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여행담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늘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난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서 '추구의 플롯'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플롯이라고 소개한다. 주인공이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들로, 탐색의 대상은 대체 주인공의 인생 전부를 걸 만한 것이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맨다. 그보다는 덜 오래된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주인공들은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추구의 플롯의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결말이다. 주인공은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 훨씬 중요한 어떤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귀환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긴 여정을 통해 그가 진짜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에는 무심하다는 것, 제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케에 도착한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영화 <에브리바디 파인>의 주인공 프랭크 구드는 데이비드, 에이미, 로버트, 로지의 아버지다.
프랭크는 41년의 결혼생활을 함께한 아내 진 엘렌을 8개월 전에 먼저 여의며 집에 홀로 남게 된다. 그는 그녀의 장례식 이후에 첫 연휴를 앞두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 모일 것을 기대하며 파티를 준비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사정을 들며 갑작스레 방문을 취소한다.
프랭크는 수 십 년간 전봇대 전기배선 코팅 작업을 하며 화학 비닐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폐가 손상된다. 그런 이유로 의사인 친구 에드는프랭크에게 당분간 무리하기보다는 집에서 정원을 돌보며 휴식하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크는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뉴욕에서시카고와 덴버 그리고 라스베가스까지,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프랭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프랭크는 마지막 버스를 놓쳐 어두운 새벽에 트럭을 얻어 타기도 하고, 어설프게 한 노숙자를 돕다가 괜히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뉴욕에서 고대했던 데이비드와의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그리고 에이미와 로버트, 로지는 모두 프랭크에게 각자 무언가를 어설프게 숨긴다.
광고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 에이미는 남편 제프와 결별했지만, 황급히 제프를 다시 집에 불러내서 프랭크 앞에서 어색한 연기를 보인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알고 있던 로버트는 사실 타악기 연주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일정에 여유가 있음에도 핑계를 대며 프랭크를 서둘러 로지에게 보낸다. 라스베가스에서 댄서로 활동하는 로지는 로버트를 가장 환대하지만, 자신의 아이 맥스를 친구의 아이라고 프랭크에게 소개한다.
자신의 기대와 다른 현실에 프랭크는 혼란을 느낀다. 긴 여행에 지친 프랭크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태풍 앨리스(진실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로 인해 비행기의 도착 시간은 지연되고, 결국 프랭크는 기내에서 의식을 잃는다.
에이미와 로버트, 로지를 만났을 때 프랭크는 매번 묻는다.
행복하니?
(Are you happy?)
영화에서 프랭크는 아이들을 깜짝 방문하여 놀라게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위의 질문이야말로 프랭크가 여행을 떠난 진짜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저마다 아무런 문제 없이행복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막내딸 로지는 프랭크에게 몇 가지 사실들을 이야기해 준다. 어머니와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모든 게 완벽하지 않으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 어머니가 주로 들어주는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는 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아버지는 강요를 많이 했다는 것.
이에 프랭크는 답한다. 나는 그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서 자리를 잡기까지 아버지 프랭크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에 매진하는 동안, 어머니 진 엘렌은 항상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신경 써왔다. 어머니 진 엘렌이 네 명의 아이들과 아버지 프랭크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이다.
진 엘렌은 항상 프랭크에게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고 말했으며,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너희들을 위해 희생을 하기에 아버지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진 엘렌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은 좋은 소식만 전하고 나쁜 소식은 숨기는 방식으로 프랭크를 상대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의의 거짓말 때문에 오히려 프랭크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에이미와 로버트, 로지 모두 프랭크의 질문에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한 대답은 아니라는 것을 프랭크도 어렴풋이 인지한다.
폭풍우가 쏟아지는 공항의 수하물 센터에 프랭크의 케리어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고, 프랭크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에이미, 로버트, 로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여전히 데이비드는 보이지 않는다.
걱정하실까 봐 여러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아이들에게 프랭크는 말한다.
"너희 중 누구든 내게 걱정 끼칠 수 있어, 난 너희 모두의 아빠잖니." "엄마와는 숨기는 게 없었잖니, 내게도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구나."
그러면서 여행에서 못 만난 데이비드의 소식을 알려달라고 한다. 지금 데이비드는 어디에 있으며 언제 볼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프랭크에게, 결국 에이미가 어렵게 입을 연다. 하지만 진실은 프랭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데이비드는 죽었다. 에이미가 데이비드의 소식을 전한 후 로버트는 덧붙인다. 데이비드는 문제가 많았고 전혀 행복해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계속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프랭크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여전히 폭풍우가 내리는 밤에 프랭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데이비드, 넌 크면 뭐가 되고 싶니?"
―"저는 화가가 돼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화가(painter)라니, 화가는 벽화나 그리는 거지. 벽화에는 개들이 오줌을 갈길 뿐이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예술가(Artist)가 돼야 한다. 열심히 할 거지?"
―"네, 아빠"
―"이 아빠를 자랑스럽게 해 줄 거지?"
아버지 프랭크는 당연히 누구보다도 자신의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큰 부담과 압박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병상에 누워있던 프랭크는 꿈에서 어린 시절의 데이비드를 재회한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서 죄송하다는 데이비드에게 프랭크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예술가가 돼도 좋겠지만 화가가 돼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고 말하는 데이비드에게, 프랭크는 네가 무얼 하든 난 널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답한다.
프랭크와의 대화에 만족해하며 엄마 곁으로 떠나려는 데이비드를 프랭크는 잠시 불러 세운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넨다. 어느새 어른의 모습으로 바뀌어있는 데이비드는 마찬가지로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답한다.
그렇게 꿈에서나마 프랭크와 데이비드는 서로를 용서한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프랭크는 자신의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 질 엘렌 구드의 묘비석 앞에서 고백한다.
"아주 값진 여행이었어. 뭘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만, 이제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거야.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나도 행복하거든. 더 이상 아이들이 어린애가 아니란 걸 받아들여야지. 뭘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겠지, 자신들의 길을 찾아갈 테니까. 가끔씩 당신이 우리 아이들에 대해 뭔가 자세히 얘기할 때 좀 더 귀 기울였어야 했는데, 난 그저 흘려 들었어."
이후에 크리스마스에 에이미와 로버트, 로지가 모두 집에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당신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길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얼마 후,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인 프랭크의 가족은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과 음식들을 준비한다. 거실에서 로지는 예전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보며 추억을 떠올린다. 주방에서 프랭크는 칠면조를 타이머에 맞춰 오븐에서 꺼낸다. 그리고 41년간 아내가 칠면조를 너무 오래 구웠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하자 아이들은 웃는다.
성대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앞두고 프랭크는 아내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당신 가족 모두가 자신들의 삶을 헤쳐 나가고 있어. 아이들이 이룬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거야. 그리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난 아주 정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모두 잘 지내고 있어."
(Everybody is Fine)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에브리바디 파인>는 기본적으로 '아버지 프랭크의 여행기'다.
인생은 여행이고, 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는 언제나 가족이다. 그만큼 소중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가족이다.
프랭크를 바라보며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가족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행복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스스로에게 모든 것이 괜찮다(Everything is fine)고 말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