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2

비실비실한 먼젓번 주인은 로또에 당첨되었을까.

by Ann

내가 이 곳에 꽃집을 열기 전에도 이 곳은 꽃집이었다고 한다. 계약 시점에 전 주인이 폐기 비용이 더 든다며 버리듯이 두고간 붙박이 에어컨 빼고는 모두 폐기 처분해서 보라색의 이전 꽃집 로고와 연락처가 박힌 입간판이 아니었다면 여긴 뭘 하던 곳일까 계속 궁금했을 것이다.


중개인 말로는 이전 주인이 엄청 어렸다는데, 그래서인지 부동산 법을 잘 몰라, 권리금 3천만원을 걸어 놓고는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건물주에게 이미 보증금을 반환받았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보증금도 받았다면, 이 곳은 건물주 관리가 들어가니,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상당히 럭키하게 무권리로 이전 꽃집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 땐 ‘아, 그래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사실 나도 그런 법인지 몰랐다. 아마 나였어도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권리금이 언제 들어올지 기대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전에도 꽃집이었던 터라 그런지, 오픈하고 방문하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주인이 바뀐거에요?”

“어머 이전에도 꽃집이었는데 또 꽃집이 생겼네요~”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얘기하기를,


“이전 아가씨는 되게 이뻤어요. 몸매도 엄청 좋고. 내 기억에 항상 딱 붙는 옷을 입고 다녔어.”


나는 이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 아주머니의 말을 전하며 내심 기분 나빴더라고 얘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뀐 주인 앞에서 이전 주인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을 한다면 일단 ‘어쩌라고?’ 생각이 들고, 이어서 ‘비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어쩌면, 살면서 ‘이쁘다’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 했거니와, 살이 엄청 쪄버린 내가 질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픈한지 몇 주 지났을 때인가. 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대뜸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었다.

자주 듣는 질문이라 ‘그렇다’ 대답했더니 꽃은 안 사고 내부만 휘휘 둘러보더니 말하기를


“여기 주인이 로또 당첨돼서 나갔잖아요. 로또 사세요~”


하고 갔다. 나는 적어도 이 아저씨가 로또를 홍보하려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후에 또 방문했던 그 아주머니가 와서 또 이전 주인 외모를 칭찬하기에 화제를 돌릴 심상으로 ‘로또 당첨돼서 나가신거래요.’하니 그 아주머니가 ‘글쎄~ 과연 그게 진짜 로또 당첨돼서 나간걸까~?’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저씨 외에 이전 주인을 기억하는 손님들도 모두 ‘그래요?’하고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꽃을 사러온 손님들이 더 기분 좋으라고, 여기서 꽃을 사가면 재물운이 있다는 식의 홍보처럼 그 얘기를 하곤 했지, 믿지는 않았다.


“2등인가, 20억인가 아무튼 숫자 2 어쩌구 하면서 나갔었어. 그 아저씨가.”


그 얘기를 들은 날 남자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오~ 2등일 것 같긴 한데, 만약에 20억이면 진짜 대박이다.”


남자친구의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번만큼은 내 예상답안을 적중했을 것이다. 왜냐면 반신반의하는 내 마음과 정확히 일치하는 답을 했으므로.


“그치, 2등이면 얼마지?”


하고 물 흐르듯이 대화가 이어져서 내가 기분이 좋아졌으므로.


슬슬 또 나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루해져서 한 번 기지개를 피거나, 잠시 책에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휴대폰을 들어서 인스타그램을 켜 무의미하게 피드를 내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말하는 이 스토리가 대흥동 미스터리 3탄이다.


**


이 골목 뒷편에는 허름한 주택집 몇 개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골목 어귀에서 하루에도 2번 이상 불시에 나타나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처음에는 꽃집 밖에서 기웃거리셨다가, 내가 밝게 인사하고 나서부터는


“아이고, 먼젓번 애는 비실비실하더니 이번엔 튼실하네.”


라며 성희롱 같은 칭찬을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사과 한 알을 주고 가셨다. 그 다음 날 떡을 사서 ‘사과 감사했습니다.’하며 드리니 마음씨가 너무 이쁘다며 내 가슴을 마구 쓸어대셨다.

이것도 성희롱 같은 칭찬이랄까.


뭐 그렇게 친해졌다면 친해지다 보니 의자를 내어 달라며 꽃집 안에 5분씩 앉았다 가시는 일이 많아졌다.

나도 크게 바쁘지 않았던 터라 할머니랑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살짝 귀가 어두우시고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귀가 안 들려서인지 모르겠으나, 내 얘기와는 상관 없이


“먼젓번 애는 비실비실했어~ 맨~날 아프고.”


얘기를 연신 하시다가 가시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더 이상 내 얘기는 소용이 없고, 할머니와의 대화도 조금씩 지루해지고 있을 때쯔음 분위기를 환기시킬 심산으로 로또 얘기를 꺼냈다.


“엉? 뭐라고? 복권?”

“네, 복권 당첨됐대요. 2등인가 1등인가 아무튼 당첨돼서 나간거래요.”

“아녀~ 비실비실 해가지고 아파서 나갔어. 아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래요! 복권 당첨돼서 나간거였대요. 아픈 건 뻥이었던 거지.”


‘먼젓번 애가 비실비실해서 아팠다.’라는 말에 반박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어쩌면 ‘마르면=아프다.’라는 노인들의 공식에 반박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하는 할머니에게 다른 얘기를 꺼내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이전 꽃집 주인의 얘기를 그만 듣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해서 이전 주인에게 악감정은 없으나, 그냥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 대한 소문만 무성히 듣다 보면 지치는 부류가 있는데, 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나다.


“이잉? 그려? 복권이 당첨됐대?”


할머니가 이 얘기를 제대로 들은건지, 혹은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먼젓번 비실비실한 애 얘기를 그만 듣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어이구 씩씩하다!’라는 말만 했으므로.


그 할머니는 어느 날 내게 집 가는 버스비에 쓴다며 천 원을 꾸어가고, 다음날 7천원짜리 해바라기를 사러 들르겠다고 해놓고 일주일 가량 꽃집을 봐도 지나쳐 가기에, 나와는 멀어졌다.

아니 어쩌면 나만 거리를 둔 것일 수도 있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 있어?’하며 할머니가 다시 머물다 가려 하기에, 슬슬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가는 귀에 지친 것인지, 꿔가서 갚아달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천원이 아까웠던 탓인지 ‘지금 너무 바빠요, 할머니.’하고 할머니를 못 들어오시게 한 뒤로, 할머니와는 꽃집 문을 사이에 두고 짧은 인사만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이 골목 뒤 허름한 주택가 중 한 곳에 살고 있었고, 사실 ‘집 가는 버스비’ 같은 건 없었으며, 내 천 원을 어디에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갚지 않고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더더욱 할머니를 무시하려 애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흥동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