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7

누가 낙엽을 치웠을까.

by Ann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매장 앞을 절대 안 쓸더라고~!”


흠칫.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꽃시장에서 사온 꽃들을 컨디셔닝하고, 자꾸만 감기는 눈을 뜨기 위해 카페인을 수혈하러 근처 카페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작은 식당 앞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식당 주인내외가 큰 소리로 볼멘소리를 하고 있었다.

카페는 내 꽃집으로부터 한 블럭 걸어가야 있기 때문에, 이 주인내외가 내가 지나가는 행인인지, 한 블럭 너머의 꽃집 주인인지 알리는 없고, 글쎄 이제 나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 질문을 듣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쉽게 ‘젊은이’가 나를 지칭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기로 했고.

그럼 나는 무엇에 흠칫한 걸까. ‘자기 매장 앞을 절대 안 쓸더라.’라는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나. 맞다. 나는 꽃집을 오픈하고 한 번도 내 매장 앞을 쓸어본 적이 없었다.


내 꽃집이 붙어있는 건물 1층에는 찜닭 배달전문점, 수선집이 같이 들어서있다.

찜닭집 사장님은 몇 번 꽃도 사러 왔었고, ‘요즘 장사 잘 돼요?’ 근황도 물어 와주고,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에 꽃을 사러 온 딸과, 엄마 생일이라 꽃을 사러 온 아들도 봤기 때문에 눈에 익었지만,

수선집 사장님은 왕래가 적었고, 오픈 첫 날 떡을 돌리러 갔을 때도 오랫동안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통화 중이시라, 조용히 문 앞 책상에 떡만 얹어놓고 나왔더란다.


수선집 앞에는 판자로 덧대어 집 마루 같은 작은 발코니가 있다.

하나님일지 모르는 할머니도 내 꽃집에서 쉬어 가지 못할 때면, 항상 그 마루에 한참을 앉아 계시다 가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 거기에서 짧은 근황토크를 하곤 하신다. 대흥동의 오픈형 미니 경로당이랄까.


내 작은 꽃집에는 개수대가 없어, 하루 한번 이상은 물을 뜨러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수선집과 찜닭집을 돌아가야만 건물 입구가 나온다.


물을 뜨러 이 작은 판자마루를 지나다 보면, 찜닭집 사장님이 할머니랑 대화를 하고 있기도 하고,

옥수수와 대파를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는 할머니도 계시고, 늘 건물 옆 분식포차에서 어묵 한 꼬치 씩 드시는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눕혀 놓고 앉아 계시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분들이 같이 모여서 ‘막내 아들이~’ ‘이잉~? 먼젓번 딸래미?’ 와 같은 가족오락관 진풍경을 보이고 계실 때도 있다.


아주 가끔 수선집 사장님도 여기에 나와 대화에 참여하고 있을 때가 있는데, 내가 눈에 익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해도 수선집 사장님은 데면데면하게 눈길만 주실 뿐이었다.


분명 이 수선집 사장님은 MBTI가 I로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자기 집 앞 자기가 쓸기’룰이 있는지 몰랐던 초보 사장이고, 늘 내 꽃집 앞은 깨끗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꽃을 컨디셔닝하고 쓰레받기에 담기 힘든 작은 꽃의 잔해들은, 그냥 매장 밖으로 쓸어내 버리고는 하는데 이 잔해들이 다음날이면 어디로 갔는지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


과거로 치면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명사수와 같은 오토바이 바이커가 날리는 ‘일수’, ‘대출’ 카드도 ‘나중에 한 번에 모아서 버려야지’ 하고 한 곳에 모아두고는 잊어버리는데 늘 누가 치우는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마포구 구립 청소부들이 치워주는 줄 알았는지 나는 내가 땀 흘리며 빗자루를 쓸지 않아도 깨끗한 내 꽃집 앞을 보고도 이름 모를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루는 아침 일찍 나와서 꽃 컨디셔닝을 하고 예약 주문건을 만들고 있는데 문 밖에서 갑자기 장맛비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수선집 사장님이 긴 호스로 내 매장 앞에 물을 뿌리고 계셨다.

‘어라, 내 매장 앞인데 왜 함부로 물을 뿌리시지.’ 나는 불쾌한 표정으로 사장님을 쳐다봤다.


“허허, 내가 할게~”


내 불쾌한 표정을 읽지 못한 것인지, ‘내가 할게.’라니. 말씨름하기도 귀찮아서, 똥물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 말 없이 들어와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인사도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데 살짝 불쾌한 감정이 먼저 생겨 버린 채로 지내던 때였다.

어느 날도 물을 뜨러 수선집을 지나가는데 하나님일지도 모를 할머니와 수선집 사장님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어이구 씩씩하다~!”


할머니는 내 이름을 ‘씩씩하’로 알고 계신 건 아닐까, 하며 ‘헤헤’ 헤실거리는 웃음으로 답하고는 지나가려는데 뒤에서 수선집 사장님이 하는 말이 들렸다.


“저 아가씨 알어?”


“이잉 알지. 꽃집 처녀잖여~”


그 이후로 할머니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몰라도, 그 날 오후 수선집 사장님이 대뜸 찾아오셨다.


“여기 옆에 물 나오는게 이 집 에어컨에서 나오는거여?”


깜짝이야. 인사도 없이 훅 들어온 멘트에 잠시 입만 벙긋거렸다. 게다가 수선집 사장님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데 마지막 ‘~여?’로 끝난 것은 존댓말을 쓰기엔 내가 자신보다 한참 어려보이고, 그렇다고 반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색한 사이라 존댓말과 반말, 그 사이 어딘가를 발음한 듯 했기에 울산 출신인 나로서는 그 말투가 상당히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어… 아 옆에 배수관이요? 네 여기 에어컨에 연결된 거라서,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에요.”


이전 주인이 버리듯이 두고간 에어컨이라, 배수호스가 건물 밖에 짧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덕에 에어컨을 틀면 내 꽃집은 하루종일 얼굴 옆에 폭포수같은 땀을 흘리듯이 콸콸콸, 문 옆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아~ 여기서 나오는 거구나. 나는 어디서 계속 물이 나와서 뭔가 했어~ 기다려 봐.”


수선집 사장님은 본인 가게에서 기다란 호스와 까만 방수테이프를 들고 나오더니 맥가이버처럼 물이 콸콸 나오는 배수관과 호스를 길게 연결해서 하수구 구멍으로 물이 빠지도록 연결시켰다.

나는 이미 한 번 불쾌한 첫 감정이 남아있던 터라, ‘내 허락도 없이 내 매장에 왜 이렇게 관여하나.’하는 언짢음에 퉁명스레 말했다.


“어… 이거 배수관 잘못 연결하면 물이 안 빠져서 매장 안에 물이 새던데 괜찮을까요?”


“이거 하수구로 물 빠지게 내가 잘 연결시켜 놨여~”


쯧, 여전히 언짢은 채로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꽃을 다듬었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즈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마감을 위해 정리를 하는데, 수선집 아저씨가 함박웃음을 띄며 문 앞에서 소리쳤다.


“내가 아주 꼼~꼼하게 잘 연결했더니 물이 아주 잘 흘러나와~! 새지도 않아!”


나는 에어컨을 한 번, 사장님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네. 꽃집 문 옆에서 물이 콸콸콸 나오지도 않고, 에어컨에서 물이 뚝뚝 흐르지도 않네.


“아… 감사합니다!”


“에헤이 허허 뭘~!”


집에서 시키지도 않았지만 알아서 거실 전등을 갈고 환해진 거실을 보며 엄마에게 뿌듯하게 자랑하는 아빠처럼,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면서 뿌듯하게 수선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음 날, 수선집 앞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7/6~7/9 몽골 선교일정으로 쉽니다. 죄송합니다.]


아, 기독교시구나. 수선집 사장님은 할머니가 하나님일 수도 있는 거 아시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아 꽃집 문을 열려는데 멈칫.

꽃집 앞에는 ‘일수.당일.달돈’, ‘대출’ 카드들이 널브러져 있고, 건물 앞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하루 정도는 ‘청소부들이 쉬었나보다.’ 생각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내 매장 앞에는 낙엽과 담배꽁초, 명사수들이 날린 카드가 쌓여 있었다.

꽃집을 열고 처음으로 매장 앞을 쓸어 봤다. 해가 쨍쨍하고, 날씨는 덥고 장마철이라 습하고. 등에서는 땀이 주르륵 났다.


10일은 월요일이라 휴무였고, 다음 날 화요일에 꽃시장에서 꽃을 잔뜩 사서 아침 일찍 매장에 왔더니 매장 앞이 다시 깨끗해져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사입한 꽃들을 컨디셔닝하고, 꽃 잔해들을 매장 밖으로 쓸어내 버린 다음, 한 번에 빗자루질을 하려고 나가는데, 수선집 사장님이 큰 빗자루를 들고 내 매장 앞을 쓸고 계셨다.

내가 빗자루를 들고 멈춰 서서 사장님을 바라 보니,


“어엉~ 내가 할게. 허허.”


아, 내 매장 앞 낙엽은 그 동안 수선집 사장님이 쓸어준 거구나.

꽃집 사장이 매장 앞을 쓸어야 되는지 몰랐다는 건 모르신 채로 묵묵히 내 꽃집 앞도 쓸고 계셨구나!


수선집 사장님은 그 후로도 매일 같이 내 꽃집 앞까지 쓸고, 호스로 물을 뿌려 부스러기들을 씻어내었다.


그리고 수선집 사장님이 또 며칠 간 선교활동을 간다며 문을 닫아 놓으면, 나도 슬그머니 빗자루를 꺼내 와서 수선집 앞까지 쓸었다.


어느덧 사장님이 내 매장 앞을 쓸다가 마주치면, 나에게 ‘청소비 줘~ 허허.’ 하시며 농담을 던지신다.


사실 마루에 앉아서 수선집 사장님은 하나님일지도 모를 할머니랑

‘저 꽃집 아가씨는 언제 할머니가 하나님인 걸 알까요? 오늘은 저 아가씨가 얼마 꿔줬어요? 그럼 내가 낙엽 쓸어줘야겠네.‘하며 내 선행을 평가하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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