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들으면 좋을 곡 :[ASMR] 시간을달리는소녀 | 유난히 평화롭고 맑은 날 | 변하지않는것
( https://www.youtube.com/watch?v=bbyVgYjteqw&t=1401s )
음악은 내게 있어 오랜 고마운 벗이다. 내 스스로 나 자신과 대화하기 어려운 날이면 나는 종종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물론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한다고 해서 항상 그런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때론 걷거나 운동을 하거나, 기도를 하기도 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며 그 중 하나로 음악이 있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접했던 악기는 피아노였다. 이후로 바이올린, 드럼, 오카리나, 하모니카, 기타, 베이스 등등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치고 있는 기타와 피아노를 제외하곤, 다 학원 악기나 친구 악기를 빌려 아주 조금씩 배웠던 터라 연주할 수 있다기 보단 접했던 적이 있었다가 내 경우에는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다.
피아노를 처음 치기 시작했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들이 가방 매고 영어 학원으로 걸어갈 때, 나는 피아노 학원에 갔다. 우리 세대 때는 보통 그 나이쯤이면 부모님들께서 나서서 먼저 영어 학원을 보내기 마련이지만, 억지로 시키면 안 된다는 걸 깨달으신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택하도록 두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선 그때 강제로라도 영어 학원을 더 일찍 못 보내신 걸 여전히 후회하시지만, 나는 감사한 존중이었다고 생각한다. 덕택에 삶을 살아내는 데에 큰 힘이 되는 벗을 얻었기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나간 콩쿨은 꽤 큰 대회였는데 특상을 타게 되면 그 다음 본경연을 치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나는 특상을 수상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 경연은 치루지 않았다. 특상으로 만족하겠다 했다. 상 탈 생각이 없었거니와, 아마도 방금 경험한 경연을 또 치룰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경험 삼아 준비했던 대회였는데, 심사위원들이 앞에 있는 무대에 섰을 때 줄곧 연습해왔던 곡들이 머릿속에서 새하얘지며 멀어지는 걸 쫓아 달리듯 치게 되었고, 연주 도중도중 실수를 하게 되면서 다시 되돌아 치는 순간 망했다 하며 반복해서 하던 절망의 경험은 피아노를 좋아해서 시작했고 배워갔던 내겐 깨나 아팠던 것 같다. 그때가 내가 무대 체질은 아니라는 걸 처음 깨달았던 때인 것 같다. 그 뒤로도 대회를 나갔긴 했지만, 경연 대회의 분위기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선생님들께선 간혹 피아노 쪽으로 진학하는 걸 권하셨지만, 잘하고 날고 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도무지 내가 피아노로 무언갈 해낼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들만큼 경쟁 속에서 피아노를 지킬 만큼, 그러다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고 아파하는 걸 견딜 수 있을 만큼(그 또한 한 과정이지만) 그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매일매일 꼬박꼬박 학원에 다녔다.
그렇게 다니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허락받게 된 태권도 학원을 다녔지만, 후에 시간 상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 중 하나만을 택해야 했고, 그토록 겨우 다닐 수 있게 된 태권도 학원 대신 피아노 학원을 택할 만큼 피아노 치는 걸 정말 좋아했지만, 피아노 학원은 6학년 때까지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브로는 부모님이 나를 피아노를 끝까지 시키시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더라. 집에서 내가 피아노 칠 때면 시끄럽다고 그만치라고 하길래 그런 생각하고 있는 줄은. 칭찬 한 번이라도 해주지 싶은데, 종종 ‘이 곡을 완곡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던 게 나름의 칭찬이었나 싶다. 짜식. 하지만 완곡했는데도 아직 주고 있지 않다. 듣고 있나, 형제여.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빠는 아마 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는데 공부 때문에 부모님으로 인해 그만두게 된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내 선택이었다. 왜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까먹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는, 새로운 학원에 적응하는 일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동안 잦은 전학을 다녔지만 전학이 익숙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적응하고 나면 그런 때가 있었냐는 듯이 무척 잘 적응해버렸지만, 전학 후 학기 초가 지나고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생겨도 그런 시기가 오기까진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전학 후 학기 초 매 3월은 학교를 다녀오고난 매일 울었다.
의정부에서 여수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피아노 학원도 옮겨야 했는데 의정부에서 살 때 내내 다녔던 학원이라 정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새로운 학원에 적응하는 게 유독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왜였을까 생각해보니, 피아노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새로운 학원에 연습하러 와서 전에 다녔던 학원이 생각나서 자꾸만 울게 되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이건 까먹었던 기억이었는데, 그랬었구나, 싶다.
그런 시간동안 내가 주문처럼 자주 되뇌던 생각은, 나는 알면 알 수록 괜찮은 사람이고 그렇기에 적어도 2학기 때는 애들이 내 진가를 알 거다라는 생각이었는데, 생각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새로운 학교에서 매번 1학기 동안은 지독히도 고역이었다. 이사의 대부분이 원해서 한 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건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에 나름 설렘을 동반하는 일이기에 강하게 거부한 적도 없었다. 다만, 단순히 새로운 곳으로 전학 내지 이사간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곳에 적응하는 것엔 많은 차이가 있어서 힘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힘들다며 마냥 투정부리기엔 부모님도 어쩔 수 없던 부분이었고, 그래도 이따금 학교 가고 싶지 않은 날이 왕왕 있었는데, 아파도 학교가서 아프고 태풍이 불어도 얼굴까지 잠기지 않는 이상 학교는 가야 한다라는 강경 등교파인 부모님이셨기에 되도록이면 혼자 참곤 했다.
그때 내게 변함없이 든든한 벗이 되주었던 이가 음악이었다. 또한 믿음의 주문처럼, 시간이 지나니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잘 적응하게 되는 등, 돌아보면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은 그만두었지만, 피아노는 계속해서 쳐왔고, 지금까지 치고 있다. 그때의 배움들과 매일 같이 치진 못했지만 줄곧 쳐왔던 피아노의 시간들이 있어서, 다행히도 치고 싶은 곡이 있다면(어려운 곡이 아니라면-다 어려워 보인다는 게 함정이지만) 연습을 통해 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간혹 악보 없이 코드를 바탕으로 자율 연주를 하게 될 때도 있는데, 나는 안다. 내가 피아노를 자율적으로 연주한다기 보다 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을. 연주라고 불리기엔 다소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물론 무엇이 연주이고 연주가 아닌가는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많은 부분 내가 자율적으로 치는 피아노는 속된 말로 뽀록이라고 생각한다. 왼손의 코드를 이루는 음계를 따서, 오른손으로 칠 때 적절히 마음이 뜻하고자 하는 바대로 끼워 맞추는 쪽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물론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친다고 해서 그들의 연주를 연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뽀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경우에만 한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통 내가 피아노를 자율적으로 칠 때면, 나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기 위함이거나 나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이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치곤 하는 편이기에, 유독 듣기에 좋았던 날은 잠시 내가 친게 아니라 하늘이 내 몸에 잠시 머물며 나 대신 나나 다른 사람을 위로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신들린 연주를 한다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봐주어서 꽤 잘 쳤다고 생각되는 경우의 대부분 내 힘만으로 해낸 게 없었다는 뜻이다. 왜냐면 자만하는 순간 바로 그 다음 연주곡들을 치지 못했던 경우가 허다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감사했을 때, 내 힘만으로 한 것이 아님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음악은 참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이따금 내 안의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공간에 놓이게 되거나 내가 쉬이 다가갈 수 없던 내 마음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음은, 음악에 깃든 저마다의 넓다랗고 따스한 마음들이 담겨 있기에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사랑과 감사를 담아 충심으로, 사랑하는 재이에게
Happy valentin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