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우리를 태우고 언니의 숙소로 향했다. 언니 숙소는 밤에 왔으면 조금 무서웠을법한 곳에 있었다. 사장님도 이런데가 있는지 몰랐다고 하며 언니가 무서웠다고 하자 무서울 법하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공항에 도착했고 우리는 MIAT항공이라고 쓰여 있는 체크인 카운터 앞에 줄을 섰다. 앞에 서 있던 몽골 사람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우리를 슬쩍슬쩍 쳐다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20분쯤 지나니 그 외국인들 중 한 명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간다고 하자 여기는 국내선이니 국제선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위치를 알려줬다.아무리 봐도 우리가 국내선을 탈 것 같지 않은데 서 있어서 계속 쳐다보다가 이야기해준 것 같았다. 그 외국인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international departure이라고 쓰여있는 곳이 있었다. 거기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직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지 않아 들어갈 수 없으니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릴 곳을 둘러보다 의자가 많이 있는 대합실 같은 곳이 있어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왼쪽은 우리가 기다리던 국내선 줄. 오른쪽은 국제선 승객들이 들어가는 게이트
대합실 같은 곳에 앉아서 위를 보니 왼쪽은 국제선, 오른쪽은 국내선 안내판이 있었다.
칭기즈칸 국제공항
시간이 되어 출국장에 들어갔고 기다리는 동안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면세인데도 보드카는 현지에서 사는 것보다 2배는 더 비쌌다. 내가 산 미니 보드카도 면세점에선 한 병당 3달러였다. 더 둘러보니 공룡 초콜릿이 있었다. 바양작에서 공룡알이 발견된 것 때문에 기념품으로 만든 것 같았다. 몽골로 떠나기 전 면세점에서 커피라도 한잔 사마시라며 1000엔를 준 동료직원의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나 그 직원에게 줄 것 1개와 우리가 먹을 것 1개를 샀다.(1000엔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언니가 남은 몽골 돈으로 커피를 2잔 샀고 탑승시간이 될 때까지 커피를 나눠 마시며 공룡 초콜릿을 함께 먹었다.
탑승시간이 되었고(그전에 화장실을 한번 더 갔다.) 비행기에 탔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몽골행 비행기보다 더 좋았다. 몽골행 비행기는 좌석에 스크린도 없고 많이 좁은 느낌이었는데 한국행 비행기는 앞에 스크린이 있고 앞뒤 간격이 아주 살짝 더 넓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도 재미있고 유명한 영화들만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기내식을 먹고 다시 영화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몽골 여행기를 더 채우다 하니 3시간이 훌쩍 지났고 한국에 도착했다.
인천 국제공항
□부재중 전화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기다리는 동안 유심을 바꿔 끼니 어제(금요일) 날짜로 부재중 전화가 3통 와있었다. '내가 그렇게 휴가라고 말했는데. 돌아오자마자 현실이라니. 이래서 투폰을 하고 싶다. 그런다고 나아질 건 없겠지만...' 혹시나 계약 문제인가 싶어 주말임을 무릅쓰고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계약은 잘 되어있었다. 별일이 아닌 것 같아 휴가에서 복귀하는 화요일에 전화해보기로 했다. '급한 일이면 월요일에 전화 오겠지. 하지만 안 왔으면 좋겠다.' 휴가 중에 문제없이 해놓고 나왔는데 정말 쓸데없는 것으로 연락하는 업체들이 있다. 덕분에 휴가가 깎인 기분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돼지 아프리카 열병 예민해지는 기분을 겨우 붙잡고 '세관신고서를 신고할 게 없는데도 써야 하나.'의 의문에 쌓여있다가 언니가 없음에 체크하는 식으로 썼던 것 같다고 하길래 가서 신고서를 작성했다. 5년 만의 해외여행이다 보니 가물가물했다. 세관신고를 하고 나오는데 몽골에 다녀온 사람들은 X-ray검색대를 통과하라고 했다.바로 앞사람의 짐을 검색할 때 직원들이 약이 많다고 캐리어를 열게 하길래 "마약 때문인가?" 하니 직원분이 "아니요, 돼지 아프리카 열병 때문이에요."라고 했다. 몽골에 가기 전 친구가 몽골에서 돼지 아프리카 열병이 발병했다는 기사 링크를 보내줬었던 게 생각났다. '아 그거구나.' 사람도 걸리는 병인 줄 알고 놀라서 기사를 읽다가 돼지만 걸리는 걸 깨닫고 안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니. 꿈을 꾼 것 같았다.
□습한 한국 모든 수속을 마치고 나왔고 언니는 버스를 탄다고 했다. 나도 그럴까 하고 동생에게 물었더니 동생은 차를 더 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 그러네.' 배도 살살 아프고 허리도 이제 한계인데 가다가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는 언니와 다시 만나서 밥 한번 먹자고 인사한 뒤 헤어져 동생과 공항철도를 탔다. 공항철도를 타러 내려오자마자 한국의 습한 공기가 우리를 강하게 덮쳤다. 습해서 더 덥다는 말이 이런 거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여행 내내 몽골이 햇빛은 강하고 뜨겁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덥다는 생각은 잘 안 들었던 것이 습기가 업고 건조해서였음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배가 더 아파와서 동생에게 "혹시나 내가 중간에 내리면 화장실 가는구나 하고 먼저 가."라고 했다. 동생은 알겠다며 오늘 새벽에 호텔에서 짐 싸다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간 내가 생각난다며 웃었다.
다시 현실로
다행히 동생이 먼저 도착해서 내리고 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괜찮았다. 집 계단으로 캐리어를 올리다가 실수가 생길지도 모르니 전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번외로 설사 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갔다. 집 계단을 올라 문을 열다가 선물로 줄 초콜릿을 떨어뜨렸다. 집에 와서 낙타 인형을 정리하면서 각각 누구에게 분양을 할지정했다. 그리고 짐을 풀고 빨래할 것들을 나눴다. 검은색, 흰색, 알록달록 색 이렇게 3번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오늘은 검은색만 먼저 하고 나머지는 내일 하기로 했다. 캐시미어는 귀하니 잘 모셔서 서랍에 넣어두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조금 쉬다가 쓴 글들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작년부터 사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미뤄왔던 노트북을 살 때가 됐다.' 하고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노트북을 샀다. 인터넷에서 최저가를 보고 갔는데 이것저것 할인하니 나름 괜찮은 가격이라 기다릴 것 없이 6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6개월 할부, 이 할부가 끝날쯤에 나는 어떤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어떤 글들을 써 두었을까.
이렇게 몽골 여행은 끝났다. 쏟아지는 별과 새파란 하늘, 끝없이 펼쳐진 초원 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작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대자연 속에서 나는 어디에 근무하는 누구, 어떤 가족의 구성원, 이런 스펙을 가진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친한 이런저런 사람이 아닌 그냥 나 자신이었다.
그랬지,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지. 타인에 의해 변하기 전의 나는 그랬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도시의 혜택으로 바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다시 어딘가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자연 앞에 홀로 섰던 그 기억만큼은 끝까지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