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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Sep 19. 2022

퇴직금을 털어 1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샀다

로망 하고 살자

16년 만의 퇴사는 일생일대의 큰 결정이었다. 초중고대학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마흔 중반의 나이에 퇴사를 할 때까지 냉정히 말해 남의 대본에 이끌려 살았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한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 따위 끝도 없는 타인의 대본.


나름 운이 좋았다. 남의 대본이었을 망정 인생의 커다란 굴곡도 좌절도 없이, 지금의 모습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던 무색무미의 삶은 마흔을 넘긴 시점부터 마치 "지금까지 남의 대본으로 공짜로 살아온 대가를 치러야지?" 라며 찾아온 빚쟁이 같은 모습으로 계산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하필 그 시점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의 한 구절을 만난 일은 치명적이었다. 대체 산다는 게 뭔가? 현타가 왔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라는 냉소적 태도를 일부 지니고 살았던 터라 '100년도 못 사는 주제에 1000년이라도 살 것처럼 아등바등하는가?' 라는 개똥철학은 더 확고해졌다.


가까운 지인의 별세 소식을 들려왔다. 유독 큰 의미로 다가왔던 이유는 병명 때문이었다. 확률상 5%도 안된다는 담낭암. 지인은 진단을 받고 6개월도 안되어 세상을 떴다. 마지막으로 기억했던 모습은 건강한 중년 그 자체였으므로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질 수 있나? 당혹스러움과는 별개로 묵직한 한 방이 더 있었다. 


약 5년 전 발견된 담낭용종, 마침 1cm 이상 유의미한 상태로 자라나 제거 수술 권유를 받은 터였다. 5%의 확률이라는 담낭암의 공포가 지인의 소식을 계기로 스물스물 자라나 나를 덮쳤다.


3년 전 이맘때, 그러니까 추석이 지나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무르익던 어느 날, 집 근처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지인의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수술 일정을 잡은 터였다. 처음으로 누워본 수술대에서 나는 95%의 확률보다는 5%의 확률에 더 가까웠는지 모른다.


세상은 어쨌든 확률대로 돌아가는 거였다. 단순 용종으로 판명되고 회복기간을 거쳐 3일 만에 퇴원을 했다. 돌아가는 택시 안, 올림픽대교 저편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마음대로 살자. 


그해 겨울, 나는  인사발령과 함께 내가 이끌던 조직문화팀에서 쫓겨나 마케팅팀으로 발령이 났고 나는 한 달 만에 회사에서 시행한 희망퇴직 프로그램에 신청해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그렇게 첫 번째 내 대본은 성공적으로 쓰였다. 


퇴직금과 위로금이 들어왔다. 막상 큰돈이 들어오니 하고 싶은 것이 또 생겼다. 최상급 로드바이크를 사고 싶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유독 자전거 욕심이 있었다. 군에 있으면서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을 그대로 모아 전역 후 새 자전거를 샀던 일을 계기로 매년 자전거를 사고팔고를 되풀이하며 점점 눈이 높아졌다.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었지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용돈은 한정적인 터라 신품은 언감생심이었다가 기회가 왔다 싶었다.


"나 자전거 한 대 사고 싶은데?"

돈이 입금된 그날 밤,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아내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사,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돈도 들어왔잖아."

"꽤 비싼데? 괜찮겠어? 우리 이제 생활비도 아껴야 할 텐데..."

"사, 얼마가 됐든 당신이 애써서 벌어온 돈이잖아."


16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나와 처음 하는 일이 고작 자전거를 사는 일이라니. 이성적인 제3자가 들었다면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너는 이제 실직자, 백수라고." 혀를 끌끌 찼겠지만, 무엇보다 내 욕망이 먼저였다. 죽음(?) 의 고비를 넘기고 [창백한 푸른 점]에 살면서 이름도 형체도 없는 존재감으로 스러지기 전에 지금 현재를 잘 살기로 했으므로.


드디어 마음을 굳게 먹고 인근 바이크 샵을 찾았다. 그간 수도 없이 중고를 사고팔며 얻은 나름의 정보와 노하우로 물건을 살폈다. 


"이거 요즘 잘 나왔습니다. 휠셋까지 풀카본인 데다 새로 나온 신형 전동구동계 까지, 완전 무선 S사 아시죠? 기가 막힙니다."

매장에 진열된 로드바이크들은 그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자신을 사달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특히 주인이 추천한 제품이 탐났다. 비싸서 못 산다던 바로 그 브랜드.


"가격은..."

"870만 원입니다."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아무리 목돈이 들어왔어도 기껏 중고거래에서 오가던 돈의 수배 이상의 가격을 보니  굳은 결심이 흔들렸다. 그러나 짐짓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아 그렇군요. 조금 더 구경해볼게요."

결국 그날은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시시각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포기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야 지금 아니면 못사! 지금을 즐기라구.'

'아니야. 당장 수입도 끊어질 텐데 900에 가까운 자전거가 웬 말이야.'

'허 거참. 그냥 질러.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3일간 그 상태였다. 결국 악마의 손을 잡기로 하고 3일 만에 매장을 다시 찾았다. 역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스타벅스를 찾았다. 아이스라떼 한잔을 시키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또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더 고민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지르고 후회하는 게 낫다.


"사장님! 그때 그거 주세요!"


마침내 900짜리 자전거를 손에 넣었다. 한 번 빗장이 벗겨지자 그다음은 수월했다. 자전거 격에 맞춘다는 명분으로 자전거  GPS속도계(G사), 져지(R사), 헬멧(H사), 클릿슈즈(F사) 등등 필수용품들도 맞추고 보니, 웬걸 10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렇게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한 내 인생 최대의 지출을 감행했다(물론 집을 제외한 최대 지출은 자동차를 샀을 때지만 가족과 함께 이용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제외한다면 말이다.). 마침내 3일간의 갈등과 고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생각보다 훨씬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금전적, 물질적 욕망은 가장 낮은 수준의 욕망일 뿐이다. 처음의 만족감이 끝없이 유지되지도 않는다. 다만 내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워킹좀비 수준의 현대인이라면 적정한 수준에서 자신의 욕망을 찾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를 행하는 일 자체가 중대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어선 안되지만, 자신의 내적 욕망과 만족도 없이 타인의 욕망과 만족에 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저 차원의 욕망을 찾고 만족하고 그다음 차원으로 높여가며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손에 들어온 비싸서 못 산다는 자전거는 어떻게 됐을까? 6개월 정도 신나게 타고, 중고로 넘겼다. 비록 감가가 되어 금전적 손해는 일부 있었지만, 그 또한 어떤가? 그 사이 느끼고 얻은 감정들로도 차고 넘친다. 일종의 투자였다고 생각하면 감내할 만하다.


우리는 크고작은 내적 욕망앞에 얼마나 빈번히 고민하고 머뭇거리고 아예 마음을 접어왔을까? 


마흔 중반에 내 대본을 쓰고 감행한 삶, 아직 나는 굶어죽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1000만 원의 지출이 오롯이 매몰비용으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너무 계산하고 복잡하게 따지지 말자.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따르는 일. 그 과정에서 얻는 가치는 생각 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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