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6. 차강소브라가

차강소브라가

by HuwomanB

여행 중 일기를 쓴 것을 보고 정리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내 몽골 여행기는 욜린암과 홍고린엘스를 제외하면 목적지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가는 길과 게르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욜린암과 홍고린엘스에서는 말타기, 낙타 타기, 사막 오르기 같은 액티비티를 해서 그런지 해프닝이 많았는데 다른 곳들에서는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느라 다른 일이 일어날 틈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몽골의 정1.

차강소브라가로 가는 길, 헤라가 다시 GPS에 잡히는 길에 들어서서 달리고 있을 때, 길에 물이 떨어져 있었다. 5L 정도 되어 보이는 큰 통이었다. 차는 물통을 그냥 지나쳤고 나와 동생도 그 물통을 봤지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헤라가 엘사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듯했고 엘사도 동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고는 차를 돌려 물통이 있던 곳으로 갔다. 헤라는 차에서 내려 물통을 주워 묻은 흙을 털어내고 차에 실었다. 엘사는 사막에서는 물이 귀한데 누가 떨어뜨렸다 보다고 찾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도 물 많은데 뭐하러 저걸 주워.'하는 생각이었는데 헤라와 엘사는 우리가 아닌 저 물을 떨어뜨려 곤란해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조금 더 가자 차 한 대가 서있었고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있었다. 엘사는 그 가이드에게 혹시 물을 떨어뜨리지 않았냐고 묻는 듯했고 그 가이드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듯했다. 헤라는 밝게 웃으며 운전석에서 내려 물을 직접 전해주었다. 자신이 도움이 되어 너무나 기쁘다는 표정으로.

부끄러워졌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아온 나는 이미 충분함에도 누군가와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모자랄지 모르니 최대한 내 것을 더 많이 챙겨야 한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래서 헤라가 물통을 주울 때까지도 '에이, 이 넓은 사막에서 주인을 어떻게 찾아. 그냥 우리 물 하면 되겠다. 돈 굳었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엘사와 헤라는 떨어져 있는 물통을 보자마자 더 부족할 누군가를 떠올리고 꼭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낀 것이었다.



차강소브라가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몽골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차강소브라가. 침게가 우리의 발을 보더니 이대로 가면 안된다고 했다.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꼭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고. 우리는 다들 샌들과 슬리퍼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운동화가 캐리어에 있다고 하자 헤라가 뒤 짐칸을 열고 캐리어를 꺼내주었고 우리는 양말을 신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무서웠다. 내려갈수록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고, 큰 암벽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우리 구경 좀 하게 해줘 하며 허락을 받는 기분이었다. 엘사는 앞장서서 가며 자신이 밟은 곳을 밟으라고 했고, 침게는 자기가 가는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하면서 빠르게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었다.

가파른 길, 엘사는 사진을 찍어주며 앞장서 갔고 침게는 내려오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잡아주었다. 나는 이상하게 잘 내려왔다.

엘사가 사진을 찍어줄테니 휴대폰을 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켜서 주었고, 엘사는 우리를 안전한 길로 내려오게 하면서 사진도 찍어주느라 많이 바빴다.

가파른 길을 다 내려오니 완만한 언덕들이 펼쳐졌다. 하얀 부분이 이곳이 원래 바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데, 그게 하얀 언덕인지, 지층 중에 하얀 부분인지 아님 초원 쪽에 보이는 하얀 띠인지, 사실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몽골말 어렵다.) 그저 멋있었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니 완만한 언덕들이 펼쳐졌다.

엘사는 이 언덕 저 언덕을 다니며 다른 관광객들이 안 나오고 풍경이 예쁘게 나오는 지점들을 찾아주었다. 엘사가 "다들 여기 서 봐." 할 때마다 우리는 뒷모습이 보이게 서거나 앉았고 각자 서로를 찍어줄 때에도 계속 뒷모습이었다. 그러다 얼굴을 살짝 돌리는 정도?

침게는 "왜 뒷모습만 찍어?" 라며 이상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뒷모습이, 더 느낌 있게 잘 나와요. 하하하." 나중에 몽골 사진을 정리할 때 정말 너무 다 뒷모습이어서 조금 소름이 돋긴 했다. 같은 뒷모습, 같은 포즈에 옷과 풍경만 바뀐달까. 하지만 모델이 아닌 이상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포즈는 늘 어렵다. 마지막엔 손을 위로 올리는 정도까지는 발전했던 듯하다.

엘사는 다른 사람들이 안 나오면서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찾아주었고 우리는 계속 뒷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아니, 예쁜데 왜 얼굴을 안 보여줘?' 라며 이상하다고 하던 침게.

엘사는 뒤에서 시작해서 여기 보세요 하며 살짝 고개를 돌린 옆모습을 찍어주다가 앞으로 와서 앞모습을 찍어주다가 했다. 우리가 스스로 앞을 보지는 않으니 앞으로 간 걸까. 그리고서 한 절벽을 가리키더니 찍어줄테니 올라가라고 했다. 다른 여행객들이 거기서 사진을 찍는 것을 봤는데 무서워 보였지만 잘 나올 것 같았다. 꽤 높아서 떨어지지 않게 자리를 잡는 데에 온 신경을 썼고 뒤로 돌고 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엘사만 바라보았다.

다시 내려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풍경을 감상하며 놀았다. 관광객들은 거의 다 한국 청년들인 것 같았다. 외국인들은 아주 조금 보였다. 한 남자분이 사진기를 들고 있었는데 우리가 거기서 멈추자 영어로 지나가도 된다고 했다. 사실 사진기 때문에 멈춰있던 게 아니었지만 설명하기 좀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움직이자 "No Korean?"이라고 묻는데 그 순간 웃음이 터져서 "한국인 맞아요."라고 대답하니 남자도 민망한지 크게 웃었다. 중국어로 대답할 걸 그랬나.

그렇게 다 놀고 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는데 동생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롱스커트를 입지 않았을 거라고 하면서 여기에 롱스커트 입고 온 사람은 자기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엘사는 저번 팀에서도 있었다고 종종 있다고 동생을 위로(?)했다.

우리의 취향을 고려한 엘사의 항공 샷. 뒤에 계속 서있길래 뭐하나 했더니 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다 올라와서 침게와 우리가 놀던 아래의 언덕들이 구불구불 흘러가듯 보이는 곳으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조금 더 찍고 있으니(커버 사진이 그것이다.) 차에 먼저 가 있던 엘사가 "그만 가자~!" 하고 우리를 불렀다. 엘사는 시간관리 담당, 침게는 우리와 노는 담당인 것 같았다.



우리는 차에 탔고 게르까지 또 한참을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게르가 있었다. 차강소브라가에서는 씻지 못할 줄 알았는데 엘사가 지금 물 나온다고, 우리가 첫 번째로 왔고 다른 팀들이 막 오고 있으니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어서 씻으라고 했다. 나중에 가면 물이 떨어지니 일부러 빨리 온 것이라며.

우선 씻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은 Korean BBQ, 삼겹살이었다.

몽골 7.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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