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제일 공부 많이 한 여자
“우리 딸이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공부를 많이 한 아이예요. 얘가 대학을 가면,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가는 거죠.”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서였을까, 아니면 그런 마음으로 삶을 버텨온 우리 할머니 세대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한 문장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오늘 인터뷰한 가족은 과테말라에서 이민 온 가정이었다. 10학년 지원자인 이 학생은 다섯 살 때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두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민을 결심했고, 이후 재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실하게 공부해 정부와 민간 단체에서 선정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그 덕분에 사립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중학교 재학 중 학교에서 주최한 여러 행사들을 통해 다양한 사립학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 덕분에 3년 동안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학생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했다. 현재는 공립학교에 재학 중이며, 틈틈이 하키와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학생은 놀라울 만큼 성숙했고, 유머 감각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학업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곧이어 어머니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딸의 교육에 대한 간절함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딸이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가 대학을 나오면,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 나온 여자예요. 아니, 처음으로 대학을 나온 사람이에요.”
전 세계를 통틀어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 동부의 전통 있는 사립학교들은 학교의 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과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적극적인 홍보와 네트워킹을 이어간다. 해외로 직접 나가 행사를 열고, 오랜 역사 속에서 쌓아 온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미국의 전통 있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알린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학교들은 교육은 공평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문을 열기 위해 애쓴다. 한때 미국 입시 전반을 흔들 만큼 논란이 되었던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을 배려하는 전형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성적이 안되는 학생을 뽑는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출발선에 서지 않았음에도 성적이 비슷하거나 더 나은 성취와 태도를 보여 주는 학생이라면, 그 학생은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육기관이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면, 이러한 제도는 한 학생의 인생뿐 아니라 한 가족, 나아가 사회 전체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없지는 않다.
꽃보다 남자에 등장했던 금잔디의 ‘사회배려자 전형’처럼 말이다. 가난은 감출 수 없기에, 이러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교육기관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바라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육이 특정 계층의 특권으로만 제공된다면, 그것은 암묵적으로 사회적 계급을 영구히 고착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술과 사회의 진보로 인해 그 경계가 조금이라도 더 허물어질 수 있다면, 선의의 경쟁은 늘어날 것이고, 그것은 가진 사람에게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에게도 결국 더 건강한 사회로 돌아오지 않을까.
입학 인터뷰를 마치고, 그런 생각이 오래 남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