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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동 Jan 01. 2024

말이 되지 못한 말

화병이 되는, 쌓이는 과정에 관하여

말로는 누구에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분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투쟁의 의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말싸움할 일이 많았는지, 말로 베는 쾌감과 짜릿함에 절여 있었는지 날카롭기가 면도칼 같았다. 누구든 나를 말로 건들면 정신을 파절이로 만들어, 자다가 억울해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겠다는 비열한 비장함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전공이 '신학'이라 말싸움은 꽤 유효한 무기였고, 인간관계가 박살 나는 시작이었다.


졸업 후 여행에 미쳐 돈이 벌리는 족족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뼈에 사무치게 내 말싸움은 '한국어' 한정이었다. 아무리 억울하고, 부당해도 'I hate you!'가 전부였다. 돌에 이름을 세길만큼 고마운 일에도 'Thank you so much!'가 최선이었다. 이제 말을 하는 '입'이란 기관은 '주댕이' 정도밖에 기능을 하지 못한 다는 걸 알았다. 화병이 쌓이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못 하는 건 존재를 초라게 만들었다. 뗀석기처럼 말을 하던 나는 어느덧 한국어도 어눌해졌다. 30대 초반,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0개 국어' 가능자가 되었다. 


어딘가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다른 기관이 발달한다고 했던가. 입으로 나오는 '말'대신, 몸으로 말하는 기능이 늘어났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의사 전달을 하는 기술이 늘었다. 안타까운 점은 '기분 나쁨'에 특별히 더 발달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나이가 더 든 후엔 말은 상황에 따라 적당히, 얼굴도 숨길 줄 알아야 한다는 처세술을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다. 익히기는 시작했지만 여전히 못할 말을 퍼부을 때도 있고, 해야 할 말을 삼킬 때도 많아졌고, 차마 가면을 꺼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말과 표정이 따로 놀 때도 있다.


특히, 말이 되지 못한 말은 화병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상대에게 '이불킥'을 선사하겠다는 저열한 다짐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 많은 밤 이불을 걷어차 자주 이불을 사야 했다. 다행히 현대 의학은 꾸준히 발전해 작은 알약 하나로 천년의 분도를 내려놓고, 이불값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되지 못한 말은 어딘가 익명의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지난주 라디오에서 들은 '예술이란, 말의 실패에서 시작된다.'가 마음에 남았다. 내가 어딘가 써놓고 있는 기록은 어쩌면 예술?. 속으로 키득거리며 익명 속의 나를 한번 당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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