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미스터리 5

Lucky Grass

by Ann

강아지풀이 영어로는 Lucky Grass라고 한다. 행운을 불러오는 풀이라서 그렇다나. 물론 나도 전해들은 이야기라 진위 여부는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직접 찾아주시길 바란다. 만약 아니라면 따끔하게 나에게 알려주기를.


꽃집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픈 첫 달은 몸이 부서져라 영업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쉬는 날 없이 영업을 할 때였다.

웬만한 꽃집도, 이 근방 꽃집도 웬만하면 7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밤 늦은 시각 불 켜진 꽃집에 술 먹고 귀가하는 아저씨들, 늦은 시각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기분 전환으로 한 두송이를 사러오는 커플, 자주 들르는 바의 친한 바텐더에게 선물하려고 가벼운 꽃 한송이를 사가는 미혼의 남성(그리고 바텐더는 남성이다.)… 소소하지만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꽃집을 찾아오는 이들은 종종 있었다.


이 날도 어김 없이 밤 늦도록 꽃을 만지면서 불시에 찾아올지 모를 밤손님(밤손님이라니 살짝 외설적이기도 하지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웬 할아버지 같이 늙은 듯한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로


“꽃다발 3개 됩니까?”


대뜸 전화기 너머에서 물어왔다.


“아 네네 가능해요. 몇 시 방문하세요?”


“아 내가 지금 40m 거리에 있는데, 갈 수는 없고. 5만원, 3만원, 3만원 이렇게 3개. 그리고 카드결제 할게요.”


이게 무슨 말인가.

대략 저녁 9시 정도였고, 이 시간이면 옆 레스토랑도, 앞 정육점도 전부 문을 닫아 이 골목은 어두컴컴하고. 나를 구하러 와줄 할머니도 이 때는 자고 있지 않겠는가.


머릿 속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치고 가던지. 꽃집을 열었다기에 깜짝 방문해서 매출을 올려주려는 삼촌인가? 아빠 친구인가? 내 SNS를 보고 옛 친구가 짜잔~ 하면서 나타나려는건가?


“음, 카드결제는 직접 오셔야 가능하고, 오시기 힘드시면 계좌이체는 가능하세요. 이 번호로 제가 계좌번호 남겨드릴게요. 입금 후에 제작해드립니다. 퀵비는 별도에요.”


“아 카드… 카드결제 해야 되는데, 카드 안돼요?”


“그럼 직접 오셔서 결제하셔야 해요.”


“아… 그럼… 일단 알겠습니다.”


어눌한 말투의 그가 전화를 끊었다. 별 희한한 사람이 다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꽃 정리를 하고 있었다. 5분쯤 지났나,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꽃다발 준비 됐습니까?”


ㅡㅁㅡ^? 혹시 2000년대 초반 많은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귀여니를 아시는가? 그가 자주 쓰곤 했던 표정 이모티콘이 있다. 이를테면, 일진이던 남학생이 별 볼일 없는 여학생에게 고백 공격을 했을 때 신데렐라 운명의 그 여학생이 짓는 표정이라던가.

이야기 전개에서 큰 고구마 부분을 차지할, 여주인공이 서브 여주인공 계략에 휘말려서 마치 바람을 피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남주인공을 마주쳤을 때, 남주인공 혹은 여주인공이 짓는 표정이라던가.

ㅡㅁㅡ^? 어이없으면서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황당하고 짜증나는 마음을 대변하는 표정. 내 표정이 딱 그랬다.


“네? 돈을 입금해주셔야 만드는데, 입금을 안해주셔서요.”


“아이… 나 지금 가고 있는데?”


뭐야. 위험한 사람인가. 나는 안 그래도 밤 늦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꽃집을 지키느라 짜증나 있던 터였는데, 이 때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잘 참고, 운이 좋다면 아까 말한 5만원, 3만원, 3만원, 총 합 11만원을 벌 수 있지 않겠는가.


“아~ 그럼 오셔서 결제하시겠어요? 그럼 지금 만들게요. 하나 당 20분 정도 걸려요.”


“아, 저 3분 뒤 도착합니다.”


이 때는 꽃다발 만들기가 서툰 초보 사장이었던지라, 급작스러운 꽃다발 3개 주문인데 손님이 3분 뒤 올 것이고 이 손님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긴장되었던지.

전화를 끊고 허둥지둥 꽃을 잡기 시작했다.


곧이어서 꽃집에 들어서는 남성은 늙고 어눌했던 말투와는 너무 다르게도 멀끔하고 단정하게 이발된 머리와 단정한 안경, 선크림을 바른건지 하얗게 화장한 듯한 얼굴, 그리고 황토색의 자켓과 진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장황하게 외양을 설명했지만 솔직히 짧게 말하면,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


“아 준비되었습니까?”


이 남자가 아까 전화 속 그 남자라는 건 어눌한 이 질문으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 하나 당 20분은 걸려서요. 조금 기다려주시겠어요?”


적어도 먹튀 고객은 아니구나. 결제를 하러 오긴 왔구나 싶은 안도감과 더불어, 손님이 보는 앞에서 무려 3개의 꽃다발을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덮쳐왔다.


“아- 사실 제가 지금 접대 중이라.”


‘접대’라. 4년이라는 짧으면 짧다는 직장생활을 했던 나에게 ‘접대’라는 말은 생소하기도 하고, 불건전한 관계에서 나오는 단어라는 편협한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남자는 호스트바에서 일하고 있고, 연상의 아줌마에게 꽃을 선물하려고 왔구나. 라는 전제를 깔았나보다. 그리고 그만큼 잘생기기도 했으니까.


“아~ 받으시는 분이 여성분이시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는데 그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쩌면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을 수 있다.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아- 사실 친한 형한테 대접할 건데요.”


아직 내가 섣불리 깔아놓은 전제를 지우지 못 한 나는 연상의 ‘남자’에게 환심을 사려는건가! 생각을 틀었다.

그런데 계속 듣자 하니 이보다 가관이다.


“5만원 꽃다발은 친한 형 wife 줄 꺼고, 3만원 2개는 비슷하지만 5만원보다는 못 하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은 ‘뭔지 알지?’ 즉, ‘You know what I’m saying?’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끝맺지 않았다.

와이프라는 단어를 wife라고 적은 것은 그가 그만큼 발음을 굴렸다는 걸 서면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들을 수록 가관인 이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이렇다.

자신은 지금 친한 형과 근처에서 술을 마시는 중인데, 그 친한 형이 아직 프로포즈를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깜짝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데 근처 꽃집이 전부 문을 닫았더라. 그런데 때마침 가까운 곳 꽃집 하나가 열어서 자신을 시켜서 몰래 꽃을 사오게 했다. 그 자리에는 다른 여자들도 같이 있어서 그 여자들에게 줄 꽃다발 2개도 사가는 것이다.


이 얘기를 어찌나 어눌하고 느리게 말하던지. 처음에 친한 형 와이프에게 자신이 대신 프로포즈 한다는 건가? 친한 형에게 프로포즈를 한다는 건가? 친한 형 와이프가 아직도 프로포즈를 못 받았다며 한탄해서 자기라도 대신해서 꽃을 선물하러 왔다는건가? 여러 번의 오해를 정정받아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꽃다발 3개를 주문하게 된 스토리 후에도 초보 꽃집사장은 꽃을 다 완성하지 못해서, 공백이 생겼다. 그는 이어서 갑자기


“Sorry, 미안해요. 나 한국인인데, 한국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아! 그렇구나. 말투가 어눌한 게 외국에서 왔구나. 근데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던 건,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괜히 자기 혼자 ‘Hey, 나 한국인이라니까요.’라는 식으로 항변을 한다던가, ‘Sorry, 내가 San Francisco에 있는 어… 포도, 포도농장에서 worked 했는데.’라는 식의 쉬운 영단어만 굴려 말한다던가 하는 걸 볼 때마다 ‘혹시 사기꾼인가.’ 하는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람이 진짜 샌프란시스코 포도농장에서 일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말하니까 정신없이 대꾸해줄 뿐이었다. 내가 서툴게 잡고 있는 꽃다발에 집중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 그럼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기생충’ 영화 보셨어요? ‘Parasite’요.’라고 말했을 때였나.


“’Parasite? 오우 못 봤어요. 징그럽잖아요.”


“그거 영화제목이에요. 한국 영화인데 칸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윤여정 선생님이 노미네이트도 됐다고요.”


자꾸만 자신의 찬란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추억을 얘기하려기에, 나도 알 건 안다고 표현하고 싶었나, 작은 꽃집의 사장도 문화 지식이 풍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아무렴 어때, 사기꾼일지도 모르는 이 남자에게 가르치듯이 말하고 말았다.


“아, 미안해요. Sorry, 몰랐어요.”


이 남자는 필요도 없는데 내가 자르고 있는 포장지를 무심한 듯 잡아주면서 말했다. ‘이거 플러팅인가.’ 착각하면서 나는 여전히 내 꽃다발에 집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로 이어 말했다.


“나중에 꼭 보세요. 진짜 재밌어요.”


“그럼 우리 나중에 보러갈래요?”


멈칫. ‘이거 진짜 플러팅인데.’ 그 남자의 말과 내 말 사이에 꽃다발을 포장하고 있는 서걱서걱 소리가 채워져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영화 이미 끝났는데요?”


그 이후부터는 그 남자가 본격적으로 내게 플러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착각이 심해도, 이건 정말 착각이 아니라 의도가 어쨌든, 플러팅이라고.


“그래요? 그럼 나중에 다른 영화 같이 보러갈래요? 밥 먹는거 좋아해요? 같이 밥 먹으러 갈래요? 집이 어디에요? 나 잠실 사는데 여기 차로 금방 와요.”


이 어눌한 말투의 남성이 이 말을 할 동안 ‘사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할까 생각하면서도 꽃다발이 빨리 완성되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꽃다발을 포장할 즈음 그 남자에게 택시를 부르라고 했고, 택시를 기다리면서 그 남자는 내 명함꽂이에 꽂혀있는 강아지풀을 보았다.


“Lucky grass.”


“네?”


“럭키 그라스, 이거 한국 이름 뭐에요? 미국에서는 럭키 그라스라고 해요. 행운, 그거 온대요.”


약 40분 남짓 시간동안 이 남자에 대해 경계심이 가득했는데 이 순간 경계심이 잠시 풀어졌던 건 사실이다. 내 꽃집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던 때에 적절하게 희망을 채워준 말이었으니.

그 뒤로도 나는 명함꽂이에 강아지풀만 꽂아 놓는다.


이게 신이든, 행운이든, 복권 당첨이든 뭐든 불러와달라고 빌면서.


아 그 남자는 ‘와인 보틀’ 회사명함을 내게 하나 주고 갔고, 그 뒤로는 본 적도, 연락 온 적도 없다. 어쩌면 정말 회사 영업을 뛰러 온, 회사 연혁을 엄청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사기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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