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2. 2018.
조선시대 엽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상평통보' 이다.
그만큼 상평통보는 조선후기 무렵 전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조선 최고의 국가발행 통화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상평통보는 한반도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시장에서 돈의 지위를 얻은 국가발행통화 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여러 왕조부터 자체 화폐를 통용시키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는데, 그 시도는 번번히 실패 했고 조선 중기 까지 만해도 한반도의 실질적 화폐는 '쌀'이었다.
조선 중기 까지는 한반도의 경제체제는 물물교환 방식이였고 그 물물 교환체제에서 으뜸이 쌀이였던 것이다. 국가 역시 세금을 돈으로 걷은 것이 아니라 '쌀'로 걷었으니 '쌀'의 지위야 말로 수천년 동안 진정한 교환 수단이였다 할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천년간 한반도의 교환수단으로 자리잡은 '쌀'을 밀어내고 '상평통보'는 조선 최고의 통화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숙종 때에 숨어 있다.
숙종 4년 본격적으로 주조되기 시작한 이 상평통보는 이 무렵 쌀, 무명, 은자와 페그제를 선언했는데,
당시 은(Silver)은 동아시아 무역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중국에선 이미 15세기 후반 명나라때 부터 '일조편법'을 통해 '은 본위' 경제를 확립하였으며,
일본에서도 1530년대 이후 다양한 곳에서 은광이 발굴되어 사실상 동아시아의 은 공급처 역할을 했는데 1570년 이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일본에 '수은아말감법'이 전래되어 일본의 은 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아시아 무역의 교환수단으로 은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조선에서도 은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고 이 국제적 무역 수요와 상평통보의 은 페그제가 맞물려 상평통보는 순식간에 조선 최고의 법정통화로 자리잡는다.
1970년대 까지는 미국의 달러 역시 금에 연동된 화폐였던 것을 아는가?
세계2차대전을 겪으며 영국이 보유했던 막대한 금이 미국으로 흘러갔고 이때문에 미국이 발행했던 금교환권인 달러는 세계 무역의 기축통화로써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부는 보유한 금보다 더 많은 달러를 인쇄했고 그결과 금이 부족해지자 어쩔수 없이 달러와 금의 불태환을 선언한 것 이다.
그런데 이것과 동일한 이유로 조선 조정 역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시장에 화폐로 자리잡은 상평통보를 이후 마구 찍어내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민생이 피폐해지자 화폐 주조의 폐단에 대한 상소가 잇달아 1698년 부터 무려 33년간 상평통보의 주조가 중단된다.
33년간 새로운 동전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이 상평통보의 가치는 계속 오르게 되었고
가치가 오르게 되자 동전을 보유한 부자들은 더더욱 돈을 내어놓지 않게 되고
따라서 시장에선 돈이 마르는 전황(錢荒)이 발생했다.
심지어 양반들은 이 상평통보를 땅에 묻기 까지 했으니 당시 상평통보에 불었던 투기 바람은
현시대 비트코인의 가즈아 열풍과 비슷하지 않은가?
비트코인 역시 2100만개라는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었고 지금까지 채굴된 97%의 물량을
상위 4%의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 때문에 시장에서는 전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 전황의 결과로 비트코인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것 이다.
최근 몇 개월간의 가격 폭락에도 불구하고 소수 고래들의 비트코인 지분율은 더더욱 높아지고만 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할 점은 바로 이것 이다.
초강력한 디플레이션 통화로 설계된 비트코인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시중에서 그 자취를 감춘다는 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