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6

선생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by Ann

나는 4월에 꽃집을 오픈했다.

내 꽃집 바로 앞에는 연남동 연트럴파크부터 공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인, 경의선숲길이 있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고 봄바람에 꽃비가 내려서 장관을 이루던 봄에 오픈했던 터라,

오픈하자마자 4월에 달콤한 수익을 얻었더란다.


그리고 이어진 5월은 생화를 운영하는 꽃집에는 절호의 기회.

연 매출을 이 때 전부 끌어들인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가정의 달이다.


오픈한지 첫 2달이 아주 짭짤했던지라 초보사장의 희망은 점점 부풀어져만 갔더란다.


그런데 ‘한송이에 7천원, 세 송이에 만 오천원’이라 실수하는 산수 꽝 초보꽃집 사장은


곧 다가올 비수기를 예견하지 못 한 채, 4,5월 벌어들인 돈을 모조리 이쁘고 비싼 꽃 사는 데에만 투자해버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단을 찾아야 했다.


나는 평일 아르바이트를 택했는데, 동네 유치부/초등부 수학학원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어린 아이들이 나를 잘 따랐는데, 그게 어른들 눈에는 내가 어린 아이들을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그런 것이라고 보였나보다.

언제나 친척들이 모여도, 놀이터에 가도 나는 어린 아이들 담당이었다.

그 때는 나에게 어린 친구들을 맡겼는데 ‘저 어린 애들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꼭

‘저 아동학대할 거에요!’로 들릴 것만 같아, 억지로 즐거운 척 아이들과 놀아줘야 했는데,

어느정도 크고 나서 부터는 ‘나는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유치부 초등부 대상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한 번은 7살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전화 와서


“1층에 있을테니 끝나면 거기서 기다리지 말고, 1층으로 내려오라고 해주실 수 있나요?”


라고 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그 친구에게 ‘엄마가 1층에서 기다리니, 1층으로 가라.‘고 전해주었고,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가 오려면 오래 걸리니, 계단으로 내려가야지’ 혼잣말을 하며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을 잊지 않고 잘 전달하며 풀린 긴장과

드디어 아이들이 집에 갔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며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하신 어머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셨다.


“00이 수업 안 끝났나요?”


이 때 등줄기가 어찌나 서늘해지던지. 식은땀이 순식간에 나면서 긴장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까.... 계단.... 내려간다고.....”


그 어머니는 ‘계단’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계단으로 뛰어 나가셨다.


”00아!“


“엄마~!”


그 친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어머니는 ‘너 왜 계단으로 다녀 위험하게!’라며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셨다.

‘다음부터는 계단으로 갈 때는 내가 동행 해주어야겠구나.’

뒤늦은 후회와 자각으로 내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이런 뉘우침의 순간들은 약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단히 쌓여갔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나를 너무나 좋아했다.


쉬는시간만 되면 ‘데스크 선생님‘ 하며 데스크에서 종이접기를 하거나, 색칠놀이를 하거나, 선생님 그려주기 같은 걸 하다가 가곤 했었다.

자연스레 나는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라고 생각하며 ‘성선설’에 한 표를 던지게 되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그려줄게요.”


7살, 앞니가 빠져서 웃을 때마다 웃음 한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는데도 그 해맑음이 이쁜

남자아이가 말했다.

통통하게 손보조개가 박혀 있는 손으로 꾸물꾸물 뭔가를 그려서 줬는데, 마치 닭같이 생겼다.


“어머나 선생님 닭띠인 줄 어떻게 알고 닭처럼 그려줬어?”


그래도 ‘선생님 그려줄게요.’라고 했으니, 이건 닭이 아니라 나일 것이다.

‘닭같이 생겼다.’라는 말이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들릴 나이가 아닐테니, ‘최대한 나의 실망감과 너의 그림 솜씨를 아름답게 연결 지어 말해주겠다.’라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어? 나도 닭띠인데.”


웃음 속의 검은 구멍이 작아졌다. 해맑게 웃다가 ‘선생님이 왜 나랑 띠가 같지?’라는 의문으로 웃음이 사라지면서 빠진 앞니 구멍이 가려진 것이다.

궁금증과 ‘어쩌면 내가 정말 대단한 발견을 했나봐!’싶은 기대감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그렇구나. 어느덧 나는 2바퀴 띠동갑을 만나는 나이가 되었구나!

이 초롱초롱한 위대한 발’견’가에게 내가 24살의 차이가 나는 띠동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머나? 선생님이랑 같은 닭띠라서 선생님 그림도 이렇게 이쁜 닭처럼 잘 그려줬구나!”


나는 이제 7살 어린아이가 홀로 계단을 내려가지 않도록 동행해주고, ‘커서 멋진 사람이 될래요.’하는 아이의 초롱초롱함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었다.


마지막 날, ‘이별’이라는 단어는 가르칠 자신도 없고, ‘일을 그만둔다.’라는 설명을 할 시간도 없기에

아무 말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듯이 마지막 근무를 했다.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이 날 따라 ‘선생님 주려고 가져왔다.’며 포켓몬스터 레어템 카드, 혼자 먹으려고 가져왔던 과자, 열심히 배워서 접어온 종이튤립과 같은 선물을 줬다.

‘내일 또 가져다 줄게요.’라는 말과 함께.


내가 3바퀴 띠동갑 친구들을 만날 즈음이 되어서야 나에게 정을 붙인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오늘은 나를 만나는 마지막 날이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


약 3개월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는 꽃집에서 키즈클래스를 열었다.

금쪽이만 오지 않는다면 어떤 아이라도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10살의 여학생이 수업을 들으러 왔다.


“선생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럴 수가.

2바퀴 띠동갑 친구들의 만남과 더불어 이제 나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을 듣는 나이가 되었구나.

‘나보다 연장자인 어른에게는 ‘나이’라는 표현보다 ‘연세’라는 표현을 쓴다.’를 배워왔을 이 아이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선생님은 닭띠에요. 31살! 만 나이 알아? 만 나이로는 30살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아직 10살은 ‘어머 그렇게 안 보이세요.’라는 말은 배우지 못 했겠지.


10살 친구는 수업 마지막 날, 내 명함꽂이에 꽂혀있는 강아지풀을 유심히 보더니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내 꽃집에 꽃을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이곳 전 주인이 복권 당첨되었대요~’라고 말하듯이 이 친구에게도 말해주었다.


“이건 강아지 풀이야. 영어로는 ‘럭키 그라스’라고 한대. 이 풀이 행운을 불러온다구.”


“우와 귀엽다. 저 이거 가져도 돼요?”


나는 강아지풀, Lucky Grass 2송이를 같이 꽂아주었다.


약 3개월 간의 유치부/초등부 학원에서의 뉘우침들은 플라워클래스를 들으러 온 10살 친구와 그 어머님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나를 발전시켰나 보다.


며칠 뒤, 어머님은 아이의 바이올린 콩쿠르에 선물할 대형 꽃다발 2개를 주문하셨고, 주변 엄마들에게도 주문의사가 있는지 물어봐주겠다고 했으므로.


내 명함꽂이에 있던 강아지풀이 어쩌면, 나에게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그 사랑으로 내 꽃집에 새로운 클래스를 열 기회를, 그리고 그 클래스에서 바이럴 효과가 나는 행운을 진짜 가져다 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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