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기억
기억은 사건을 기억하는 일
다시, 4월이다. 2014년 4월 이후 한국이라는 삶의 공간에서 ‘세월은 다르게 간다’. 사회의 시계추를 바꿔 놓았고, 우리 사회의 현재 시각을 확인하게 한 특별한 계기적 사건으로 사람들의 기분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사건 이후 그 사건이 잉태하는 연속적인 사건의 계열들이 다르게 맞물리면서 시간 지평 전체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기억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이 파생시킨 사건의 연쇄, 사건의 계열, 시간 지평 전체를 기억한다는 뜻을 갖는다. 여기에서 과거의 기억은 그 기억이 연쇄적으로 낳아 이르게 된 현재를 직시하는 일이 되며, 이것이 다시 낳게 될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일이 된다.
‘망각’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망각은, 그 사건으로부터 파생되었던 사건 계열에 대한 망각이며, 이는 그 사건의 결과로서 오늘에 이른 현재 시간에 대한 외면이자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무대비를 뜻한다. 어떤 결정적인 과거와 그것에 의해 파생된 현재와 그것이 야기할 미래에 대한 망각, 이걸 삶 전체에 대한 망각과 구별할 수 있을까. 따라서 다시 기억은 단지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 직시이며 미래 예측과 견주어진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기억은 망각이라는 나태한 정신이 혹시 야기할지도 모르는 ‘죽음’에 맞서는 삶의 절박한 응전력이기도 하다.
‘목숨’이 아니다 ‘삶’이다
현대시의 한 서막을 열었으되, 난해하여 한국에서는 오히려 상투적이고 손쉬운 방식으로 일반에게 소비되는 엘리엇의 시 한 편을 적는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기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메마른 뿌리를 흔든다
겨울은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작은 목숨을 마른 뿌리로 부지시키면서
- T.S 엘리엇 「황무지」 중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유명한 시구는 이 단락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그 뒤를 따르는 몇 개의 시구들이 지시하는 정황에 따라 중층의 역설을 포함하고 있다. 고도의 상징이 내포되어 있어 정리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단락은 두 개의 내용으로 나뉜다.
⓵ 겨울 땅속에서 “마른 뿌리”가 “작은 목숨”을 부지시키고 있으며
⓶ 4월은 보이지 않던 그 “목숨”이 땅 위로 올라와 개화와 생명의 약동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얘기다.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는 부분은 왜 생명의 계절을 ‘잔인하다’고 말하는가다. “작은 목숨”을 부지하게 하는 저 “마른 뿌리”가 실은 ‘말라붙은 과거’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은 것이 부활한다는 기독교적 순교나 늙은 것이 어린 생명을 키운다는 모성적 비유라기보다는, 목숨의 유지와 성장·개화가 반생명과 맺는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암시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열쇠가 되는 대목은, 겨울의 대지가 ‘따뜻했던’ 이유를 “망각의 눈(snow)”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겨울 죽은 땅 속 메마른 뿌리를 흔드는(깨우는) “봄비”가 “기억과 욕망”의 이미지라는 데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의미심장한 아이러니를 내포하는데, 겨울의 대지와 마른 뿌리, 곧 ‘반생명’을 상징하는 그것들의 실체가 “망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그 뿌리를 흔들어 꽃을 개화시키는 것은 “기억과 욕망”이라는 뜻이다.
망각은 목숨을 부지하게 하고, 그 안에서 목숨의 연명은 “따뜻”하다. 망각은 "목숨"을 포획하고 있는 건조한 "죽은 땅"으로부터 "목숨" 그 자신의 시선을 돌려세움으로써 안전한 ‘겨울잠’을 보장한다. ‘겨울잠-망각’의 늙은 뿌리를 흔드는 “봄비”는 “기억과 욕망”이다. 하지만 생명을 약동시키는 “봄비”는 겨우 살아가는 “작은 목숨”들에게는 또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 ‘깨어난다’는 것은 세계의 참상을 보는 눈을 갖는 것이요, 목숨을 연명시키는 안전한 것의 품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니까.
이 얘기의 속내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꽃피울 것인가. 그것은 메마른 뿌리의 품속에서 계속 잠잘 것인가, 봄비를 맞으며 깨어나고 흔들릴 것인가 하는 망각과 각성에 관한 ‘잔인한’ 물음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인의 전언은, 이제 우리에게는 ‘4월의 기억은 잔인하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기억하라’라는 말이 넘쳐나는 가운데, ‘기억’이라는 말은 또다시 여러 상투어와 다르지 않은 무감각한 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 시를 떠올려 보자. 기억의 본질은 어떤 특정 내용의 회고에 있다기보다는 ‘안전’하지만 나태한 정신에 의지해 목숨의 연명만을 지상 목표로 사는 생존본능으로부터 ‘깨어남’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짐승 일반에 해당하는 ‘목숨’의 의미를 ‘조에(zoe)’로, ‘인간’ 특유의 ‘삶-생명’은 ‘비오스(bios)’라고 구별해서 불렀다. 이런 관점을 빌리자면 ‘기억’은 ‘비오스’ ‘인간’ 특유의 능력이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발휘하고 제 안에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목숨만을 부지하려는 생존본능의 발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 cover image by 윤채영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동료 전문가그룹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공존-세계시민-생명의 가치에 기반한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실험적 사회디자인대학을 설계 중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 철학과 고전 과목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교육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R&D센터, 삼성디자인멤버십 등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교육ㆍ문화예술기관, 기업연구기관 등에서 인문예술교육과 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자문ㆍ강의해 왔다.
현재 서울자유시민대학 전문가위원, 서울시도시건축포럼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삼성디자인멤버십 자문위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이자 친구로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사물의 철학』,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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