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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May 14. 2018

새벽 2시 라디오를 듣는 시간

왜 잠들지 못하는가-故 신해철에게

마왕의 시간     


우리 시대와 호흡하며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아티스트이자 라디오 DJ 신해철을 새벽이면 종종 떠올린다. 그의 별명은 ‘마왕’이었다. 이 별명은 그의 특별한 색채에 잘 어울렸다. ‘마왕’은 낮의 세계가 아니다. 마왕은 밤의 카리스마다. 어떤 밤인가? 그 밤은 몇 시를 가리키는가? ‘마왕의 시각’을 그가 오랫동안 진행했던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던 ‘새벽 2시’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새벽 2시’는 정말 새벽인가? 그냥 ‘02시’라고 해야 하지 않나. ‘02시’는 아침을 예비하는 새벽이 아니라 밤이, 정확히 말해서 ‘도시의 밤’이 비로소 본령을 드러내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02시에서 0은 시작의 숫자가 아니라 어떤 텅 빔, 도시적 어둠의 한복판을 지시하는 기호다.


그가 진행하던  02시의 라디오는 특별했다. 그는 록그룹의 리더였고 말수가 적지 않았지만, 밤 10시 시간대 라디오의 아이돌 DJ가 지닌 친구같은 수다스러움과는 다른 스타일의 말을 했으며, 자정 시간대 전문 아나운서 DJ의 부드러운 감성을 흉내내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 방송은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았다. 시청자 위주의 편성이 아니라, 진행자의 독특한 아우라가 발산하는 불편함과 해방감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02시의 라디오방송은 낮의 쇼윈도가 아니라 밤의 마네킹, 인적 끊긴 밤거리, 빛보다 그림자가 많은 도시 뒷골목, 어떤 고독한 바의 실루엣 같은 느낌이었다. 도시의 마천루 사이 어디 지하실에서 흘러나오는 아마추어 방송, 공중파 주파수대에 우연히 잡힌 해적방송 같았다.

 


02시의 DJ는 비현실적으로, 아니 비일상적으로 자주 ‘낄낄’거렸으며 직설적이었다. 그는 자기 뜻을 우회하는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제멋대로 얘기하는 듯했으나 무례하지도 않았다. 일상성의 경계를 넘는 시각의 해방성이 종종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시각이 충동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똑같이 찾아 올 ‘오늘’과 ‘내일’의 편안함을 약속하거나 위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서점가의 ‘힐링 멘토’가 아니었다. 02시의 DJ의 목소리는 일상성으로의 복귀와 소시민적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달콤한 수면제가 아니라, 전형적인 생활인의 취향으로는 반죽되지 않는 까칠하고 돌출적인 그 무엇이었다. 02시의 라디오방송은 ‘스탠다드’가 아니다. ‘마왕’은 그런 점에서 잘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마왕'은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野性)이며, 밤의 실체로서 야성(夜性)이 드러나는 02시에 부합하는 이름이었다.  


          

첫 차를 기다리지 않는 자들의 심야식당     


02시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 방송을 듣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잠들지 못하는가. 그들은 네다섯 시간 후부터 시작될 아침 출근 준비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는 중인가.


여기 하나의 풍경이 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포착한 ‘나이트호크(Nighthawks)’라는 풍경이다. 유리창 내부는 심야식당이다. 세 명의 손님이 바에 둘러 앉고 가운데 주인이 있으나, 그들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대화는 없다. 그 중 한 명은 우리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중절모를 쓴 이 손님의 몸은 반은 밝은 빛으로, 반은 어둠에 가려 있다. 유난히 밝은 식당 내부의 빛은 바깥으로 발산된다. 그러나 유리창에서 번진 빛은 그 너머 칠흑 같은 밤의 경계를 더 명료하게 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식당 내부의 사람들은 인적이 완전히 끊긴 식당 바깥 도시의 거리 풍경과 대조되어 극적으로 강조된다.



밤 한복판 이 식당은 몇 시인가. 잠들지 못하는 이 밤의 고독은 02시가 아닐까. 밤 식당의 손님들은 밤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자들이다. 밤은 그들에게 안식의 시간이 아니다. 새벽은 또 다시 도래하는 아침을 위한 예비시간이 아니다. 그들에게 밤은 깊고, 그들은 비로소 도시의 ‘텅 빔’을 목격한다. 인적이 끊기고, 네온사인 빛과 간판의 불이 꺼지며, 막차도 끊어진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여전히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건널 사람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명멸하는 반복적 신호등과 비출 사람이 없어도 켜져 있는 가로등은 지금 무엇으로 여기 서 있는 것일까.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무용한 도구들의 주기적 명멸. 그것은 기계적이고 계획적이며 자동적이며 단단하게 구획된 도시적 일상의 주기성에 대한 이상한 질문을 발동시키는 기호다. 이 기호는 파란불과 빨간불, 허용과 금지에 관한 문명의 엄격한 규칙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를 질문한다.               



낮은 무엇인가     


잠들지 못하는 식당 손님들은 이 기호들과 접속하는 자들이다. 기계적 접촉과 자동성의 메커니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 도시에서 사람의 만남은 거대한 형식주의 그물망에 포획된다. ‘네트워크’라는 기계적 용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내면과 깊이 만나기보다는 열 명, 백 명의 드러난 마스크, 그들이 찍어놓은 테이블 위 맛있어 보이는 스파게티와 와인잔, 그들이 산 가방과 입고 있는 드레스, 그들의 관광지 풍경과 만나려고 한다.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음식이나 자연의 어떤 대상과 만날 때조차도 실재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하고만 관계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SNS라 불리는 온라인인간망을 부르는 '가상공간'이라는 단어는 지금 세계의 실재를 은폐하는 속임수다. 왜냐하면 이 공간의 관계 형식 자체가 오늘날 도시적 인간 관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타인들이 거의 모든 타인들의 얼굴을 알 수 있고, 그 자신이 스스로를 타인에게 개방하지만, 결코 한 인간의 깊은 내면과는 접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세계. ‘너는 누구인가’라는 거인의 물음에 대한 오디세우스에 대답처럼, 지금 이 세계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타인의 얼굴은 ‘아무 것도 아니다(nothing)’. 도시는 그 자체로 '인스타그램'이다. 표면은 있지만 이 쇼윈도우는 내면으로의 진입을 거부한다. 진정한 접속은 미끄러지거나 반사된다.

 

호퍼의 풍경에서 식당 내부의 유난스러운 빛은 거리의 어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공허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방편이다. 이 공허와 호응하는 남자의 몸뚱어리 절반을 지우고 있는 그림자는 02시의 것이다. 두세 시간만 지나면 다시 낮의 시간과 그들을 이어주는 첫차가 다니겠지만, 그는 첫차에 무심하리라. 한 끼의 늦은 식사, 늦은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는 바로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 02시 DJ의 ‘해적방송’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을까.



‘02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밤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같다. 어둡다고 밤이 그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밤은 밤에 관한 질문이 도래하는 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낮의 시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도시의 낮은 이 질문 대신 삶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하고 움직이게 강제한다. 밤이 ‘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도래하는 시간인 반면, 낮은 ‘낮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망각시키는 시간이다. 하지만 02시에 라디오를 듣는 불면증 환자가 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접속하고 있는 주파수는 이 ‘질문’이다.




*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에드워드 호퍼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동료 전문가그룹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공존-세계시민-생명의 가치에 기반한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실험적 융합대안대학을 설계 중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 철학과 고전 과목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교육청,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연구디자인센터(R&D센터) 등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교육ㆍ문화예술기관, 기업연구기관 등에서 인문예술교육과 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문ㆍ강의해 왔다.

현재 자유시민대학 전문가위원, 서울시도시건축포럼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삼성디자인멤버십 자문위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이자 친구로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사물의 철학』,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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