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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n 15. 2020

01 생에 첫 아르바이트

비닐 지퍼백 속 $40

| 호주에서 첫 아르바이트 구하기


호주에서는 만 15세가 넘으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알바 하러가야 돼"고 말하는 선배들이 어쩜 그리 어른스럽게 느껴졌는지 아르바이트에 로망이 있었다. 정확히는 카페에서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우아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것이었지만 내 생에 첫 아르바이트는 중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말레이시아 음식점 무거운  그릇을 나고 온갖 잡일을 하는 홀서빙이었다.


립적인 호주 친구들은 중학교 3학년 생일 지나면 아르바이트 용돈을 벌기 시작했다. 나 또한 5월내 생일이 지나자마자 이력서를 작성해서 식당과 카페에 돌아다니며 무작정 제출했었다. 자율 형식의 생애 첫 이력서. 정말 허접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작성었다.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카페 체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꿀잡'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당시 최저시급 $14 (당시 호주 환율이 미국 달러만큼 높아서 한화 약 1만 4천 원)을 제대로 맞춰줬고 진급도 할 수 있었다. 론 성인 기준 최저시급이었고 미성년자는 $2-3 정도 적었다.


스타벅스를 포함한 여러 곳 지원했지만 헝그리잭스에서만 면접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날 포함해서 3명이 매니저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고 각자 지원동기와 장점을 얘기했다. 뻔한 얘기들의 나열이었다. 난 긴장을 너무 많이 했는지 유학생활 5년 차였지만 어색한 발음으로 마지막 어필을 했다.

"I can do cleaning very well"

청소는 기본이라며 전혀 통하지 않았고 집으 돌아가서 이불 킥만 했다. 그리고 예상했듯이 합격 연락은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은 탈락이었다.


돌아다니는 가게마다 이력서를 제출하면 매니저한테 전해준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보는 앞에서 그냥 아무 곳에나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그래도 착한 직원들은 재 채용 중이 아니라서 연락을 안 할 수도 있다고 사실대로 말해줬다. 담이지만 이때 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나중에 내가 하던 곳에 이력서를 들고 오는 구직자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채용계획이 있는지 없는지 미리 알려줬고 이력서도 소중히 한 곳에 아두었다.


그렇게 몇 달간 늘 이력서 5장은 기본으로 들고 다니며 수시로 여러 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12월이 되었을 때, 집 근처 쇼핑센터 있는 말레이시 음식점도 이력서를 냈다. 작정 가게로 들어가서 채용 여부를 묻고 이력서를 전달해주는 것은 여러 번 경험했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음날 낮, 지원했던 말레이시아 음식점에서 트라이얼(하루 일하고 나서 채용여부 결정하는 것)하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면접도 없이 바로 작하는 것에 의아했지만 첫 출근의 긴장과 설렘으로 전날 밤을 뜬 눈으로 웠다.


트라이얼 하게 된 음식점이 있는 쇼핑센터 (출처: https://blog.adonline.id.au/knox-city-shopping-centre/)



| 르바이트는 음이라


상의 유니폼은 지급해준다며 바지만 검은색으로 입고 오라고 했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주말 점심이라서 식당은 이미 손님들북적이고 있었고 사장님도 정신없어 보였다. 매니저인 베트남 직원한테 날 가리키며 오늘 온 트라이얼이니까 가르치라고 해서 난 그렇게 정신없이 끌려다녔다. 영어가 매끄럽진 않았지만 최대한 섬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려 했고 이에 응답려 나도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매니저가 갖다 준 유니폼은 태권도 도복 재질의 7부 상의와 검은색 반 앞치마였다. 호주의 12월은 한여름으로 유니폼을 입자마자 35도 이상의 더위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실내외 모든 곳이블이 어서 에어컨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


주방에서 음식이 준비되면 종이 울렸다. 2000년대 시절의 초등학교 교탁 위에 있는, 치는 순간 온 교실이 정적이 되고 선생님으로 시선이 쏠리는 그 마법의 종과 같았다. 맑고 경쾌한 종이 울리면 모든 홀 직원이 일제히 주방을 쳐다봤고 치껏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직원이 음식을 서빙했다.


음식은 테이블 번호 종이와 함께 나와서 어느 에 서빙하는지는 알았지만 문제는 이 메뉴가 뭔지 몰랐다. 말레이시 음식이 낯설기도 했고 메뉴판을 외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중국인 주방 직원분들이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알려주었다.


'백빈 비프 누'


무슨 메뉴인지 전혀 몰랐지만 바쁜 주방에 되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난 들리는 대로 말하기로 했다. '비프 누'는 '비프 누들'임을 알았지만 '백빈'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손님께 수차례 '백빈'이라고 했고 뒤늦게 그것이 '블랙빈'임을 알게 되었다. 손님들이 음식을 보고 '블랙빈 비프 누들'라고 나한테 알려줬을 때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손님은 답답해하지 않고 되려 오늘 근무 첫날이냐고 물어보면서 조금만 익숙해지면 잘할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L' 발음을 자체 묵음 처리하셨던 주방 직원분의 알아듣기 힘들었던 발음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애석하게도 실수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음료수는 홀서빙 직원 얼음컵과 함께 바로 갖다 주는데 얼음컵을 까먹기도 했고, 그릇을 치우면서 주방과 홀을 넘나들 동선이 꼬여서 직원들과 부딪히고 그릇을 깰 뻔했어서 주눅 들었다.


그래서 실수를 만회하려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사용했던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에 싱크대에 담가 두는데 남은 음식물이 떠다니는 더러운 물로 가득했지만 무거운 그릇을 깰 순 없어서 깊은 싱크대 바닥까지 조심히 내려놓다 보니 유니폼 소매가 젖어버리기도 했다.


물 한 모금 마실 여유가 없었던 5시간이 정신없이 흐르고 사장님은 날 불렀다.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올 수 있는지 스케줄을 조율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달간 한국 놀러 가기로 되어있었고 제출이력서에도 1월부터 근무 가능하다고 적어뒀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정을 설명드렸다. 다행히도 1월에 돌아오면 스케줄을 다시 맞춰서 일하자고 해주셨다. 그리고 트라이얼로 일한 5시간은 미리 알려준 시급에 맞춰 투명한 지퍼백에 넣어주셨다. (이후 정식으로 일할 때는 흰 봉투에 주급과 n분에 1 한 팁을 함께 넣어주셨다.)


원래 유니폼과 앞치마개인이 보관하고 세탁하는 것이었지만 그날 받았던 옷은 반납하고 1월에 다시 올 때 받아가기로 했다. 부디 그때는 넥라인에 구멍이 없는 걸로 받았으면 했다.



| 시급 $8, 지퍼백 속 $40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미리 엄마와 약속했던 장소로 갔다. 먼저 도착해있던 엄마가 고생했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잠깐 앉아있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가게에 사람들이 많았다고 마치 영웅담을 들려주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는 5분간 쉴  없이 떠들었다.


생에 처음으로 겪었던 5시간의 격한 노동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엎어졌다. 엄마는 얼른 씻으라며 내 등을 찰싹 내리치면서 엉덩이 주머니에 꽂혀있는 작은 지퍼백을 발견하고는 이게 무엇이냐며 바로 빼냈다.


$20짜리 지폐 두 장, 총금액 $40.


위에 언급했듯이 당시 최저시급은 $14이었지만 그건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세금을 내는 텍스잡 파트-타이머로 난 해당되지 않았다. 많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돈을 벌 수 있음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는 내게 5시간을 무더위 속에서 힘들게 음식 나르고 $40 받았냐며, 아르바이트계속할 건지 물어봤다. 내가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렇게 해서 언제 부자 될 거냐며 비웃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엄마의 눈빛에 대견함과 애썼다는 따뜻한 위로 꼈기 때문이다. 부디 착각이 아니었기를.


힘들게 처음으로 번 돈인 만큼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한동안은 작은 비닐 지퍼백 속 $40을 내지도 않고 아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내 방 서랍 한 켠에 고이 넣어두었다.


하지만 정작 어디에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솔트앤비네가 칩스 (처음엔 경악한 소금과 식초 맛 감자칩이지만 진짜 중독성 갑이다), 팀탐 이런 군것질에 다 썼던 것 같기도 하다. 허무하긴 하지만 엄마 잔소리 안 듣고 마음껏 군것질했으니 나름 의미 있는 지출이었다고도 생각된다.

호주 달러 $20(출처: http://m.blog.daum.net/sydjay/3476591?tp_nil_a=)


아직도 $20 지폐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 생 기억에 남을 순간


어떤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게 된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 더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낯설고 새로운 도전을 접하며 내가 한층 더 성장나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뿌듯했다.


어른들의 용돈이 아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벌었던 첫 아르바이트는 비록 아르바이트에 갖고 있는 로망을 산산조각 냈지만 가 어른이 된 기분에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다.


처음 하는 일이니까 요령도 없고 실수도 잦고 많은 에피소드가 생겨나고 더 오래 기억 속에 남는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다양한 일을 했지만 가장 열정적이었고 틋했던 말레이시아 음식점에서의 첫 아르바이트는 절대 못 잊어버릴 듯하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의 첫 아르바이트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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