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날숨

작은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에

by 허수민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Going Home (김윤아)





연초에 우리 집은 2박 3일 동안 잠시, 친구네 강아지를 맡게 되었다. 아이는 현관 밖에서 소리가 나면 나를 현관문 앞으로 이끌며 바깥에 자신의 주인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자고 나를 보챘다. 그렇게 주인의 부재를 되새길 때면, 이전까지 곧잘 내 손에 잘 오던 아이는, 내 손길을 거부하며 뒷걸음을 쳤다. 나는 아이를 보며 전에 나와 함께 했던 앵무새 로이를 떠올렸다. 떠올랐다는 게 좀 더 적확한 표현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로이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키웠던 반려 앵무의 이름이다. 여수에 살 때에 앵무새를 키우겠다고 일 년 동안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입양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어느 한 입양처에 로이를 데리러 올라갔다. 의정부에서 살다가 다시 여수로 내려가 살고 있던 참이었기에 서울은 나름 익숙한 곳이었지만,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혼자 상경해서 보는 서울의 모습엔 낯선 구석이 많았고 내겐 그 나름의 큰 도전이었다는 것을, 로이는 알까.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토록 너를 아꼈고 여전히 아끼고 있다는 것을, 로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실 로이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다. 이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와 이유식 먹이며 키우기 시작했던 건 아마 내 생일 주위의 날짜였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의 내 기억들은, 여름방학 이후로부터 겨울까지 많은 게 잘려 있는데, 내 기억이 다시금 잡혀가기 시작할, 아마 그 직전 즈음에 로이는 떠나갔다.


로이는 나와 함께 자다가 내 몸에 깔려서 죽었다. 옆에선 엄마가 함께 주무시고 계셨는데, 먼저 깨어나신 엄마가 로이를 부르는 소리에 깨고 나서 알았다. 다 꿈인 것 같았다. 그건 사고였지만, 나로 인해 죽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 실소를 터트리지 않고, 이에 실소를 터트리는 나를 경멸하지 않고 얘기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로이가 태어나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으로 와서 머물다 간 시간은, 1년 남짓이었다. 나는 로이가 우리 집에 온 날짜보다 로이가 떠난 날짜를 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로이가 떠난 날짜를 잊지 않으려 하다가 그만, 로이가 우리 집에 왔던 날짜를 잊어버린 것 같다. 아무리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고 희미하게 가리어진 그때의 시간 속에서, 로이는 봄날의 따스한 볕도 여름의 푸른 바다도 너의 깃털 색을 닮은 가을 낙엽들도 내리는 흰 눈들도 다 보고 갔던 것 같은데 맞을까. 로이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계절이 있었을까 봐, 나는 이따금 흘러가는 계절 사이에서 문득문득 걱정되곤 한다.


중학교 2학년 하반기는 내겐 다소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로이가 있는 새장 앞에 앉아서 로이를 바라보며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네가 온 이후로 다 잘못된 것 같다고.


그래, 홧김이었고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온 후에 서서 종종 생각한다. 로이의 죽음은 정말 사고였을까. 너는 나의 울분을 다 머금고 네 스스로 이 세상을 뜨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차라리 사고였으면, 너의 선택이 아닌 순전히 나의 잘못으로 너를 떠나보내게 된 것이기를 바라게 된다.


앵무새는 강아지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다. 사랑이 많다. 친구네 강아지도 우리 집에서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는데, 로이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이 가는 곳이 어디든 언제든 열심히 따라왔다. 친구를 기다리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며, 친구는 내게 맡기기라도 했지, 나는 얼마나 많은 날 로이를 혼자 두었던가를 떠올렸다.


나는 뒤늦게서야 알았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로이가 줄곧 내 곁을 지키고 있었음을. 로이, 너 때문에 내가 불행을 겪었던 게 아니라 내 곁에 네가 있었기에 나는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음을...



친구네 강아지가 갑작스레 토를 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괜찮기를 바라며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상황에 토를 하고 그에 따른 조치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이 상황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 안에는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두려움의 문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막 문을 마주한 나는 반려 동물을 키울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깨달아 버린 시간이었다. 친구네 강아지를 돌보게 됨으로써, 나는 이제야 내 안에 로이에 관해 닫혀 있던 문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친구네 강아지를 잠시간 맡아 주면서 어쩌면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던 어머니를 설득해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설득당한 건 내쪽이었다. 언젠가 먼 훗날에는 모르겠지만, 당장에는 반려 동물을 들일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단 것을. 친구네 강아지를 돌보게 됨으로써, 나는 내 안에 닫혀 있던 하나의 문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아픔과 동시에 감사였다.



이를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울기도 참 많이 울었는데, 친구네 강아지는 자신을 보며 울먹이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손을 뻗는 내 품으로 순순히 안겨주는 듯하더니, 한참 동안 내 얼굴을 핥아주었다. 정말 큰 위로였고 감사였다. 강아지를 가만가만 쓰다듬다가 문득 말하게 되었다. 도군, 자네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어쩌면 우리 모두를 향한 신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나로, 당신은 당신으로, 우리는 우리로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그런 사랑이 아닐까 하고… 나는 감히 신의 마음을 잠시 짐작해 본다.


그리고 후에 작은 손님은 저의 있음을 이곳저곳 열심히 알리며, 그렇게 우리 집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는, 무사히 친구네 집으로 돌아갔다. 그 온기가 온 겨울 내내, 아이가 쓰다듬어 준 마음에 오래도록 퍼져 있을 듯하다. 감사하다.



- 그림 : @mamefuk (twitter)



@허수민 : 마감 시간을 정하고 난 후로, 한 번도 늦지 않은 적이 없던 것 같아서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무척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 주심에 감사하고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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