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믿기 힘들겠지만, 마포구입니다.

by Ann

“택시 기사님께 ‘’독막로’로 가주세요.’하면 십중팔구 못 알아 들으셔.”


8평짜리 작은 원룸에서 나른하게 회색의 빈백에 눕듯이 앉아, 내가 말했다.


“그럼? ‘대흥역’이라고 하면 되려나?”


주로 내 말에 어떻게든 긍정적인 대답, 이를테면 ‘그럼 ~~ 방법이면 되나?’ 라던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 방법이 낫겠다!’라는 식의 대답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사람, 남자친구가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물었다.

이 번에도 엄청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적당히 긍정적이면서도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가 되지 않을까 고심하며 내뱉은 신중한 대답이었을거다.


“아니. 대흥역도 못 알아 들으셔.”


얼마나 고심해서 질문했을까. 그런데 이런 내 대답을 들으면 또 혹여나 자신이 너무 동 떨어진 대답, 내가 늘 강조하는 ‘대화의 포인트’를 짚지 못 한 대답을 한 게 아닐까 속으로 참 심란하겠다 싶어 작게 웃으면서 내가 다시 대답했다.

내가 말할 때면 늘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던 검은색 작은 아이폰을 가슴에 덮어 놓고 대답하는 남자친구의 입이 잠시 벙끗 거리기에, 그의 심란한 속을 달래주기 위해 어서 이어 말했다.


“그래서 항상 ‘-공덕역 옆에 있는 대흥역이요.’라고 말해. 근데 그래도 잘 모르시더라고.”


남자친구는 내가 이어 말하자 잠시 입을 다물고 안도하는 듯 했지만 이렇게 내 얘기가 끝나자 다시금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 대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생각하고 말할 수는 없는 건가. 항상 이렇게 내 기분을 추리해서 맞추는 형식으로만 말을 하는 걸까. 남자가 다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나 안쓰러운 남자를 사귀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어 살짝 짜증도 났다.


“아~ 그래? 공덕역은 다들 아실 텐데~?”


나는 ‘푸합’하고 웃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가 잘못 말한거야?’ 라던가 ‘이게 아니야?’ 라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남자친구가 귀엽다.

‘겨우 생각한 대답이 그거라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는지, 역시나 내 말에 ‘올바른 대답’을 추리해서 내뱉은 ‘답’인지 나는 모른다. 그냥 항상 남자친구는 내 말의 대답을 추리해서 말한다고 내가 혼자 정했다.

이번에도 80~90%는 내 기분을 추리해서 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를 사귀기 전엔 자신도 ‘공덕역’이 어딘지 몰랐으면서.


남자친구에 대한 사생은 여기까지. 봉준호 감독의 어느 영화에 나오 듯, 삼팔선 밑으로는 훤할 기사님들, 그 중에서도 서울 택시기사들이라면 마포구는 골목골목 지름길로 잘도 찾아다니는 배민 라이더 보다도 훤할텐데, ‘독막로’라던가, ‘대흥역’이라고 말하면 한 번도 한 번에 넘어간 적이 없는 곳이 이 곳, 대흥동이다.


20대들의 성지 홍대와 핫플이 모여있는 합정, 상수, 망원동. 그리고 대기업과 휘황찬란한 건물, 맛집, 깔끔한 산책로를 겸비한 공덕역이 인접해 있고, 2023년 기준 한국의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서강대학교가 바로 코 앞에 붙어있는 곳.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절뚝거리는 노인들과 ‘마을버스 요금도 올려달라’는 현수막을 앞에 내건 채 천천히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다니고, 낡은 빌라와 수선집, 열쇠가게가 골목 빽빽히 위치한 곳이 대흥동이다.


나는 대흥동에 3평짜리 작은 꽃집을 차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서도 이제서야 검색창에 ‘대흥동’을 검색하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지 않을까 과감히 추측해본다.

앞서 살짝 나왔지만, 나름 마포구다. 마포구를 왜 이렇게 강조하고 으스대냐면,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마포구 공덕동’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 서사는 좀 말하기에는 복잡한데 아무튼 올해 초까지는 공덕동에서 가족과 살다가, 홍대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경기도 금정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니까 공덕동은 살기에 나름 좋았고, 사실 20년 가까이 우리 가족은 울산에 살았고, 공덕동에서 산 건 5년 남짓이었지만 반짝거리는 도심과 여유로운 경의선 숲길, 갈매기 골목과 족발 골목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공덕동에서의 추억이 많아 ‘마포구’는 내게 비싸고 살기 좋은 동네라 인식되었다.

그러니 자취도 집 코앞으로 잡았었고, 꽃집도 어쩌다 집 근처로 잡게 된 것이다.

물론 마포구니까 보증금과 월세가 비쌀 것이라 생각하고 처음에는 경기도나 강동 쪽도 알아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데 때마침 정신없는 이전 주인이 보증금을 빠르게 받고 가게를 처분하는 바람에 권리금도 내지 않고 보증금 500에 월세 46이라는 너무 군침 도는 조건으로 이 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서울 상가 시세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마포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위 대목에서 ‘오?’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매장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주저했는데, 보자마자 그 날 바로 계약금을 치렀다.


그러니까 이건 대흥동 미스터리 2탄이다. 1탄은 마포구에서 인지도가 정말 낮은 동네라는 것.

2탄은 마포구인데도 이렇게 저렴한 상가가 있다는 것.


**


“나 퇴사하려고.”


엄마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눈을 살짝 감았다 뜬다.


“얼씨구.”


“그리고 꽃집 차리려고.”


“얼씨구??”


금정으로 이사 오고 딸의 첫 방문이라 와인을 마시자며 와인을 꺼내오는 아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쫌미니 이 녀석은 MT를 가서 이 번에는 얼굴을 못 보고 갈 것이다. 이 녀석, 누나가 또 큰 건 했는데.

쫌미니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내 동생이고 7살이라는 나이 터울이 있는 남동생이다.

그러니 7살 터울에 남동생이 MT를 갔다면 내 나이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27살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 짐작이 가겠지만, 내 남동생은 군대를 다녀왔고, 삼수를 했다. 그러니 난 만 나이를 도입해서 30살. 생일이 지나서 만 30살이다. 그러니 만 나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31살인 것이다.

만 나이. 너무 불편하고 헷갈린다.

아무튼.


“또 시작이다.”


엄마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좋아. 여기까지는 예상한 반응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바로 이어 말했다.


“이미 점포 계약도 다 했어.”


엄마는 아주 잠시 또 눈을 감았지만 이번에 눈을 뜰 때는 아까와 달리 확장된 동공과 쌍커풀이 여려겹 있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 보았다는게 아까와 달랐다.

아빠도 2개의 와인잔에 와인을 채우면서 큰 표정변화는 없었지만 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큰 존재감이 없고, 자꾸만 내 말이 묻히는 것 같다면 이런 터무니 없고 허무맹랑한 말을 시간 차를 두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면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하지 않을까.

스피치 컨설턴트가 할 만한 생각을 잠시 했다.

그 뒤는? 알아서 하시라.


나는 그 뒤를 이렇게 이어갔다. 아니지, 내가 이어갈 필요는 없었고, 엄마가 바로 이어갔던가.


“계약을 이미 했다고? 그럼 지금 너 매장이 있는거야?”


‘자 이제 어떻게든 되라.’는 심정으로, 이 이후의 대화의 흐름은 계획한 바가 없기에 긴장해서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나는 최대한 당당해 보이려 크게 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반찬을 짚다 말고 나를 한 번 바라보고, ‘허이구, 참’ 하고 웃으며 아빠를 한 번 바라봤다.

아빠는 엄마의 반응을 한 번 보고 그제서야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거실을, 어쩌면 엄마와 내가 시야에 없는 허공을 한 번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살짝 기시감이 드는데, 데자뷰인가?

알았다. 내 남자친구다. 그러니 내가 아까 가졌던 의문. ‘남자는 다 그런 것인가?’하는 의문에는 답이 나온 것이다. 물론 시간 순서가 틀렸지만. 시간 순서로 따지자면 지금 아빠가 등장하는 이 장면이 먼저이니. 답이 이미 나오고, 내가 의문을 가진 게 된다.

아무튼.


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엄마가 한 마디 더 내뱉었다.


“허이구, 대단하다. 진짜.”


엄마가 ‘허이구’라고 말한 건 아니고, ‘어이구’를 말하는 사이 참을 수 없었던 탄식의 한숨이 같이 비집고 나와 ‘허이구’라고 발음된 것이리라.


이어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남자친구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잔뜩 긴장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기분.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치른다고들 한다. 주로 이 말을 듣게 되는 처음은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다. 나도 얼핏 수능을 앞두고 이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비록 재수해서 두 번째 수능 목전에는 그 말을 듣지 않았지만. 아니 들었던가?

내 생각에 엄마 아빠에게 내 창업사실을 밝히는 이 순간이 아마 내가 치렀던 큰 시험 중 대략 7번째 시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은 외고 입학 시험, 두 번째는 수능, 세 번째는 대외활동 면접, 네 번째는 해외 인턴십 면접, 다섯 번째는 취업 면접, 여섯 번째는 이직 면접.

그러니까 그 사이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다른 시험은 1-1, 2-1 같은 거라고 치고, 엄마 아빠에게 말하고 있는 이 순간은 7번째 시험.

학교 시험으로 친다면 7교시 쯤 될 것이다.


엄마 아빠의 반응은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싶어서 계속 쉴 새없이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실 엄마아빠가 동경하던 일일 수도 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엄마가 전업주부를 하고 있고, 역시나 대학원을 졸업한 아빠가 평생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아빠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30살 딸이 창업을 한다는 건 엄마아빠에게도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이고, 나의 젊음이 부러우면서도, 나의 치기가 걱정되고,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척척 저지르는 딸이 자랑스럽기도 했지 않을까. 마지막 ‘자랑스럽다’는 건 사실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여느 화목한 집에서 자란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은 건 다 똑같으니까.


엄마는 사실 좋으면서 싫은 척 하는 여자친구의 표정으로


“어휴 남들이랑 똑같이 좀 살으라니까아~!”


하며 웃는 표정으로 투덜댔고, 아빠는 연신 거실 쪽을,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와 내가 없는 허공 쪽을 바라보며 계속 ‘허허, 참’ 하는 피식거림을 계속했다.


혹시나 엄마 아빠에게 창업 사실을 밝히는 일을 앞두고 있거나, 허락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얘기할 나의 팁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선 꽃집을 계약하면서 엄마아빠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부쳤고, 그러기에 엄마아빠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니 소자본을 투자할 작은 매장으로 계약한 것이고.

마음 편히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자취를 했다. 엄마아빠에게는 공덕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간다고 둘러대면서도, 사실은 대흥동 꽃집 가꾸기에 가까운 곳. 홍대 부근으로.

그리고 늦지 않게 도전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엄마아빠에게 ‘내 나이 서른, 설령 꽃집이 망한다 해도 점포계약 2년이 끝나면 32. 그 때 다시 취업을 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2년 간의 창업 도전과 실패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라는 패기 어린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또 뭘 말했더라. 꽃집으로 어떻게 성공할 것인지 회사 팀장에게 보고하는 듯이 말했던 것 같은데 차이점이라면 PPT도 준비하지 않았고, 엑셀로 예상 수익표도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더욱 허무맹랑한 얘기를 잘도 술술 내뱉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근처 ‘하루필름’ 스튜디오에 영업을 뛰어서 꽃을 소품으로 쓰도록 하겠다. 라던가.

꽃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을 연결시켜주는 어플을 만들겠다. 라는 식의. 고작 이미지 파일 경로 넣는 코드 정도만 아는 뼛 속까지 철저히 문과생인 난데.

그런데 어쨌든 딸이 이사한 집에 와서 설레어 부풀어있던 마음에 더더욱 풍선같이 허무맹랑한 계획을 더해서인지, 아니면 어쨌든 혼자 힘으로 저질렀다는 대견함 때문인지 (물론 ‘대견함’도 나의 바람이다.) 엄마아빠는 내 계획을 꽤나 신중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꽤나 진지하게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하룻밤을 자고 오면 안 된다. 내가 몇 달 동안 고심하고 고민한 문제점을 그 하룻밤 사이에 엄마아빠도 생각해 낼 테니, 다음 날이면 모아두었던 걱정과 잔소리가 섞여 날아올 테지.

그러니 던져 놓고 나와야 한다. 나도 그 날 저녁에 내뱉고, 자취방으로 황급히 돌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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