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선 환전을 하러 국영백화점에 갔다. 몽골의 원화는 투그릭으로 한국에서는 환전이 불가하여 현지에서 환전을 해야 하는데 국영백화점이 가장 환율을 잘 쳐준다고 했다. 한국돈 5만원권도 받는다고 하여 나는 5만원권을 준비해 갔고 동생은 달러를 준비해왔다. 언니는 달러와 5만원권을 모두 준비해왔던 듯하다.
환전소는 국영백화점 1층에 있었다. 나, 언니, 동생 순으로 환전을 하는데 동생이 한국에서 가져온 달러 중 100달러가 모자란다고 투어비 잔금을 낼 때 더 낸 것 같다고 했다. 아 사장님의 "I believe you"를 Believe하지 말았어야 했나. 내가 잔금을 걷을 때 한번 더 확인해줄걸 너무 내 돈만 확인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은 엘사와 침게에게 투어비를 100달러 더 낸 것 같은데 확인을 한번 해달라고 했고 침게가 사장과 통화를 했다.
사장님이 아직 계산을 안 해서 모른다고 100달러 더 낸 것 같으면 아직 근처에 있으니까 받아가라고 했거든요, 내가 다녀올게요.
계산?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하면 되는 건데 무슨 계산? 전산 입력을 따로 해야 알 수 있는 건가? 근데 그러면 계산 전에 미리 100달러를 가져가면 나중에 모자라면 어떡하려고 하지? 우리도 확신이 안 서는데 어떻게 우릴 그렇게 믿는 거지?
가이드가 쓰는 한국말 또한 몽골말임을 깨닫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몽골말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침게는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를 두고 국영백화점을 나갔고 엘사는 자신과 침게의 이름을 소개하고 우리 이름과 나이를 물어볼 뿐 돈에 대한 다른 설명은 없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답답해하며 한참을 기다리던 중 엘사가 휴대폰을 보더니 "사장님이 계산 다 했고 100달러 더 받았대요."라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침게가 했던 말은 '사장님이 아직 확인 안 했는데 확인할 테니 100달러 더 낸 게 맞으면 가지러 와라. 확실하면 미리 와도 된다.' 정도 아니었을까. 그래서 침게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먼저 가있겠다고 한 것 같다. 계산=확인이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정확히 물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불안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이들의 통역 또한 몽골말이라 추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해서 그 뜻을 물어볼 생각을 못하고 몽골의 일 처리 방식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침게가 100달러를 가지고 돌아왔고 우리는 환전을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하긴, 순조로우면 내가 하는 여행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며.
9시간의 이동
국영백화점에서 차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침게에게 오늘 차강소브라가까지 가는데 여기서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침게는 "몽골 속담에 이런 말 있어요. '멀리 갈 때는 시간을 보지 마라.' 그래도 아마 7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우리 여행사는 일정에 적어둔 시간 최대한 지키려고 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7시간이 가장 길게 책정한 시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몽골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가장 짧은 시간이고, 시각은 가장 빠른 시각임을 깨닫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 주유소
울란바토르를 나오자마자 헤라는 자꾸 주유소를 들렀다 직원과 이야기만 하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3~4개 정도의 주유소에 들렀는데 그게 울란바토르 근방에 있는 모든 주유소였던 것 같다. 마지막 주유소에서 엘사가"사막에서는 차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차에 쓰는 거 중요한데 그거 우리가 주문해뒀는데 주유소에서 실수한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울란바토르 근처 있는 주유소로 돌아갔다 다시 가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엘사와 헤라가 주유소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더 신기했다.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울란바토르의 경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유소로 갔고 그곳에서 헤라는 노란색 용액 두 개를 받았다. 그리고 스타렉스에 기름을 넣는데 어느 정도 기름이 들어가고 게이지가 더이상 올라가지 않자 주유소 직원이 차를 흔들었다. 차를 흔들면 기름이 더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무슨 무식한 생각이지 하고 속으로 웃었지만, 정말 기름이 더 들어가는 것에 눈을 의심하는 사이 주유소 직원은 3번 정도 차를 더 흔들어 기름을 더 넣고 주유를 마쳤다. 이곳은 말로만 듣던 그 몽골이었다.
□ 장보기
주유소를 나와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마트에 들렸다. 투어비에 아침, 점심, 저녁은 포함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할 생필품이나 먹을 음식, 음료들은 따로 매번 장을 봐야 했다. 우리는 공금을 5만원씩 걷어 따로 환전을 했고 공금으로 매번 장을 봤다. 문제는 우리가 막연하게 '맥주랑 안주 사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정확히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정리하지 않았었다는 것이었다.침게가 따라다니면서 '물 필요해.', '과일도 있으면 좋아.', '너네 초콜릿은 안 먹어?'라고 이야기하며 따라다니지 않았다면 더더욱 아무것도 못 고르고 고민만 했을 것 같다. 투어를 하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이날 침게는 본인이 차에서 먹고 싶은 걸 이야기했던 것 같다. 여행객들이 보통 본인들만 먹기보다는 같이 먹자고 하니까? 의도야 어찌 되었든 덕분에 고민할 시간을 줄였으니 고마웠다고 해야 하려나.
물은 얼마나 사야 하는지 고민할 때 엘사가 24개짜리 물 2묶음을 따로 계산하려 하고 있었는데 침게가 엘사를 불러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그 물을 우리 카트에 실었다. 엘사가 물은 알아서 사주려는데 침게가 물도 우리가 사게 하자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우리 먹을 물은 당연히 우리가 사야지,'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다음날 장을 볼 때 내가 침게에게 '우리 물 더 사는 게 좋을까요?'라고 묻자 침게가 '물 다 마셔서 한 묶음밖에 안 남았다.'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서 이날 침게가 엘사에게 했던 말이 좋은 쪽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우리가 마신 물은 많아봐야 9병 정도였기 때문이다. 찝찝했지만 얼마 안하는 물 몇 병으로 쪼잔하게 니 물 내 물 나누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뒀다.
물은 24개짜리 2묶음을 넣고 나서 그다음부터 고민의 연속이었다. 아무래도 첫날이라 서로 배려하느라 자기 의견을 바로바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선 침게가 추천한 초콜릿 두 개를 담고 차에서 배고플 때 먹을만한 미니와플도 담았다. 다음으로 맥주를 살 때는 침게에게 어떤 것이 맛있는지 물어봤는데 침게는 집는 맥주마다 다 맛있다고 해서 기준을 세울 수가 없었다. 결국 각자 마음에 드는 맥주를 고르고 과자는 감자칩으로 했다. 그리고 혹시나 음식이 입에 맞이 않으면 밤에 끓여먹을 라면을 고르려는데 신라면, 진라면, 김치라면, 참깨라면 등 웬만한 한국 라면들은 다 있었던 것 같다. 라면 고르기는 비교적 수월했는데 동생은 진라면 매운맛을 좋아했고 나는 김치라면이 끌렸다. 언니는 둘 다 괜찮다고 해서 진라면 3개, 김치라면 3개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과일을 한참 동안 골랐다. 귤과 사과가 제일 무난해 보였고 고민하다가 둘 다 사기로 했다. 그런데 귤도 종류가 여러 가지고 사과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고민하다가 귤은 망에 들은 것을 골랐고, 사과는 침게가 추천해주는 것을 골라 담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과일을 마트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날 6개씩만 샀는데 그 후 쳉헤르로 가는 날까지 마트에서 과일을 볼 수 없었다. 생필품은 일단 각자 가져온 것들을 다 쓰면 그때 추가로 사기로 했다. 계산을 하러 가는데 젤리가 보여서 젤리를 살까 하면서 구경하는데 침게가 "우리가 빨리 움직이면 빨리 도착하고, 계속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느긋하게 가면 늦게 도착해요."라고 해서 아 그만 가자는 거구나 싶어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로 가면서 아이스크림도 샀는데 그건 침게가 한 브랜드를 추천해줘서 빨리 골랐다.)
□ 길을 잃은 헤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헤라가 길을 헤맨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1시 30분쯤 출발할 때 엘사가 "130km 정도 남았고 그리고 비포장도로 30분 정도 더 갈 거예요."라고 말해주길래 그래 봐야 3시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에서 1시간 정도를 갔을 때 헤라가 갑자기 U턴을 하더니 GPS에 잡히지 않는 길을 계속 달렸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길이 없는 초원을 달려 GPS에 잡히는 길에 합류했고 그 후 30분 정도를 더 달려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그래서 이 날까지는 헤라가 오는 길에 GPS를 깔았다고 자랑하면서 그래도 자신은 GPS 상관없이 길을 잘 찾을 수 있다고 했던 말을 장난으로만 받아들였고 그게 사실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저녁 6시 10분, 국영백화점에서 오전 9시 30분에 출발 한 지 약 9시간 만에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점심
왼쪽부터 닭고기와 매쉬드 포테이토, 소고기와 매쉬드 포테이토, 소고기와 밀가루 면.
투어에 포함된 식사 구성은 아침과 저녁은 가이드 요리, 점심은 식당이었다. 첫째 날 점심은 닭고기, 소고기, 그리고 밀가루 면이었다. 몽골사람들은 쌀은 차가운 음식이라 생각해서 잘 먹지 않고 거의 밀가루로 만든 면을 먹는다고 했다. 어른들은 더더욱 쌀을 안 먹는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헤라는 항상 밀가루 면으로 만든 국수만 먹었다. 첫날엔 양고기는 없었는데 아마도 엘사가 우리의 식성을 파악하지 못해 한국인들이 잘 먹는 닭고기와 소고기로만 주문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릇을 깨끗이 비웠고, 다음엔 양고기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엘사와 침게는 우리가 일단 뭐 하나를 잘 먹으면 안전하게 그 요리만 계속 주문해주고 만들어주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바로 다음날 저녁에 위의 세 요리에 물려버렸고 다른 몽골 음식들도 먹고 싶다고 말하니 그제야 다른 음식들을 맛보게 해 주었다. 또 욜린암으로 가는 날 우리가 양고기를 잘 먹자 그 이후 점심에 메뉴는 달라져도 안에 들어가는 고기는 계속 양고기로만 주었다.
나는 양고기 특유의 향을 워낙 좋아해서 요리 방식만 달라지면 상관이 없었는데 언니와 동생은 시간이 갈수록 양고기 냄새가 심하게 느껴져 먹는 것이 점점 힘들었다고 한국으로 오는 길에 털어놓았다. 조금씩 남기는 언니와 동생을 보며 '오늘 화장실을 많이 가서, 적게 가서 속이 별로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던 둔한 나.
아무튼 한국 사람들이 와서 얼마나 음식으로 까탈을 부렸으면 엘사와 침게가 우리가 처음에 좋다고 한 음식에만 집착할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