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대학교 총장이셨어요

미국 사립학교의 이해도

by 정주부


미국 사립 기숙학교의 역사와 전통은, 백인 엘리트 사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출발에 대한 자부심이 여전히 학교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좋은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교로 이어지는 루트’를 은근히 동경하고, 전통과 혈통,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듯, 사람 사는 사회는 어느 곳이나 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반드시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선민의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인터뷰를 본 학생은 백인 여자아이였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다고 알려진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평소에는 승마를 즐기며,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였고, 어머니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미국 사립학교를 졸업한 뒤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왔고, 어머니 또한 사립학교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했다. 다만 본인이 당시 대학교를 진학 할 때, 할머니가 총장을 지낸 대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동안 집안이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다며 웃으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집의 가족들은 매일 최소 한 시간에서 길게는 세 시간까지 ‘리딩 타임’을 갖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작가이다 보니, 이 집에서 책 읽기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하나의 문화라고 하였다. 단순히 내용을 읽는 것을 넘어서, 작가가 어떤 표현을 왜 사용했는지, 이 문장은 어떤 구조로 완성되었는지, 문장 하나하나를 해부하듯 읽으며 함께 토론한다고 했다.


미국에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 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국제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학생 구성의 다수는 오늘 인터뷰를 보았던 이 학생과 같은 배경의 아이들이다. 전통적인 백인 중산층 이상, 사립학교를 대물림하듯 거쳐 온 가정의 아이들. 오랜 세월 동안 이 학교들을 지탱해 온 가장 ‘기본값’ 같은 학생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학부모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에서 학생들을 인터뷰하시게 되었나요?” 돌려 말하면, “어떻게 ‘우리 같은 아이들’을 평가하는 자리에 계시게 되었나요?”라는 뜻에 더 가까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질문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백인 엘리트의 성지’ 같은 미국 사립 학교에서, 학생들의 원서를 리뷰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양인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질문은 대부분 비꼬거나 무례한 톤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가깝다. 오늘 인터뷰를 했던 학부모 역시 할머니가 대학교 총장이었고, 동생은 사립고등학교에서 언어학부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려주었다.

입학처에서 인터뷰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학생의 성적이나 시험 점수뿐 아니라, 학생이 자라온 배경과 가정의 분위기, 어떤 환경 속에서 지금의 가치관이 만들어졌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데 있다. 물론 입학처가 이런 ‘좋은 배경’만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배경을 아는 일은, 학생 한 명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 만났던 그 학생과 가족은, 이 학교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사립학교의 전통과 가장 닮아 있는 가정의 모습이기도 했다.이 낯선 위치가 때로는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이 학교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더 확장되어야 하는지도 함께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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