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하루키가 쓴 작품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을 정도이니, 《일인칭 단수》를 읽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나에게 불가능한 행위나 마찬가지다. 다만, 서평을 쓰려면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읽은 책을 곱씹어야 하기에 서평 초보자인 나로서는 애착이 있는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일 때에나 가능하다. 누가 내 글을 읽을지(또는 읽어 줄지는) 모르겠으나 다소 주관적이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하루키는 1987년에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으로 그의 모국인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합류하며 전 세계에 팬덤을 구축했다. 나 역시 동 작품으로 하루키 세계에 빠져 지금까지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래오래 살아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대표작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Q84》,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댄스 댄스 댄스》, 《언더그라운드》, 《스푸트니크의 연인》, 《기사단장 죽이기》 등이 있다. 하루키의 작품은 특유의 독특하면서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더불어, 모두가 공감할 만한 현대인의 고독한 감성을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하게 풀어나가는 문체가 특징인데 《일인칭 단수》에서도 어김없이 그 매력을 발산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 (……)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 중에서
익숙한 장소나 행동이 돌연 어색하고 낯설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매일 마시는 커피 맛이 오늘따라 너무 쓰다거나, 매일 나누는 평범한 인사말이 오늘따라 날카롭게 들린다거나 말이다. 표제작인 <일인칭 단수>의 주인공 ‘나’는 정장을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그렇게 차려입고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시비를 걸어온다. 귀찮은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아서 계산하고 술집을 빠져나오는데 들어올 때 지나온 술집 바깥 세계가 돌연 낯설게 느껴진다. 하루키는 주인공 ‘나’라는 존재를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잔잔한 듯하지만, 여운이 깊게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단편소설집《일인칭 단수》는 표제작 <일인칭 단수>를 포함해 <돌베개에>,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사육제>,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총 8개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재즈, 클래식, 올드팝 등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팀에 관한 이야기, 원숭이 이야기 등 그의 대표작에서 쉽게 등장하는 소재들을 활용해 더할 나위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 류 단편집을 완성했다. 모든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 속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일인칭 과거 시점으로 말하듯이 진행된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가 착각할 정도이다.
《일인칭 단수》의 가장 큰 매력은 ‘여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쭉쭉 읽어 내려가도 좋겠지만 작품을 더욱 즐기고 싶다면 각각의 단편을 읽은 후에 스토리를 상상하며 곱씹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어쩌면 재미를 넘어 당신의 세상이 새롭거나 낯설어 보이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일인칭 단수>의 주인공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