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8

인간은 성선설

by Ann

나는 아직 진상손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 예민한 나는 무리를 지어 생활해야 하는 인간의 습성을 거스르듯이 ‘조직생활’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었다. 이 덕분에 학교 생활을 해도, 동아리 활동을 해도, 대외활동을 해도, 직장 생활을 해도 늘 빌런에 대한 스토리가 생겨나곤 했다.

어쩌면 그룹 속에 ‘빌런’이라는 것은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회사에서 만난 빌런 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과장을 살짝 흘리며 생각했다.


나는 ‘관계’라는 것을 쉬이 끊지 않거나, 혹은 그룹 활동을 하면서 빌런 스토리가 없는 친구들을 동경한다. ‘차라리 일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이 너무 스트레스다.’라고 말할 때, 쉽게 공감하며 ‘나는 일이 너무 힘들다.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라고 위로하듯 말하는 친구들에게

‘그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 주변에 좋은 사람밖에 없는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늘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만 내보이며 살아가는 세상인데, 친구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멋쩍어 하거나 민망해 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가?’ 한 번 생각하고 ‘쩝’하며 흘려버리기 십상이었다.

이 말을 하는 나는 스스로 ‘내가 너무 예민하고 속 좁은 사람이라, 주변 사람들 꼭 한명씩은 빌런이 생기는 게 아닐까.’라는 낮은 자존감을 지니기도 했고, ‘왜 나는 어떤 그룹을 가도 꼭 싫은 사람이 생길까.’싶은 불운에 대한 탄식도 있다.


그래서 꽃집을 열고 ‘진상 손님은 없었나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항상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진상손님을 만난 적이 없다.’라고 대꾸한다.

이건 나 스스로에게 ‘난 좋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주변엔 좋은 사람만 붙는다.’라고 세뇌시키기 위함일 수도 있다.


**


한 번은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서 부케 문의가 들어왔다. 원하는 레퍼런스는 없고, 그저 연한 핑크빛의 여리여리한 느낌의 촬영부케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당시 꽃집 오픈한 초기라 보여줄 수 있는 시안이 많이 없었던 나는 그냥 눈 앞에 있는 조화를 집어 살짝 느낌만 보여주었다.

대충 잡은 조화를 보고도 신부는 너무 이쁘다며 생화로 그 느낌 그대로 내달라고 요구했다.


아뿔싸. 내가 잡은 조화는 그 계절에 나오지 않는 꽃이었고,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꽃시장 사장님들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부랴부랴 그 꽃을 구하려고 연락을 돌렸더란다.

이런 나의 물 속 물장구를 아는지 모르는지, 신부는 내가 중간중간 체크 차 보내주는 꽃사진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했고, 부케가 기대된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켜주어, 무려 3명의 신부가 연이어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나에 대한 무한 신뢰로 자신감이 생긴 나는 촬영 3일 전 완성시안을 보내주었다. 처음 신부의 반응은

“이게 제껀가요?”

였다. 신부는 ‘꽃이 썩었다.’, ‘원하던 여리여리한 느낌이 아니다.’ 등의 이유로 3일 전부터 전날 밤까지 수정을 요청했다.

결국 촬영 전날 밤, ‘왜 자꾸 썩은 꽃을 쓰냐. 그리고 상식이 없냐, 누가 부케를 3일 전에 만들어 놓냐.’며 전액 환불을 요구했다.

‘꽃 안쪽이 움푹 파여서, 밤에 찍으면 조명이 어두워, 안이 어둡게 나올 뿐이지, 절대 내가 썩은 꽃을 쓸 리가 없지 않겠느냐. 초보 꽃집에 맡겨서 불안하지 않도록 3일 전부터 사진을 보내준 것 뿐이지, 매일 새꽃을 사서 매일 새로 만들고 있다.’며 반박했어도, ‘이미 3일 동안 요구에 맞추기 위해 사들인 꽃이 지불하신 금액을 훨씬 넘어서, 전액 환불은 불가능하다.’고 했어도 한 번 떨어진 나에 대한 신뢰는 신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사실 나도 포기하고 싶었던 차라,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환불해주었고, 그날 밤 펑펑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더란다.


‘그 신부가 진상이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도 ‘아니다.’라고 바로 답할 수 있다. 우선 정말 3일 전부터 부케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고,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부케 시안 사진을 어떻게든 밝고 이쁘게 보이도록 찍지 못 한 내 탓이고,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든다.’는 사유로 환불은 불가하다. 라는 안내사항을 설명하지 못 한 내 잘못이었다.

다만 그 때 눈물을 펑펑 쏟은 것은, 오픈 초기부터 내 꽃집에 반감이 생긴 손님을 만들었다는 불안감과, 혹여나 그 신부가 안 좋은 소문을 흘려서 손님이 뚝 끊겨버리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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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었나, 한 아주머니 2명이 들어와서, 무용을 가르쳐주는 선생님께 드릴 꽃을 보러 왔다고 했다. 마침 꽃을 사왔던 날이라, 꽃 종류도 많고, 다들 상태가 싱싱해서 뿌듯하게 ‘마음껏 둘러보시라.’고 했다.


“아유.. 근데 여기 꽃은.. 너무 폈다.”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옆에서 귀찮으니 어서 카네이션 하나 사서 가자는 말에도 신중하게 꽃을 하나하나 보고는


“꽃 상태가 영.. 요 옆에 다른 꽃집 있더라, 거기 가자.”


며 내가 안 보이는지 그냥 친구분을 데리고 나가셨다.

나는 나가는 뒷모습에 대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다 오늘 사온 꽃이에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그 들의 귀까지 닿았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뒤늦게 바로 코 앞에서 안 좋은 말을 들어 기분이 나빴을 꽃들에게 눈길을 주며, ‘너희 예뻐.’ 괜히 혼잣말 같은 외로운 말을 내뱉었다.


‘그 아주머니가 진상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그 날 나가는 뒷모습에 대고 작게 내뱉었던 반박의 외침도 어쩌면, 사실 싸게 데려왔던 재고 꽃이 섞여 있음을 알고 있는 내 양심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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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케를 만들다 남은 꽃은 사실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부케를 만들기 위해서는 줄기를 아주 짧게 자르는데, 이렇게 짧게 잘린 꽃은 꽃다발에 넣기도 너무 짧고, 화병꽂이를 하기에도 너무 짧아, 꽃바구니 주문이 들어와야 쓸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라넌큘러스로 부케를 만들고 남은 꽃을 작은 꽃병에 꽂아두고 관상용으로 놔둔 어느 날이었다.

한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집 화병에 꽂을 꽃을 보러 왔다며 들렀다.

하필 내가 관상용으로 꽂아 놓은 라넌큘러스가 예뻤나 보다.

라넌큘러스와 함께 꽂을 꽃을 보다가, 하필 시들어가고 있는 ‘스위트피’를 고르셨다. 스위트피는 꽃잎이 얇고, 하늘거리는 꽃이다. 그 모양과 라인이 너무 예뻐서 부케로도 많이 쓰이는데, 이 꽃은 시들면서 꽃잎이 투명해진다.

그 투명함이 이뻤는지 라넌큘러스와 섞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스위트피는 수명이 오래가지 않고, 라넌큘러스도 금방 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한 번 정한 마음은 확고해 보였다.

‘그래도 버려질 뻔한 꽃도 이쁜 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아주머니를 돌려보낸 다음 날 이었다.

마감 정리를 하는데 그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다시 들르셨다.


“어제 그 스위트피요. 하루 지나니까 애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죽어버렸는데, 원래 그런거에요?”


아. 나는 ‘올 게 왔구나.’싶은 마음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꽃이 시들었다.’며 컴플레인을 걸어오는 손님이 있을 수 있으니,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한다는 게 이렇게 빨리 위기상황에 직면할 줄 몰랐다.


“그 꽃이 원래 빨리 시들기도 하고, 그 대도 말씀드렸지만 이미 조금 수명이 다한 상태여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리고 그 라넌큘러스~ 너무 짧아서 화병에 꽂으니까 애가 목만 뿅 걸쳐져서 하나도 안 이쁘더라구요.”


휴, 나는 바닥을 향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결국 들꽃 두송이를 서비스라며 무료로 쥐어 드렸다. 부디 이 약소한 서비스가 이 손님의 발길을 끊지만 말길 바라면서.


‘이 동네 주민이 진상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화병이 어느정도 높이인지 미리 체크하지 못 한 내 탓이고, 꽃의 시한부 수명을 미리 체크해서 팔 것과 팔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 한 나의 능력 탓이다.


**


나는 아직까지도 진상 손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건 어쩌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 꽃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 밖에 없어서, 비록 매출이 크지 않아도, 지금 이렇게 즐겁게 꽃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상 손님’은 너무나 주관적인 단어가 아니겠는가.

그 신부가 소개시켜준 3명의 신부는 아무 말도 듣지 못 한 것인지 예정대로 부케 작업을 진행했고, 다들 너무 이쁘다고 해 주었으며,

스승의 날 그냥 나가버린 아주머니는 한 여름에 찾아와, 그 스승이 마지막 공연을 한다며 꽃다발을 주문했다.

동네 주민 아주머니는 그 후로도 종종 들러서 ‘이전 주인은 참 마르고 예뻤다.’고 말하며 화병에 꽂을 꽃 한 두송이를 꼭 사간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진상 손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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