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노리티의 비애
미국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또 반대로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받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같은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면,
인종차별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 살면서 처음으로 ‘minority’라는 위치가
얼마나 불편하고 이상한 감정인지 체득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서 있는 느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일을 얼마나 잘하든 상관없는 틀.
“아시안이니까 원래 성실하지.”
“일은 잘하는데 말(표현)은 잘 못하잖아.”
그 말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나'라는 존재도
‘한국인’도 아닌 다수의 그룹인 ‘동양인’이 되어 있다.
더 답답한 것은, 이 사회가 그런 minority중 흑인 인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반면에 동양인의 인권과
경험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다는 점또한 답답함의 일부인것 같다.
2월은 흑인 인권의 달이였다. 나는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교육 차원에서 흑인들이 어떻게 노예제에서 벗어났는지,
어떤 차별과 학대를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매주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해 가르친다.
그 수업을 모든 동양인 학생들과 히스패닉 학생들이 함께 듣고 있을 때,
나는 오히려 더 큰 답답함을 느꼈던것 같다.
2월은 동얀인들에게 'lunar new year'설날 이 있다.
중국도 대부분의 동양 국가들이 긴 공휴일을 갖는데
동양인 학생들이 많았음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다.
그럼에도 더 속상한 건 많은 동양인 학생들은
매우 높은 학비를 전액 부담하며 학교를 다닌다.
어떤 가정은 학비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기도 한다.
물론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나눌 수는 없고,
동양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무시(?) 는 정당하지 않은 듯 했다.
교육의 큰 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중’의 대상에서 빠진 사람들은 없는지,
교육 현장 스스로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동양인의 인권에 대해서 대접받는것이
비현실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내용을 영어로 투서 한장 못날리면서
한국인들만 보는 한국어로 쓰는 내가 한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는 이유는
나중에 나에게 기회가 생겨서
만약 언젠가 이 모든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한국인 학생 뿐 아니라 다문화 학생들의 인권이 존중받는 동시에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견뎌야 할 것’이 아니라
‘감사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람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아쉬움도 배움이되길 바람하며 메모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