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토독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

by 흣쨔

* 2021.04.05에 출간된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독립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해방촌, 강남점), 망원 이후북스, 공릉 지구불시착, 인천 북극서점, 원주 책빵소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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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독토독. 빗방울이 뜬다. 다리에 한 방울, 팔에 한 방울, 얼굴에 한 방울, 머리에 한 방울.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우산을 펼칠까,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펼치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자.


토도도독, 비가 온다. 우산을 펼치자. 우산에 빗방울이 토도도독 떨어지는 진동이 느껴진다. 내딛는 걸음마다 신발의 앞코가 젖어간다. 까만 신발이 더 까맣게 변한다.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기고, 그를 피하려는 발재간이 늘어간다. 휘적휘적, 시선은 발에 머물고 발은 춤을 춘다. 사람들 다 같이 춤을 춘다. 비틀비틀, 휘적휘적.

신호등 앞에 선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급히 뛰어가는 사람, 머리 위로 내리는 비를 손으로 막아보려는 사람, 다 포기한 채 그냥 맞는 사람. 언젠가 비가 많이 올 때 우산 없이 홀딱 젖어가며 비를 맞아보고 싶다- 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차들은 웅덩이를 가르며 기다란 빗자국을 만들고 솨아솨아 소리를 내다 멈춘다. 그리고 신호등이 켜진다.


흣차, 재빠르게 우산을 접고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다람쥐 마냥 재빠르게 들어가려고 했건만 언제나 나의 몸은 빗방울보다 느리다. 머리와 어깨가 조금 젖은 채로 계단을 오른다. 접은 우산 끝에서는 똑똑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 방울씩 바닥에 자국을 남긴다.



타닥타닥. 창문 밖에서 비가 말을 건다. 나, 내리고 있어. 이렇게 내리고 있어. 불투명한 창은 열고, 투명한 창은 닫아둔다. 슬쩍 밖을 구경한다. 안에서 구경하는 비는 짜증을 뺀 감성만 남아 있다. 창문에 동글동글 매달리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하늘이 심상찮다. 비가 더 올 것 같다.


파다다다- 비가 많이 내린다. 꼭대기 층인 우리 집 지붕을 부서질 듯이 내린다. 집 안에 있어서 다행이다. 신발 앞코만 젖어서 다행이지, 양말이 쫄딱 젖었다면 한참 짜증을 낼 뻔했어. 번쩍- 번개가 친다. 창문에 바짝 붙어 서서 다음을 기다린다. 쿠콰과광-! 천둥이 친다. 흠,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시원하게 치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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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끌고 창문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 비 내리는 건 싫지만 천둥 번개는 좋아한다. 번쩍대는 하늘과 쿠궁대는 하늘을 구경하는 게 재밌다. 번개 언제 치지,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구름에 선을 그으며 치는 번개가 보고 싶다. 하지만 매번 보이는 건 어디선가 선을 그린 후 뿌옇게 번쩍대는 번개일 뿐이다. 쿠구구궁- 천둥소리가 들리는 시간과 크기를 가만히 들으며 번개가 얼마나 멀리서 쳤나 가늠해본다. 언젠가 바닥에 내리꽂는 번개를 보고 싶다. 아주 가까이에서. 아, 내가 맞는 건 말고.


내리는 비를 보니 몇 년 전부터 실행하지 못하고 미루던,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른다. 우비와 장화가 사고 싶다. 우비는 노란색 혹은 남색이면 좋을 것 같고, 장화는 회색 혹은 노란색이면 좋을 것 같다. 우비를 쓰고 장화를 신고 빗속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 사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몇 년째 고민만 하는 이유는 마음 한편에서 굳이 사야 하나, 하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우비를 쓰면 얼굴은 다 젖고, 어딘가 실내로 들어가야 하면 우비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거고, 그 우비를 놔둘 자리도 마땅찮고. 장화를 신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생각보다 신는 날이 많지 않아 신발장 속에서 먼지를 폭폭 먹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굳이 사야 하나, 아니 사고 싶다, 아니 사지 말까.



어느새 비가 그쳤다. 요란하고도 변덕스러운 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무지개가 보인다. 아주 연하고 투명한 무지개. 몸을 살짝 움직이면 사라질 것 같은 무지개. 얼마 만에 마주한 무지개인 거지. 숨을 참고 구름과 함께 날아가는 무지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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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는 소리, 흣쨔!


느린 걸음의 산책가이자 수집가.

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후루룩 흘러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이야기 조각을 수집한다. 조각은 그의 조각이기도 하고 당신의 조각이기도 하다. 때론 그림책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잠깐 걸음을 멈춘 그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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