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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Sep 18. 2020

오늘 하루.

실 사이사이 스며든 기도의 시간.


"움직이지 말고 팽팽하니 당겨"


어깨가 아파서 내려놓은 손을 어깨넓이만큼 벌여서 세워놓으며 잔소리다. 엄마는 실뽑는 누에도 아니면서 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에 실을 쭉쭉 뽑아낸다. 그리고선 양팔을 벌린 내 손에서 실을 감아 다시금 동그랗게 실타래를 만들어 놓는다.


짰다 풀었다. 반복이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충분히 알지만 어린 나는 엄마의 그런 가을 겨울맞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애써 짜 놓은 옷을 풀었다. 꼬불꼬불 엉켜있는 실을 뜨거운 김으로 다시금 반듯하게 만들고 스웨터였던 것이 이제는 겨울 내복으로 무릎덮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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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이 귀했던 그 시절.  어린아이들의 겨울 외투는 엄마의 손뜨개였다. 교복을 입게 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엄마 손뜨개를 졸업하게 되었다. 지겹게 물리도록 입었던 옷들이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슴 시리도록 잘 안다. 엄마는 제법 찬기운이 내리는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울나기를 준비했다. 먼저는 아버지의 옷부터, 그다음 우리 남매들의 옷을 준비했다. 시장에 파는 그 무엇보다 좋은 원사로 엄마는 시간을 들여 옷을 만들었다. 켜켜이 시간이 쌓여가고 그 시간과 맞바꿔 한 올 한 올 옷이 완성되었다. 엄마의 시간이 엄마의 인생이 옷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무심히 라디오를 들으며 손을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쉼 없이 겨드랑이 사이즈며 입을 사람들의 체형을 계측했고 단마다 바뀌는 모양에 주의해야 했기에 무심은 보는 이의 생각일 뿐, 엄마는 결코 무심할 수 없었으리라. 모든 물자가 귀한 때였음에도 유행은 바뀌고 바뀌어 엄마는 해마다 옷을 풀었고 다시금 많은 밤을 당신의 수고로 옷으로 맞바꿨다. 완성된 옷을 입혀두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럼에도 난 좋은 딸이 되지 못했다. 어려서 그랬겠지만 단 한 번도 기분 좋게 엄마의 옷을 입었던 적이 없었다. 유난히 피부가 약했던 나는 실 특유의 까츨거림이 싫었고 늘 따갑다고 입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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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 노아가 4살 무렵 뜨개를 시작했다. 큰 아이랑 10살 차이 나는 귀한 아들이라 사람들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그래서였을까? 불현듯 손으로 짠 옷을 입히고 싶었다. 내 손으로 내 정성으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을 아들에게 입히고 싶었다. 바늘이라고는 잡아본 적 없는 내가 용감하게 뜨개 방문을 열었고 초보이면서도 후두 점퍼를 뜨고 싶다고 도안을 내밀었다. 뜨개 방주인은 실을 팔 욕심이었을까? 초보자도 뜰 수 있다면 대바늘에 실을 걸어주었다. 무슨 정신으로 옷을 떴을까? 몇 번의 대바늘의 움직임에 그림이 생기고 옷의 길이가 늘어나니 그저 신기했고, "세상의 단 하나밖에 없다"는 메리트는 나를 충분히 집중시켰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달 만에 막둥이 후드 점퍼를 완성했다. 가볍다고 하는 수입실을 사용했음에도 모자까지 달려있으니 4살 아이가 입기에는 무거웠다. 아니 가볍고 따뜻한 옷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 시간과 맞바꾼 손뜨개 점퍼를 부지런히 입혔다. 막둥이 점퍼를 시작으로 딸아이의 볼레로. 원피스를 뜨고 나니 겨울이 지났다. 그리고 그것으로 바늘과는 '안녕'을 고했다. 목과 어깨가 아팠던 까닭도 있었지만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바빴으며, 내 시간과 정성을 가볍게 돈으로 바꿔 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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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엄마가 할 일이 없어서 뜨개에 시간을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엄마의 뜨개는 저녁 밥상을 물린 다음부터 시작해 내가 잠자리 들기까지 이어졌다. 동그란 실타래 바구니에 던져져 있는 옷들은 아침마다 길이가 달랐다. 우리를 위해 엄마는 잠을 줄였고, 우리를 위해 엄마는 쉼을 줄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귀한 것으로 주고 싶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주기에는 인색하다. 자녀도 중하지만 엄마인 나의 인생도 중하고, 너의 시간도 소중하지만 엄마의 시간도 중요하다. 물질을 들여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사실 어렵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다른 것으로 치환시키는 것에는 미숙한 우리들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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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손뜨개 모자를 교회 권사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좋아하는 내 모습이 기쁘셨는지 치마를 만들어 새벽기도시간 옆자리에 쓱 놓고 가셨다. 실 사이사이에 스며든 권사님의 기도의 시간이 치마에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옷걸이에 걸어두고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권사님의 시간의 한 모퉁이를 잘라 나에게 주셨구나. 권사님의 시간, 권사님의 손끝이 어린날 엄마의 시간과 엄마의 손끝이 겹쳐 보인다. 내 나이만큼도 살지 못했던 엄마. 살아계셨다면 손주들에게도 엄마의 정성 담긴 옷을 입혀주셨을 테지..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여전히 엄마품이 그리운 내게 하나님께서는 엄마를 대신한 숨결들을 붙여주셨다. 이제는 엄마로 살아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어리광 부릴 곳을 찾는 나는 너무 일찍 정을 떼 버린 아기 고양이처럼 미처 덜 자랐나 보다. 엄마가 참 그리워지는 오늘. 권사님을 통해 위로받는다. 내일 주일 예쁘게 입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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