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희미해진 기억 너머, 그 속에 있는 것들

by 허수민


- 함께 들으시면 좋을 곡 : 윤지온, 남영주 - 느린 걸음





내 경우 어렸을 때의 기억들을 아주 세세한 정도로 기억하고 있진 않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얼마나의 기억을 어느 정도로 새기고 자라왔을까. 얼마나 기억하고 살아갈까. 혹은 살아가다가 저장 메모리의 용량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등, 어떤 크고 작은 차이들을 만나곤 할까. 달마다 혹은 해마다 무엇을 했는지 촘촘하게 짜인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등등을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어릴 적 나와 우리 가족은 아버지 회사 전근으로 인해, 적잖은 이사와 전학을 다니곤 했었다. 전학은 초등학교 때 두 번, 중학교 때 한 번.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는 초등학생 때 한 번, 중학생 때 두 번 정도. 초등학생 때 한 번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때 대개 전학도 같이 갔다.

정리하자면, 이사는 여수-의정부-여수-서울. 다닌 학교들은, 초등학교는 세 곳, 중학교는 두 곳. 그 오기로 고등학교는 어떻게 해서든 쭉 다니려고 했었다. 매해 이사 및 전학을 다녔던 사람들에 비하면 마냥 많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적지 않은 횟수로 여겨지는 이사와 전학이었던 것 같다.


문득문득 학창 시절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이사와 전학에 능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들도 있었다. 어릴 때의 나를 가볍게 떠올려 볼 때면,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부모님의 말에 설레어하는 내 모습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했고,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건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또한 생각보다 적응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단 느낌이 들려고 할 때쯤이면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잘 지내게 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중학교 친구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친구는 애들이랑 다 같이 놀았던 중학교 때가 정말 재밌었다고, 그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생 때만의 철없는 순수함, 때론 공부 걱정과 앞날 걱정에 근심이 서리더라도, 다 같이 놀며 웃곤 했던 그때의 기억이 내게도 정말 재밌었고 귀중했고 여전히 그렇다.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친구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보낸 중학교 3학년 때가 정말 재밌었고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와 만나 이 주제에 관해 대화하기 이전까진, 아주 많이는,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나란 사람의 특성인 것 치고는 적게 떠올리며 살아왔음을 그 순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각은 내게 적잖은 당황스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왜냐면 중학생 때, 그 친구와 나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며 올드 메모리, 그러니까 추억 타령을 가장 열심히 했던 건 다른 이들이 아닌 바로 나였다.

매번 카메라를 켜고선, 어야, 사진 찍자, 남는 건 추억뿐이야 하며 툭하면 사진 찍자고 유난을 피우던 탓에 친구들이 또 시작이라며 귀찮은 체하면서도 내심 찍어주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고맙고 다정한 친구들이었다.


이제껏 나는, 내가 자주 뒤돌아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마주친 생각들을 떠올려보면, 마냥 그렇다고만 할 순 없는 것 같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내 어릴 적 기억들을 좀 더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았을까란 의문이 잇따라 들더라. 친구와의 대화 이후, 처음으로 추억에 관한 나의 태도들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다.




모든 추억들은 각각의 어떤 면면들에 있어서 다 슬펐다. 어떤 건 나빠서 슬프고 어떤 건 좋아서 슬펐다. 슬픔이라 하여 다 같은 온도와 질감의 슬픔은 아니지만, 결국 울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내게는 같은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추억들은 어떤 면에서 잠 속에서 꾸는 꿈과도 비슷한 것 같다. 물론 그 추억들을 꿈속에서 꿔본 적은 없고 다른 점이 있다면, 추억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관련해 있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그래서 꿈보다 더 슬프기도 한 것 같다.


이것저것의 추억들을 무턱대고 마음에 새기고 간직했던 어린 날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추억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때론 그 자체로 아플 수도 있음을. 어쩌면 어린 날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게 슬프다는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슬퍼하고만 있기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게 먼저였기에, 아무리 해도 추슬러지지 않는 슬픔만 슬퍼하고, 삼켜지는 슬픔들은 부지런히 삼켜가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내가 덮어 두었던 기억 속, 되살펴 본 일부의 나는 이사와 전학을 다니며, 주변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적지 않게 울곤 했더라. 옮겨 온 장소에, 이전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상충될 때마다 그 괴리로부터 의연해지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필요해했더라. 그건 울음으로 만들어낸 강물을 타고 바다로 건너가 몇 차례의 폭풍우를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익숙해지는 건 없었다. 자라며 속으로 울 줄 아는 방법 혹은 좀 더 많은 울음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을 키우는 방법을 배웠을 뿐. 같은 강물도, 바다도 없었다. 이전의 영법은 새로운 물에서는 적용되지 않아서, 자주 나 스스로를 답답해하곤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어딘가 빈 공간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까닭은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갈 때마다 이전에 살았던 곳을 생각하면 슬퍼져서 되새겨보려 하지 않아 기억 위로 털어지지 않은 시간이란 먼지가 가득 쌓인 분진 상태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 동안, 선명하게 떠올려지는 여러 기억들 중 행복했던 기억들만을 주로 기억하고 이제는 희미해져서 내 안에서 마치 기억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절들은 대개 슬펐던 시간들만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특정 기억들을(가령, 내가 잘못한 것이나 소중해서 꼭 기억하고 싶은 것 혹은 감사한 기억들 등) 제외하곤 좀처럼 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추억은, 기뻤거나 슬펐거나 지나온 시간 앞에서 그 자체로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즉, 희미해진 기억 속에 아픈 추억들만 있는 게 아니라, 기쁘기도 했던 경험들도 함께 뒤섞여 있음을.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라 하여, 그런 시절들이 나의 생 곳곳에 퍼져 있다고 하여, 그 기억들에 마냥 슬픔만 있지 않는다는 것임을.



이러한 자각들은 내게 슬픔과 감사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살아가며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주위 환경들을 받아 들여가는 과정들이 내겐 몇 번을 겪어도 언제나 낯설며, 살아가다가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지나온 시절에 관한 추억들 앞에서 슬퍼하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이제는 안다. 이런 부분에 능하다고 해서 그게 성숙과 직결된 것이 아님을. 또한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시간이 흐르며 슬픔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거나 어떤 기억이든 번쩍 들어낼 마음의 힘이 보다 나날이 자라날 것임을.


물론 결코 내 생각만이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바라고 싶었다.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젠 내가 이런 나 자신에게 좀 더 덜 당황하고 좀 더 인정해 줄 수 있길. 언제나 그랬듯 잘 적응하리란 것을 믿고 기억할 수 있기를.


희미해진 기억 속에, 혹은 기억나지 않는 시절 너머에 대해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너머 속에는 분명 당신의 슬픔만 있던 건 아니었을 거라고, 아무리 슬퍼만 보이는 시간 속에도 분명 행복한 기억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이 빛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사진 출처 : Unsplash



@숨 : 부족한 글이지만 그럼에도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각..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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