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회의 땅
오늘 인터뷰했던 학생은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나와 케냐 난민 캠프에서 지냈던 학생과 그 가족이었다.
이 학생은 우리 학교에 중학교 1학년으로 지원하는데, 소말리아에서 피난 나왔을 당시 학생은 한 살이어서 대부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보통 학생들은 인터뷰를 위해, 또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학교를 방문하지만, 오늘 인터뷰한 이 학생은 학교를 방문할 수 없어 학교 점심시간을 이용해 줌(Zoom)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학생의 밝은 성향과 영리함은 매우 인상 깊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교육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학생은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는 좋은 학교가 없어, 어머니가 직접 리서치해서 좋은 재단의 학교를 찾았다고 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데 자동차로 거의 두 시간이 걸리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통학시켜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안전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셨고, 학생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학생과의 인터뷰가 끝난 후, 학생 아버지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소말리아의 내전은 모든 국민을 병들게 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소말리아를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여러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케냐로 가는 것이었다. 케냐에 도착해서 총에 대한 공포에서는 벗어났지만, 먹을 것이 없어 근처 농장에서 음식을 훔쳐 오며 힘겹게 지냈다고 한다.
미국에는 난민들을 위한 영주권 프로그램이 있는데, 운 좋게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 와서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두세 개의 일을 병행했고, 그러면서도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다. 졸업 후에는 편입까지 하여 은행에서 텔러(창구 직원)로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부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족과 함께 미국에 오기까지 그의 노력도 컸겠지만, 동시에 신의 은총이 함께했다고 느껴졌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든,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우리 학교의 장학 제도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이 성실히 공부하면 사립학교 및 여러 재단의 장학금을 받을 기회도 많고, 한국에서는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외국인이 은행에서 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도 대조적이다.
그들의 밝은 태도처럼 밝은 미래가 함께하길 바라며, 우리나라도 교육 제도만큼은 더욱 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