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있는 자신을 자학했던 과거의 나와 화해하기 위해 여기에다 지나온 삶에 대해서 토로하고 가겠다.
기록으로 한 번 남겨 놓으면 내가 이런 삶을 살았구나 하면서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할 수 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편안해진 요즘 - 그렇다고 불안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때 말도 안 되게 존재론적인 불안에 시달렸을 뿐 - 다시 돌아보니 그 예전의 내가 참 불쌍하고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스스로 나아지고 발전하기 위해서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이제야 나를 좀 알아서 특정 상황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지만, 예전에는 나에게 수많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공격했다. 지난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나는 참 외로웠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나열해 보자면 이러하다.
1. 군중 속에 오래 있으면 집중력이 저하된다. 소위 말해 기 빨린다.
2. 혼자 방에 있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등 자기만의 휴식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3.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굿즈를 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4. 미래지향적/이상주의적이다.
5. 생각한 것만큼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즉 행동이 조금 어벙하다
6. 조건과 상황이 생각한 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하다. 즉 예민하다
자, 이런 친구가 반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반에서 한두 명하고만 어울리고 연예인 얘기는 안 통하고 나중에 뭐 할건지 혹은 if에 대한 얘기만 좋아한다. 같이 놀 수 있을까? 나라도 친해지기 힘들듯?
이제 와서 느끼는 억울함은, 왜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다수가 아니냐는 말이다. 왜 다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기가 빨리지 않냐는 거다. 그게 억울하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 보려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자꾸만 내가 정상인처럼 행동하고 있는지 검열했다. 내가 나대로 살지 못했다.
어우 답답해
이제 실제 중고등학생 때의 이야기. 다들 학교에 다녀오면 나만큼 피곤한 줄 알았다. 등교하면 40명 가까이 되는 급우들 사이에서 소통해야 한다. 한 명하고 대화하고 있는데 다른 애까지 대화에 끼어들면 그들끼리는 대화 핑퐁이 빠르게 진행되는데 나는 대답을 생각해 내어도 이미 주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가 있다.
급우들이 반에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분주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쉬는 시간, 막 집중에서 수업을 듣고 난 나는 스몰톡을 할 힘이 없다. 그러나 반에서 그나마 같이 놀아 주는 친구가 말을 걸면 나도 같이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스몰톡이 이어지고 나는 집중력을 잃고 대충 듣는다. 그 친구가 물어본 질문에 완전히 잘못 짚고 대답한다. 한두 번은 그 친구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반복되면 나는 신뢰를 잃는다.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 걸 여러 번 당하면 기분 나쁘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 빼고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더 집중해서 들었어야 했는데. 하며 나를 탓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특히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되면서 나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교실에 있어야 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과부하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공부한다는 핑계로 친구랑 굳이 어울리거나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물론 그때도 내가 내향인이라는 것을 딱히 인식하지 못한 채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숨통이 트였다. 하루 종일 몇십 명의 사람들과 한 교실 안에 있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60명씩 듣는 수업도 있었지만 여덟 시간씩 같이 있는 건 아니고 보통 교양 수업으로 길어봤자 세시간이었다. 반 안에서 누가 누구랑 놀고 누구랑 친하고, 혼자 다닌다고 수근거리는 거 듣기 싫어서 억지로 누구랑 친해지고 하는 것들이 없어져서 너무 좋았다.
프라하에 공부하러 가서는 드디어 단체 속의 내가 아닌 개인의 나로서 지낼 수 있었다. 수업도 알아서 듣고 먹을 것도 알아서 챙겨 먹고 방도 내 마음대로 꾸미고 청소도 알아서 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게 내게 엄청난 자유를 느끼게 했다.
프라하에 가고서 한 달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래서 어디 놀러 가거나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집 밖으로 안 나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동기들이 가끔 꺼내줄 때에나 시내로 외출을 했고, 그 밖에는 꼭 필요한 운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집-마트-집-마트의 루틴으로 살았다. 아 물론 수업은 온라인으로 들었다. 그렇게 2주는 사람을 안 만나고 집에 있는 게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로 고민할 때 빼고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거의 안했다. 어떻게 보면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힘을 어떻게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하고 있는지는 다음 글에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요즘에는 내향인에 대해서 잘 이해해주는 분위기라서 기쁘다. 집 안에만 있으면 다들 걱정하고 "사회성 없는 애"라고 낙인 찍으니까 그게 참 힘들었는데, 요즘은 편안하다. 전과 비교해서 안전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