안 내게 펼쳐진 일들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자주 묵상하게 만든다.

아버지와 찍은 사진, 아직 지우지 않은 카톡 문자를 보며 부재하나 존재하는  같은 아버지를 만져본다.

 눈앞에 꼬물거리는 아가들을 보며 당신을 묘하게 닮은 얼굴을 느낀다.

세상에 던져진 인간은 피할  없는 불안. 죽음. 우울과 직면한다.

실존주의는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데 행사해야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고 말한 샤르트르에게 실존은 ‘인간이라는 개념이 정의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함을 말한다.

나에게 찾아온 실존적 문제도  안에 잠재된 생산적 힘에 따라 주체적으로 세계를 개척해 나갈것을 주문해 온다.

내가  담고 있는 상담영역에서도 실존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실존심리치료가 있는데, 실존주의 상담가들은 인간의 ‘영혼 간과한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인간은 단순히 본능적 욕동, 행동 모형에 의해서만 규정되고 이해될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아닌, 스스로 부여한 의미와 가치가 소중하다.

우리는 포기와 좌절이 있더라도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쇼펜하우어 니체도 찾지 못한 인생의 .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만물이 존재하는 생성과 소멸의 자연법칙과 허무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시도와 과정들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아가들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이 영혼을 두들겨온다.

내가 낳은 딸들을 안아보시고 떠나셨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도 노을에 물든 서쪽 하늘은 근원을   없는 회한을 자아낸다.

인간의 실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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