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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지 May 14. 2017

아버지라는 이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 아버지에게 바치는 찬가


 "욘두에게는 핫셀호프처럼 말하는 차는 없었지만, 날아다니는 화살이 있었어.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진 않았지만, 휘파람 소리는 천사 같았지. 욘두도 핫셀호프처럼 모험을 사랑했어"








 "저딴게 우리 아빠라니!" , (스타로드, 아버지에게)



 대학교 시절. 몸살로 아픈 엄마에게 한바탕 해제끼고 일터를 향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날이 있다. 엄마가 아픈 몸으로 애써 차려놓은 밥상이, 덩그러니 내 앞에 놓여있었다. 엄마는 아파서 그랬는지 아빠의 날선 말이 서운했는지 어쨌든, 울었다.


 학교 가는 길에 가게를 들렀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나는 대뜸 소리쳤다. "아빠, 사람이 아플 때만이라도 좀 그러지 마세요" . 화난 모습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날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본인에게 소리를 지르기는 커녕, 단 한번 말대답도 해본 적도 없는 아들의 그런 모습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눈을 무섭게 고쳐 뜨고는 반발했다. "내가 뭘 임마,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너희 엄마가 얼마나 어린지 네가 아냐?" 라고.


 용기를 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암튼 그러지말라고요 제발" 소리치고는 도망치듯 가게를 뛰쳐 나왔다.


 성이 잔뜩 난 상태로 운전대를 잡고 학교를 향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반성하지 않는 아버지가 미워서?.. 그 땐 왜 그런건지, 그런 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초라한 변명을 할 수 밖에 없던 아버지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 갓길에 차를 대고 엄청 울었다.





 "이제야 욘두 기분을 알겠네" , (스타로드, 그루트를 보며)



 아버지는 2015 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했다. 아마도 베체트 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몰라서, 확진이 되면 삶의 질이 엄청나게 하락할 것을 염두에 둬야한다는 얘길 들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엄마는 또 서럽게 울었다.


 잠든 아부지의 병실 문에 기대어..초라하게 쭈그리고 누운, 이제 나이들고 병든 그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가 일평생 하루도 쉼없이 건설 현장과 가게에서 노역을 해왔음을 떠올렸다.


 오십 평생 얻은 것이라고는 그 어리다는 아내와, 말도 섞지 않으면서 가끔 엄마 편이나 들며 자기에게 고함치는 아들, 그리고 주공 아파트 한채. 아.. 그리고 자동차! 삼십년 동안 돈을 모아 그렇게 환한 얼굴로 맞이했던 그의 첫 승용차, 그나마 아들에게 출퇴근 용으로 내어준 그 자동차...그런 것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겨우 겨우 그런 것들을 일궈내고, 이제 좀 여유가 생길만하니 병이 찾아왔다. "이제 좀 쉬엄쉬엄하자고 그러니까 병이 드냐..제발 난치병만 아니었음 좋겠다.." 라며 엄마는 벌개진 얼굴로 어쩔줄 몰라 몇번이나 되내이곤 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와 나 자신을 마주하며,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가 '너희 엄마는 어리다' 고 말했던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이 단순히 초라한 변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때론, 우린 바로 앞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평생을 찾아 해메기도 해" , (스타로드, 욘두에게)



 아버지는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몇차례 녹내장 수술과 약물 처방을 받고는 결국 '알 수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리곤 퇴원해서 다시 일터로 나가셨다. 몸은 많이 약해지시긴 했지만...


 아내와 나는 그 사이 새 생명을 얻었다. 요즘 소파에 누워 아내의 배에 손을 대고 태동을 느끼고 있다보면, 나는 항상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8년차 엔지니어로서도, 내 아이의 아버지로서도 늘 내가 그만큼 해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곧잘 엄마와 다투고, 아들에게는 싫은 소리도 들었던 못난 아버지임에도. 나는 안다, 그것이 어려운 목표임을.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때쯤에 그 이름들은 곧잘 땅속으로, 무로 돌아가곤 한다. 그를 토대로 다른 아버지가 싹을 틔울 때 쯤에, 그 이름은 서럽게도 부를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오직 그 비극의 토양 위에서만 자라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그가 말했던 어린 아내라든지, 혹은 못난 그의 아들과 그의 가족들처럼 말이다.





Father and son (Cat Stevens, 1970) 가오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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