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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Oct 03. 2020

엄마의 폐암2. 그래도 제 감정이 우선인 딸

나도 내가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다

 사실 수술이 결정되기까지 나는 이 일에서 한발 떨어져 있었다. 산부인과 전공의였던 언니는 이병원 저 병원을 알아보며 스케줄을 잡고 아빠는 엄마와 함께 병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 나에게까지 소식이 잘 전달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시간 동안 나는 재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고 엄마의 일을 잊은 것처럼 나 자신의 고단함을 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족 단톡방에 상사 욕을 하고 있을 때,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가족방에서는, 너 힘든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 그러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엄마가 더 힘들어할까 봐 그러는 거지?"

 "응.. 내가 너무 힘들고 내 삶도 감당이 안될 때는 상대방의 일을 받아줄 여력이 잘 안되더라. 엄마가 지금 그럴 거야."

 "그래 알겠어. 조심할게."


 나는 참 철이 없었다. 지금 엄마에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그 앞에서 내 작은 어려움만 토로하기 바빴다. 그 며칠 뒤, 엄마 아빠가 다른 병원에 한번 더 가본다기에 '그럼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자. 내가 차려놓고 기다릴게.'라 보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한참 뒤 아빠의 '상황 볼게.'라는 대답 뒤 당일이 되어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게 또 서운했다. 이 힘든 시기를 나를 제외한 세명이서만 나눠갖는다는 생각에 질투가 났다. 나도 딸인데, 왜 나는 자꾸 아무것도 모르는 건지, 왜 무언가라도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건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내가 뭐 엄마한테 잘못한 거 있어?"

 "아니, 왜?"

 "아니 내가 병원 갔다가 우리 집 오라고 밥해준다고 해도 대답 안 하고, 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만 모르고 하니까... 내가 저번에 단톡방에 철없이 나 힘든 얘기 막 하고 그래서 안 그래도 힘든 엄마가 서운해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아니야. 병원에서 의사가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어딜 들르고 할 상황이 아니었어."

 "그랬구나.. 언니가 의사여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래서 내가 쓸모가 없는 거 같아. 나도 같이 걱정하고 있는데, 나만 배제되는 거 같아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에게 힘이 된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느 병원에서는 수술하면 된다 하고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 안 하면 1년, 하면 10년을 산다 했는데 이 날 찾아간 병원에서는 이미 폐암 4기 말이어서 당장은 손쓸 방법이 없으니 항암을 2~3개월 해보면서 작은 세포들이 사라지고 수술하기 좋은 상황이 되면 그때 수술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수소문해 찾아간 유명한 의사에게 가장 부정적인 진단을 받은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강하게 붙잡고 엄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남들보다 조금 먼저 하늘나라에 가야 하는 거라면, 하나님이 그렇게 부르시는 거면 엄마는 감사하게 갈 거야.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야. 항암은 한번 해볼게. 그러고 다시 생각해보자." 


 덤덤하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언니는 알겠다며 전화기 너머로 눈물을 흘렸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도 아빠도 나를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의 서운함만 토로하는 나를 아빠는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며 다독여줬다. 내 철없음이 괴롭고, 아빠의 마음이 감사했다. 그날 언니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울었고 나는 나만 생각했던 내 마음이 초라하고 부끄러워 울었다.


 엄마가 어떤 상황을 겪고 있든지 간에 나는 내 감정과 내 서운함이 우선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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