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 밖을 나가면 아무도 널 이해 못 해줄지라도
학생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유독 말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늘 반복해 오던 이야기, 학교의 교육 철학과 프로그램, 수업 외에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과 운동 과목들까지. 손에 익숙한 설명인데도 이상하게 말이 엉키는 날. 오늘이 그랬다.
중학교 2학년 학생과의 인터뷰는 여느 때처럼 차분하게 시작되었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또래의 아이들처럼 수줍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고, 아이의 말 사이사이에 질문을 더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늘 그렇듯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교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뜻밖의 질문을 꺼냈다. “이 학교는 흑인 여성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해 주고 있나요?”
질문 그 자체도 놀라웠지만, 이 질문을 중학교 2학년, 아직 7학년인 아이의 입에서 들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 학교는 모든 학생이 인종, 성별, 정체성과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다름이 특별함이 될 수 있도록, 교실 안과 밖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가치를 배워가고 있죠..”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어진 시간은 엄마와의 인터뷰였다. 학생의 엄마는 스포츠 기자였다. 1990년대, 흑인 여성을 스포츠 기자로 채용하는 일이 드물던 시절에 현장을 뛰어다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그 꿈 하나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막상 현장에 들어가 보니 여자도 많지 않았고, 특히 흑인 여성은 더더욱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땐 인권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었어요. 다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일을 하면서 알게 됐죠.”
나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전 학생과 나누었던 대화를 엄마에게 전했다.
“7학년이지만 정말 생각이 깊은 아이인 것 같아요. 오늘 저에게 학교가 흑인 여성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거든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딸이 셋인데요. 오늘 인터뷰 본 아이 말고도 위에 언니랑 아래 동생이 있어요. 큰딸은 레즈비언이에요. 흑인 여성에, 레즈비언이라면 사회가 이 아이를 얼마나 쉽게 판단하겠어요. 부족한 딱지가 여기저기 붙겠죠. 그래서 저는 늘 아이들에게 말해요. 밖에서 어떤 불편함과 모욕을 겪고 오더라도, 이 집 문을 나가기 전까지, 이 집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우리는 무조건 서로를 응원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요.” 그 말은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집 안에서의 무조건적인 지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그 당연함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 또한 얼마나 자주 조건을 붙이고 있는지. 기대에 맞아야 사랑받고, 기준에 도달해야 인정받는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쏟아지는 말들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가.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많은 외로움과 결핍은, 당연히 사랑받아야 할 관계 안에서조차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들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 안에서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 그날, 나는 학교의 교육 철학보다도, 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깊은 교육의 의미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의미 있지만, 종종 이렇게 부모의 삶을 잠시 들여다보는 순간이 나에게는 더 큰 울림으로 남는다. 아이의 질문은 그 집의 이야기를 품고 있고, 그 질문은 다시 학교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나에게 되묻게 한다.
그렇게 오늘의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한 학생의 질문과, 한 부모의 대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