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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돈균 May 27. 2018

담배 피우는 시간

휘발되는 연기에 대하여

허무와 닿기

     

나는 어느 작가의 파이프

아비시니아나 까프러리 여인 같은 새까만 내 얼굴을 보면 알 거야

우리 주인이 대단한 골초임을.     

주인이 괴로움에 젖어 있을 때

나는 마구 연기를 뿜어 내지요

들에서 돌아오는 농부를 기다리는

시골집 아궁이 같지요.     

불타는 내 입에서 피어오르는

부드러운 파아란 그물 안에

그의 넋을 얽어 흔들지요.


- 샤를 삐에르 보들레르, 「파이프」     


현대시의 세계를 연 보들레르는 대단한 담배 예찬가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시간에 은밀하고 에로틱한 ‘여자의 시간’이 열린다는 것도, 한없이 너그럽고 친근하게 우리를 위로해 주는 ‘친구의 시간’이 열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시에서 새까맣게 탄 골초의 담배 파이프는 여인의 이미지로 나타나며, 시골집 아궁이에 비유되기도 한다. 담배는 작가에게 쾌락을 제공하는 여인인 동시에 괴로움에 젖은 농부를 다독이는 친구다. 성(性)과 우정의 감각을 동시에 여는 시간, 이게 바로 보들레르의 담배 피우는 시간이다. 관념으로 세계를 만나는 작가에게나, 몸으로 물리적 자연 세계와 직접 부딪히는 농부에게나 담배의 시간은 매혹적이다.



이 매혹의 실체는 따지고 들어가면 간단치가 않다. 담배는 이중의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담배의 매혹은 담배 피우는 사람과 담배라는 사물 사이에 직관적으로 형성되는 감각의 동형성에서 발생한다. 담배를 물고 빠는 “불타는 내 입”은 그 자체로 은밀한 성적 쾌락과 닿아 있으며, 짧은 순간이나마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프로이트적 직관을 응용하면 이 판타지와 만족의 메커니즘은 어쩌면 ‘물고’ ‘빠는’ 입을 통해 유아기의 구순기(口脣期)로의 회귀를 반복하는 것과 연결될지도 모른다.


한편 괴로움에 젖은 이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의 ‘깊은 한숨’을 시각화한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담배 피우는 이의 육체와 심리를 일체화한다. 성도 한숨도 숨겨진 것이며 억압된 것이다. 담뱃불과 담배연기는 그런 점에서 ‘억압된 것의 회귀’다. 담배를 피울 때 아주 잠시나마 “그의 넋을 얽어 흔”드는 체험을 하는 것은 그래서 까닭 없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때 우리는 우리 안에 억압되었던 것의 시각적 표출을 제 눈으로 경험하며, 이 확인은 그 자체로 우리를 나른하면서도 고혹적으로 위무한다.



하지만 담뱃불과 담배연기는 아이러니라고 해도 좋고, 변증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모호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담배가 우리에게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사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평생 담배를 피워온 골초일지라도 담배가 하나의 공간적인 사물이 아니라 ‘담배 피우는 행위’, ‘담배 피우는 시간’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는 동적이고 시간적인 사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이는 별로 없으리라. 정말 놀라운 것은 '담배 피우는 시간' 체험은 평생을 핀다한들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휘발된다는 사실이다. 몸에 남아 있는 니코틴이나 타르라는 의학적 현실은 보들레르적 담배 체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담배연기는 한순간 우리 몸속으로 깊이 들어왔다가는 밖으로 다시 빠져나간다. 연기는 목과 내장의 어떤 지점들을 관통했다가는 스치듯 몸에서 사라진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어떤 열정의 환영 같은 그을음이다. 담배를 피우 시간 우리가 경험하는 이 연소와 흡입과 그을음과 스침과 뿜어내기의 호흡 과정의 숨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때 진정으로 경험하는 것은 입으로 강력하게 빨고 태우고 그 연소물을 깊이들이마시지만, 불완전한 방식으로밖에 가능하지 않은 만족과 소유에 대한 기이한 감각이다. 빨고 태우고 마시지만 그것은 다시 빠져나간다. 우리 안에 숨은 어떤 갈증은 우리 몸으로 들어왔지만 다시 허공으로 내뱉어지는 담배연기처럼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환영과 같다. 일종에 ‘허무’ 체험이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이 허무와 일상적으로 조우하는 시간이며, 허무가 주는 덧없는 쾌락에 ‘중독’되는 시간이다. 담배에 있어 ‘중독’의 숨겨진 의미는 니코틴 같은 물리적 요소라기보다는 실체화되지 않고 휘발되는 이 허무와 관계된다.      




작가들의 연기, 신의 입김


담배연기가 늘 ‘허무’만으로 체험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작가들에게 담배는 특이하며 유용한 시간 체험을 선사한다. 유명 작가들의 사진 중에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는 장면이 유독 많다. 시인 최승자나 작가 롤랑 바르뜨의 사진에서 그들의 손가락과 입에서 담배가 없는 풍경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오래전에 작고한 한국의 거물 시인 김수영은 작가와 담배의 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암시를 주는 산문을 남겼다. 그의 수수께끼 같은 산문은 담배 피우는 시간이 곧 작가의 시간이요, 시의 시간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반시론(反詩論)」에서 그는 “참다운 노래가 나오는 것은 다른 입김이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입김/신의 안을 불고 가는 입김”(릴케 「오르페우스에 바치는 송가」)이라는 릴케의 시구를 언급한다. 김수영은 릴케를 통해 시가 세상의 얄팍한 실용적 관점에 닿지 못하는 무망(無望)하고 참된 신의 입김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18세기 낭만주의 철학자이자 괴테의 스승이었던 헤르더의 “인간이 일찍이 지상에서 생각하고 바라고 행한 인간적인 일, 또한 앞으로 행하게 될 인간적인 일, 이러한 모든 일은 한 줄기의 나풀대는 산들바람”에 달려 있다는 말을 다시 인용한다.  이 산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다음 대목이다. 김수영이 릴케의 ‘신의 입김’ 헤르더의 ‘한 줄기의 나풀대는 산들바람’을 언급하면서 이를 ‘담배연기’의 연상으로 이어가기 때문이다. '신의 입김-산들바람-담배연기'로 이어지는 이 연상 과정은 김수영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인지 이 산문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장의 연상 과정을 추론해 보는 일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은 글을 쓰며 담배를 피운다. 김수영도 골초였다. 늘 줄담배를 피며 시 쓰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시가 나오는 입('입김')과 담배연기가 나오는 입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단지 물리적 차원의 현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 쓰는 시간과 담배 피우는 시간 사이에 놓인 어떤 상동성에 대한 암시다. 시를 쓰는 일은 ‘지금 세계(현실)’의 관성적  감각에서 벗어나 ‘다른 현실’에 이르는 작업이고 과정이다. 다른 현실이란 이 현실이 망각한 현실, 이 현실의 출발이었던 기원적 현실, 원형의 시간이다. 그 현실을 보는 일은 지금 현실의 눈이 아닌 눈을 갖는 갖는 것이며, 그 현실의 이미지는 신의 나라의 실루엣처럼 흐릿하며 순간적이다. 그 나라의 실루엣을 발설하는 입이 시인의 입이며 그것은 신의 입과 다르지 않다. 헤르더나 낭만주의 철학의 현대적 입안자였던 보들레르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러한 관념은 공유되었다. 그들에 비해 훨씬 후대 사람인 김수영이라 할지라도 시인의 입김이 일상인의 입김과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시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포기될 수 없었다.


'신의 입김'을 내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실의 실용적 시간을 유일한 시간으로 수락하며, 입을 먹는 통로로만 여기는 생존본능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미래에 올 시인들에게도 이 생각은 고수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겪는 일상성의 나태와 경험의 피상성을 뚫고 망각된 시간의 카타콤을 다시 체험하고 기원을 회복하는 행위이며, “앞으로 행하게 될 인간적인 일”(김수영), 즉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당겨 사는 예감의 실천이기도 하다. 시가 ‘다시’ ‘미리’ 당기는 이 시간들은 쉽게 체험되지 않는다. 인간됨의 비참과 영광이 깃든 이 시간 체험을 위해 시인은 일상의 시간을 탈각해야 하며, 이를 위해 극도로 메마른 감각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시간을 겪어야 한다. 많은 시인들에게 담배는 이 일상의 몸을 벗는 고독하고 메마른 길의 동행자가 되곤 한다.     






칠판 앞의 담배 피우는 남자: 롤랑 바르트

담배 피우고 있는 모자 쓴 남자: 김수영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다. 인문정신의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을 설립하여 동료 전문가그룹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공존-세계시민-생명의 가치에 기반한 창조적 사회디자이너 양성을 목표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닌 실험적 사회디자인대학을 설계 중이다.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 철학과 고전 과목 등을 강의해 왔다. 문체부, 교육부, 외교부, 교육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삼성리움미술관, 삼성전자R&D센터, 삼성디자인멤버십 등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교육ㆍ문화예술기관, 기업연구기관 등에서 인문예술교육과 융합교육프로그램을 기획ㆍ문ㆍ강의해 왔다.

현재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 대표, 자유시민대학 전문가위원, 서울시도시건축포럼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삼성디자인멤버십 자문위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스승이자 친구로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인문철학에세이집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사물의 철학』, 문학평론집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예외들』『얼굴 없는 노래』, 문학연구서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교육대담집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 고려대문인회신인작가상,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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