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패스란 어느 놀이공원에서 파는, 놀이기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타게 해 주는 추가 권리 상품의 이름이다.
한국은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고, 한국이 겪는 문제들을 다른 나라들도 조만간 따라 겪게 될 거라는 진단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매직패스가 문제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의 경우, 이는 이 사람들 마음 속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 깔려있는 공평함에 대한 감각이 자극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본다. 자본주의를 떼어놓고 봤을 때, 유치원생에게 줄서기를 가르친다고 하면 통상 누구나 똑같이 줄을 서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다. 간식을 나눠 먹을 때도 공평하게 똑같이 나눠먹게끔 할 것이다. 서로가 평등하고, 더 귀한 애, 더 천한 애 같은 것은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로 나가면 시장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는 차등이 있게 마련이고, 매직패스에 대한 거부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근거해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한다. 매직패스에 대한 거부감을 비판하는 입장인 이런 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애 팔아서 공산주의적 궤변을 정당화하다니, 역겹다" 고 말하는데, 공연히 어린이를 "파는" 게 아니라, 난 이 문제를 논할 때 어린이를 끌어들이는 건 실제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직패스에 대한 거부감이 자유시장의 논리 (사람들이 더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자본주의 논리) 라는 특수한 윤리적 논리를 습득하기 이전의 차원에 있는 인간의 감정적 반응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차원은 자라면서 시대별로 세상을 지배하는 각각의 특수한 논리를 배우고 수용하기 이전에 있는, 더 근본적인 것이고, 이런 차원은 우리가 어린애를 대할 때 더 주목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들을 대할 때, 예컨대 유치원에서 점심시간이 되어서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이나 세면대 앞에 줄을 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무작위로 위치가 정해지고 (물론 이것또한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며 이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해 모종의 룰을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키가 크니까, 힘이 세니까, 더 예쁘니까, 앞으로 보내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 평등하다고 가르치니까. 이 논리가 똑같이 적용된 결과가 한 사람당 한 표씩 주어지는 민주주의의 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시장의 논리는 인간 삶과 인간 사회의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이와는 다르게 구성된 것이고,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놀이공원은 영리를 위해 만들어진 사적 장소고, 장사하는 곳이니, 장사의 논리,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게 맞다는 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공평함에 대한 감각도 중요하다. 자유시장의 논리를 무한히 확장하여 돈이 많은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고, 돈이 적은 사람의 목숨은 덜 중요하다고 해도 되는 걸까? 난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도 그런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특권층 자녀가 이런 저런 수작을 부려 군역을 치르지 않으면 욕을 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위한 투표에서도, 돈으로 표를 사게 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시장의 논리와는 별개이면서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이런 룰들은 평등과 공평함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감각이 존중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직패스를 아이들에게 "자본주의 논리" 를 가르칠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류의 의견들을 보면, 그리고 그런 의견들이 많은 지지를 받는 걸 보면 씁쓸하다. "매직패스 사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라" 라는 댓글을 보면서, 바로 이런 논리가 한국 사회의 불행도를 높이고, 출생율을 낮추는 데 기여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출산 관련 뉴스 기사에 나오는 인터뷰들을 보면 많은 젊은 사람들이 내 자식에게 충분히 잘 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를 단념한다고 말한다. 이게 결국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매직패스 사주는 아빠가/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