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 문제로 엄마에게 눈을 흘긴 다음날, 엄마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엄마에게 원망 섞인 말을 내뱉었고 눈물범벅이 된 채로 통화를 마쳤다. 그 후 나는 계속 엄마의 카톡에 쌀쌀맞게 대했다.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들은 그날도 난 가족 단톡방에서 엄마에게 과하게 툴툴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언니한테서 개인톡이 왔다.
"00아, 엄마 폐암일 수도 있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얼마 전에 암 정밀검진을 했는데, 이상소견이 나와서 내일 병원 가서 조직검사할 거래."
"갑자기? 왜? 담배도 안 피고 매일 운동도 열심히 하는 엄마가 왜?"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조직검사 결과 아닐 수도 있는 거지?"
"그러길 바래야겠지만.. 지금 내가 보기엔 폐암이 맞는 거 같아. 그리고 맞다면... 4기.. 일거야. 일단 엄마가 말하기 전에 모른 척 해."
"응. 알겠어. 몰랐으면 계속 툴툴대가 나중에 후회했을 텐데 알려줘서 고마워."
순간 원망의 말을 쏟아냈던 통화와 눈을 흘겼던 순간이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왜 나는 엄마를 원망의 대상에 놓고 모진 말을 쏟아냈을까. 그리고 몇 년 전, 일 때문에 미룬 뒤로 계속 미뤄왔던 제주도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왜 다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왜 늘 지금 잘 못해도, 지금 엄마를 서운하게 해도 다음이 있으니까,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엄마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버려왔을까.
조직검사를 한 날,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울면 안 돼. 내가 울면 엄마는 더 힘들 거야. 아직 모르는 거잖아. 밝게 인사하는 거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병실 문을 열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다가와 나를 안으며 훌쩍였다.
"00아, 엄마가 아파...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아니야. 아니야 엄마."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졌고 우리 둘은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다.
"엄마가, 아까 조직검사를 하는데 너무 아파서.. 너무 아파서 그냥 죽고 싶었는데. 다른 건 다 상관없었는데, 순간 네가 생각나더라. 그래서 못 죽겠더라. 엄마는, 이겨낼 거야. 00이 두고는 못가.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에게 난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언니가 엄마 속을 썩이며 꿈을 찾아갈 때, 안 그래도 힘든 엄마를 나까지 힘들게 할 수 없다고 일찍이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봐버린 착해빠진 막내딸, 그래서 늘 안타까운 막내딸..
꽉 막힌 공무원사회에서 사람에 힘들어하고 결코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들에 답답해할 때마다 엄마는 늘 미안해했다. '엄마가 처음에 너를 더 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똑똑한 우리 딸 더 좋은 곳에서 더 큰 일 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막았다는 생각에 늘 미안해.'
나는 엄마에게 이제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고, 나는 엄마한테 서운한 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엄마와의 이별을 인정하는 게 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날 수 없듯, 나 역시 엄마가 없는 내 삶을 나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혼자 남을 아빠도, 이제 막 아이를 가진 언니도 걱정이었다.
암세포로 의심되는 세포들은 왼쪽 폐에 큰 것이 하나 있고 오른쪽 폐에는 작은 것이 5개가 있는데 조직검사는 양쪽을 다 할 수는 없어서 우선 왼쪽 큰 세포를 먼저 진행했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이번에 검사를 맡긴 세포가 만약 암이 아니어도 다른 쪽도 한번 검사를 또 받아서 양쪽을 다 확실히 확인해야 맘이 놓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병실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언니가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은 언니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엄마를 불렀다. 그 미소를 본 나는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사람들이 무언가 난처한 말을 해야 할 때 짓는 미소. 그 미소를 언니가 애써 짓고 있었다.
"엄마, 오른쪽 작은 세포들을 따로 검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맞구나?"
"응.."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까 너네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있어."
병원에서는 조직검사 결과를 두고 의사들끼리도 의견이 달라 호흡기내과, 종양내과, 흉부외과 의사들이 3일 동안 회의를 했다. 양쪽이 다른 암세포라서 왼쪽 큰 암세포를 잘라내면 나머지 작은 암세포들은 항암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이었지만 , 한쪽으로 전이된 것이라 이미 손을 쓰기엔 많이 늦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이도 너무 어리고, 이렇게 건강하신데 그냥 두고 있기는 너무 아깝다. 우리 엄마라면 수술하라고 하겠다."
한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긴 회의 끝에 의사들은 수술을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문제는 전공의 파업이었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일단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들을 알아보기로 하고 퇴원 절차를 밟았다.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가족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조차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전공의들을 향한 어떤 원망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빠는 그들이 돌리는 전단지를 묵묵히 받으며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이들의 말을 정부가 듣고 서로 만족할 만한 협상안을 만들기를 바라셨고, 나는 하루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되어 수술실이 다시 열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원망에 쏟을 에너지를 아껴 수술을 맡길 수 있는 좋은 병원을 빨리 찾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