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인 시각에서 언론 바라보기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언론이란 무엇인가, 많이 생각했다. 여러 정보가 모이는 곳이며, 언론이란 이름으로 정보를 당당하게 입수할 수 있는 곳이며, 단지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이 아닌, 정보를 선별하는 기능이 요구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계속 저울질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보란 맨 앞으로 올수록 더 많이 읽히며, 뒤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진 독자는 정보를 흡수하는 것을 ‘포기’한다. 페이지를 덮어버리든, 화면을 꺼 버리든.결국 언론이란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점점 실감했다.
잠깐 언론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디지털 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신문사를 포함한 언론사는 대단한 권력을 지녔지만,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기반 언론사가 생기고, 결정적으로 실시간으로 먼 지역의 정보도 접할 수 있는 SNS까지 등장하면서 언론사의 입지는 비교적 좁아졌다.
예전에는 돈을 주고 신문을 사서 읽었지만, 요즘에는 인터넷만 접속하면 무료로 기사를 볼 수 있으니 언론의 권력은 그만큼 낮아진 걸 실감할 수 있다. 이제는 수많은 인터넷 언론사가 경쟁한다. 한 사건도 열 개의 언론사가 문장 순서만 조금 바꾸고 글자만 조금 바꿔서 사이트에 올린다. 많은 언론사들이 광고 수익으로 먹고산다. 독자가 기사를 클릭해야 웹페이지에 있는 광고가 조회된다. 광고주는 조회수나 클릭 횟수로 광고비를 지불한다.
이러니 독자들이 클릭하도록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혹은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자극적인 사건을 더 취재하려 한다. 우리는 이 기사가 정말 사회적으로 시의적절하게,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기사인지, 단지 높은 클릭수를 얻기 위해 작성한 기사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게 좋다. 몇 기사는 헤드라인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극적인 단어, 혐오 표현이 담겨 있다.
언론과 권력은 어떻게 결탁하는가? 내가 미술잡지사에 들어갔는데 언론과 권력 뭐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만 한 건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혹은 미술 얘기는 안하고 언론 어쩌구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이게 후투티 스타일이니 유념하시길. 난 확장해서 생각해보는 걸 좋아한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다. A 기업이 지속적으로 한 언론사에 광고비를 내고 계속 광고를 게재했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날 그 언론사는 A 기업이 파는 상품에 엄청난 건강 관련 문제 - 만지면 유독하든, 먹으면 유독하든 - 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언론사가 밝히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건강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 상태에서 언론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진실을 밝히고 독자를 구할 것인가, 진실을 덮고 광고주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이외에도 언론사가 정치적으로 어떤 당으로부터 뇌물을 받아서 중대한 비밀을 국민에게 전달하지 않거나, 언론사 자체의 가치관, 철학, 세계관이 확고하여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기사를 작성할 수도 있는 거다. 기사는 대체로 사실을 말한다. 거짓말은 생각보다 빨리 들통난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것은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이다.
일단은 거시적인 시각에서, 기자가 어떤 환경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지 짚어 보았다. 내용이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게시물에서 계속 이어가겠다. 다음에 할 이야기는, 그렇다면 그런 환경에서 기자 개인은 어떻게 글을 쓰게 되는지, 나는 어떻게 썼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