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어려운 법이라
취재기자가 처음 됐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는 그다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종군기자’ 같은 직업을 떠올리며 기자가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기자를 장래희망으로 꿈꿔본 적은 없었다. ‘기레기’라는 말 때문에 어느 시점부터 그리 존경받지 않는 직업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혐오표현은 차치하고서라도 애초에 내 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상당히 정신적이고 이상주의적이기에 - 판타지 소설을 쓰니 말 다했다 - 언론사나 기술, 라이프스타일 쪽 잡지가 아닌 ‘미술’ 분야의 잡지 기자로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한 6개월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처음 3개월은 진짜 매일매일이 고난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말할 수 있는 부분만 말하겠다. 업무적인 부분 중심으로. 첫 업무는 두 페이지짜리,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하고 짧은 인물 소개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미술잡지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도 큼직하게 실린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그 작가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이전 인터뷰 기록, sns 등으로 작품 경향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의 커리어와 작품경향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작성한다. 작품이 함께 실리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질문도 준비한다.
이제 작가에게 연락할 차례. 전화를 걸어서 내가 누구이며 이런 내용의 기사고 그림과 인터뷰 글을 써서 보내달라, 그렇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를 걸기 전에 얼마나 떨리던지. 나는 콜 포비아가 있었다. 꽤 고질적인 두려움이었다. 맨 처음 전화를 걸면 작가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여보세요? 내 번호가 그들에게는 모르는 번호이기 때문에 매번 설명을 해야 했다. 나는 ㅇㅇ잡지사에 새로 들어온 기자이며, ㅇㅇ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 ㅇㅇ잡지사가 어디인지 아는 작가라면 목소리가 환하게 바뀐다. 대체로 인터뷰에 응한다.
서면 인터뷰이므로 질문지를 작가의 메일로 보낸다. 기한은 일주일 정도 준다. 일주일 뒤 인터뷰 내용과 작품이미지 파일이 온다. 그때부터는 기사를 작성한다. 기자 선배들이 썼던 같은 코너의 글들을 참고한다. 문단의 길이, 내용의 순서, 강조해야 할 부분 등 형식 면에서 최대한 모방한다.
그렇게 처음 쓴 글은 선배의 검토를 거친다. 약간의 문법적 교정, 톤 교정. 교육기관 등의 정식명칭을 틀리지 않게 썼는지, 내용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한다. 선배가 검토한 것을 받고 나는 어디가 보완되어야 하는지 확인한다. 다음 글을 쓸 때 잘 반영하도록. 고쳐진 원고는 디자이너에게 넘어간다. 디자이너는 해당 코너의 페이지를 디자인한다.
그때를 시작으로 여러 작가들과 전화를 하고, 코너를 설명하고, 인터뷰 약속을 잡고, 혹은 전화를 인터뷰를 하면서 전화에 익숙해져갔다. 전화라는 것은 사교성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알아가고 교류를 넓히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사교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가끔은 가식적으로 보일지라도 밝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공유하는 것. 형식적으로 하는 스몰톡이 가끔은 진심의 공감과 응원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험할 때, 그 시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대단한 경력을 지닌 작가에게 전화를 걸 때는 1년차가 되었어도 힘들기는 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첫 달에 내가 맡은 기사는 하나 더 있었다. 경력이 굉장히 긴 작가분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는데, 경력이 굉장하기에 사전조사할 것도 많았다. 도대체 뭘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드디어 약속한 인터뷰 날. 선배 기자님과 동행해서 인터뷰했다. 많이 걱정됐지만, 체코에서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이런 떨리는 상황은 수백 번도 더 마주쳤다. 체코어로 인터뷰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어로 질문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라고 되뇌이며 긍정적이고 상큼하게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님의 수상경력이나 협회 등에서의 요직 경험이 무엇인지 듣긴 했지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이 잘 안 잡혀서 작가님께는 최대한 자세히 질문해야 했다. 작가는 뭐 이런 것까지 묻나 했을 것이다. 첫 세 달이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이처럼 부딪치며 알아가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번째 기사는 써야 하는 분량이 더 길었다. A4, 글자크기 10 기준으로 한 페이지하고도 조금 더 써야 했다. 그의 작가 인생을 다루고, 작품세계를 다루고, 근황을 다뤘다. 쓰다 보니 기관의 명칭이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수료나 임명한 연도도 명확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작가님께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해야 했다. 나눠서 여쭤보면 번거로우니, 한 번에 여쭤보기 위해 딱 고칠 부분만 남겨두고 글은 다 쓴 다음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고친 다음에 검토를 위해 선배님께 드렸다. 아뿔싸, 또 작가님께 사실확인해야 할 게 생겼다. 다시 작가님께 연락한다. 멋쩍다. “죄송해요. 번거롭게 자꾸 연락드려서ㅠㅠ”
기사를 다 쓰고 나면 마감이 남아있다. 이번달에 들어갈 기사들을 모조리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교정/교열한다.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은 없는지, 문장이 어색한 건 없는지, 문장부호가 빠진 건 없는지 등. 그렇게 두 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최종수정을 거쳐 인쇄소에 넘겼다. 내가 쓴 기사가 들어간 잡지가 여러 부 인쇄되어 나왔다. 내가 쓴 글이 매체에 실린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실감한 순간이었다. 꽤나 뿌듯하기도 하고, 잘못 나간 게 있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이전에도 밴드 음율의 세계관 소설을 쓰면서 내 글이 여러 부 인쇄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내 글이 계속 세상에 나오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일이 꽤 힘들어서 과연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벅참이나 설렘 같은 건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첫 달을 보내고 든 생각. 1년만 버텨보자 하다가도 1년을 어떻게 버티냐 하며 절망했다.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 뭐든지 큰 산으로 보였다. 다음 게시물에서는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했던, 좀 더 자잘한 생각들에 대해 풀어볼까 한다. 그 이후에는 기자라는 직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인터뷰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