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2부. 작가로 생존할 수 있을까
내가 저술을 업으로 삼게 된 이유는 회사를 다니다가 네 번째 갑상선암 수술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첫 수술을 받은 이래 세 번째 재발이었다. 그 일이 아니더라도 당시 나는 근무시간 중간에 빠져나가 매일 수액을 맞아야 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신뢰하는 상사가 무조건 회사를 그만두고 몸부터 챙기라고 했다. 수술을 받고 몸을 추스르고 나서도 나는 재취업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처럼 하던 일간지 칼럼 연재의 비중이 커지면서 결국 차선책이던 저술업을 본업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우연의 일치가 결합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저술업의 경력이 쌓이면 그만큼 일반적으로 작가로서의 고유성이 짙어진다.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할까, 혹은 계속 새로운 모험과 변화를 꾀해야 할까. 이 두 가지는 병행이 가능할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을 나보다 훨씬 앞서서, 그리고 훨씬 성공적으로 해온 한 친구는 말했다.
"프리랜서에는 두 가지 노선이 있어. 하나는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하고, 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한테 다 맞춰주고 잘하는 타입. 또 하나는 아무리 그게 인기와 돈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자기가 안 맞으면 단호하게 하지 않는 타임. 당연히 일을 위한 인맥 관리 같은 것도 하지 않지. 너는 이 둘 중에 어떤 노선으로 갈지 결정해야만 해."
작가로서 커리어가 길어질수록 당시 친구가 해준 그 이야기가 귀에 맴돌았다. 나는 초기에는 얼마간 전자의 입장을 취했지만, 가면 갈수록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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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일은 가급적 해보려고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나와 맞지 않으면 단호하게 하지 않고, 조금 더디더라도 내가 보여지고 싶은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고, 내가 이해받고 싶은 방식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독자를 조금씩 늘려가는 방향. 현재로서는 나를 그렇게 운영해나가려고 한다.
대중성과 예술성. 저술업자의 선택의 영역이자 균형 잡기의 문제일 것이다.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지는 자신의 성향과 마주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글에는 그 사람만의 색채가 묻어나기 마련이며 그래야만 글에 매력이 생긴다. 대중성을 취하더라도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예술성을 간직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속 가능한 작가 생활을 위한 토대, 꾸준히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은 마르지 않는 내적 충동이다.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야 우리는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다.
글쓰기를 위한 내적 충동은 말 그대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재가 주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재료들로 글을 써야 오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하나의 세계가 있어야 하고 자기 세계관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저술업을 계속한다면 이것'만'으로는 모자라 보다 많은 것을 새로이 흡수해야 하겠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내 안에서 나와야 한다. 나의 내면에 항상 남아 있는 어떤 명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가꿔나가고자 하는 것이 글쓰기를 위한 내적 충동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충동을 가졌는가. 이를 확인하려면 계속해서 글을 쓰는 수밖에.
지속적으로 작가 일을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오늘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루틴으로써 글을 쓰는 것이고 내가 쓸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은 하지 않는다. 그냥 쓰는 것이다. 루틴은 다른 말로 집중력이다. 언제 어디에 갖다 놔도 쓸 수 있는 힘, 뭐라도 쓰는 것. 글이 조금 별로여도 상관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로 못 쓰겠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직업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오늘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기분도 별로고······. 영감이 떠오르지도 않고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도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작가다. 인내를 '고통'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인내심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작가업의 가장 중요한 과정을 진심으로 좋아해야 한다. 그 과정이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혼자, 과묵하게 글을 쓰는 일이다.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저술업자의 기본 덕목이다.
좋아하던 무언가를 업으로 삼게 될 때 항상 마주하는 딜레마는 하기 싫을 때도 그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과 변수 속에서도 무조건 결과물을 내야만 한다면 그 과정이 즐겁기만 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오랫동안 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 그 과정은 혼자, 과묵하게 글을 쓰는 일이다. 이 고요한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가. 이 역시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이 세상에는 작가 말고도 좋은 직업이 정말 많다. 사실 작가처럼 효율 떨어지고, 요령이 1도 안 통하는 직업이 없다. 솔직히 아주 가끔은 폼 날 때가 있고 남들이 어쩌다 한 번쯤은 멋지다고 생각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고되고, 결과가 예측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자주 오해받거나 욕먹고, 기약 없는 미래에 마음속에는 지옥 바람이 자비 없이 분다. 정신과 육체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은, 오죽하면 최고 단명하는 직업일까.
그러니까 내 마음이 약간 애매하다 싶을 때는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치는 것이 좋겠다. 책 같은 것은 쓰지 않고도 이 세상과 나 자신한테 이로울 수 있는 방법은 부지 기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어도 글을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이런 절실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나로서도 말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늘고 길게 망해보기로 한다.
요령은 전혀 통하지 않고 완전 비효율적이다. 그런 면에서 저술, 글쓰기는 참으로 정직한 업종이기도 하다. 지극한 성실함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래서인지 저술, 글쓰기를 업으로 권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심지어 유명한 작가들 조차 대부분 작가가 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덤벼드는 이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보다.
죽어도 글을 쓰고 싶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실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가. 아직 이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는다.
일단은 그저 지금 쓰고 싶은 글,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는 것. 그것에만 집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