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9시 정도에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사가 "얘들아, 사진 찍고 가자."라며 차를 세우고 내렸다. 큰 낙타 동상 하나가 서 있었다. 침게가 낙타 동상 너머로 나 있는 길이 예전에 낙타에 짐을 싣고 중국으로 가던 길이라고 간단히 말해주었다. 그 후 헤라, 엘사, 침게는 담배를 피웠다.
그 세 명이 담배를 비우는 동안 동생은 낙타 동상 사진을 찍었고 나는 언니와 서로 벌판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여행 내내 길에서 쉬거나 마트에 들르거나 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언니와 동생을 좀 많이 귀찮게 했다. 이동시간이 길어 서로 지쳐 있을 때에도 미안함을 뒤로하고 눈치 없이 부탁했다. 남들은 어딜 가나 똑같다고 하는 모든 길들이 너무 좋아서 그 안에 있는 나를 남기고 싶었다. 사진으로 귀찮게 해서 피하고 싶은 동행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왼쪽은 우리가 멈춘 곳에 있던 낙타동상, 오른쪽은 언니가 찍어준 사진. 내가 바라보는 쪽이 중국으로 통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아침
아침은 어제 남은 삼겹살, 새로 구운 베이컨, 참치샐러드, 그리고 계란후라이. 차 안에서 어제 산 사과를 다같이 나눠먹었다.
엘사가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우리를 불렀다. 자꾸 파리가 꼬이니 빨리 오라고 했다. 아침을 먹으러 가니 헤라가 열심히 파리를 쫓고 있었다. 57살(56살인가)의 전직 유도선수 헤라는 자꾸만 귀엽다. 모두 다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는데 헤라가 엘사에게 뒤에 나방이 붙었다고 하자 엘사가 "으아아아~" 하며 헤라에게 빨리 떼 달라고 했다. 몽골사람들은 벌레 같은 건 별로 신경 안쓸 줄 알았는데 어젯밤에도 잠깐 느꼈지만 엘사는 우리보다 더 벌레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양치를 하고 짐을 마저 정리하고 동생과 함께 사과를 씻어서 들고 차에 탔다. 딱 6개여서 가는 길에 하나씩 나눠먹었다.
점심
왼쪽이 양고기, 오른쪽이 소고기(반대인가?) 그리고 밥이 두공기 나왔다. 흰 것은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섞은 것. 아침도 그렇고 몽골 달걀은 좀 흰 것 같다.
어제 점심으로 먹은 것과 같은 메뉴인데 고기 종류만 양고기. 침게는 밀가루면을 좋아하는지 식당에서는 항상 밀가루면만 먹는다.
점심은 식당에서 먹었는데, 어제 우리가 양고기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엘사가 양고기를 시켜주었다. 어제와 같은 요리여서 조금 당황했다. '다른 테이블엔 다른 모양의 음식들이 있었는데 왜 우린 이것만 먹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켜주는 대로 먹으면서, 다음엔 다른 요리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다들 더 맛있게 느껴지는 고기가 같았는데 침게가 그게 양고기라고 하자 조금 놀랐다. 언니가 "나 양 잘먹네."하며 웃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요리를 본 순간부터 물리는 기분이 들어 어제만큼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물리기도 하고 양이 많기도 하여 조금 남겼다. '그래도 다른 요리 먹어보고 싶다고 했으니 저녁은 다른 요리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 타기, 녹아버린 얼음계곡
욜링암에 도착했다. 어제 욜링암에 갔다가 말을 타러 간다고 침게가 그랬었는데 그게 아니라 욜링암에서 말을 타는 거였다. 몽골말 어렵다. 롱치마를 입고 욜링암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쉽다.
차에서 내려 말을 탈 때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말 뒤에 서있을 때는 멀리 서있고, 오른쪽에 서지 말고 항상 왼쪽에 서서 왼쪽으로 타고 왼쪽으로 내릴 것. 간단해 보였지만 말이 한 방향만을 보고 예쁘게 줄지어 서있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무리 지어 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말에서 내릴 때마다 말 무리 속에서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엘사가 나의 손을 잡고 빠져나와 주었다.
말을 타러 가는데 입구에서 낙타 인형을 팔고 있었다. 낙타 인형에 눈이 팔려있자 엘사가 일단 말부터 타라며 우리를 불렀다. "그럼 이따가 말 타고 다시 와서 골라도 돼요?"라고 묻자 "당연하죠!"라고 대답하며 나를 말에 태웠다. 우 명의 남자아이들이 우리 세명의 말을 끌었는데, 그중 형으로 보이는 아이(이하 큰아이)가 동생과 나의 말을 끌었고,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이하 작은아이)가 언니의 말을 끌었다. 침게와 엘사는 아무도 끌어주지 않는 말을 알아서 타고 따라왔다.
내 말은 파리 때문인지 계속 '푸르르~'하며 고개를 젓고 콧김을 내뱉으며 앞으로 가는 바람에 말이 자꾸 흔들렸다. 내가 "어어어~" 하고 무서워하자 우리 말을 끌어주던 큰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했는데 신기하게 믿음이 가고 안심이 되었다. (낙타를 탈 때도 낙타 주인이 그랬지만 그 주인은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그런데 동생의 말과 내 말이 자꾸 붙어서 내 다리가 동생 말의 얼굴을 쳤다가 엉덩이를 쳤다가 해서 미안했다. 우리 말을 끄는 큰아이는 그걸 아는지 줄을 잡은 양 팔을 양 옆으로 벌렸다가 오므렸다가 하며 앞으로 갔다.
엘사는 생리 중이기도 하고 허리가 아파서 그만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말 혼자 돌아가는 건 좀 위험했는지 우리 앞에 입구로 돌아가는 무리가 오자 큰아이가 그 무리를 따라서 가라고 하는 듯했다. 엘사는 큰아이에게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고 "츄! OO"라고 말하라고 하는 듯했다. 엘사는 큰아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말을 돌렸다. 그런데 큰아이가 갑자기 뒤를 보며 웃었다.
엘사의 말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엘사는 무언가 불평의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침게가 이 말이 처음 무리랑 계속 같이 가고 싶어 해서 엘사가 돌아가자고 끌어도 자꾸 다시 돌아서 우리를 따라온다고 했다. 결국 엘사는 말에서 내렸고 엘사의 말은 작은아이가 탄 채로 언니의 말을 끌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에 작은아이가 말을 타고 언니 말을 끌다가 언니 말 줄을 놓쳤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너무 무서웠다고. 그래도 엘사의 말처럼 언니의 말도 무리를 따라가려는 습성이 있어 혼자 다른 곳으로 가진 않았던 것 같다.
언니의 말을 끌던 작은아이는 중간에 엘사가 타던 말에 타서 언니의 말을 끌어주었다.
욜링암은 춥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땐 남방을 벗었다. 고작 내가 남방을 입으나 벗으나 무슨 차이가 나겠냐마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을 타니 말이 모여있는 곳이 나왔다. 거기서 내려서 더 깊이 걸어 들어간다고 했다. 말에서 내려 엘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고, 우리는 다같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욜링암은 365일 얼어있는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는 얼음은 보이지 않았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침게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요새는 여름이 되면 얼음이 녹는다고 설명해주었고 실제로 우리가 도착하기 1~2주 전까지는 물이 얼어있었다고 했다.
인간은 평생 각종 동식물을 먹어치우고 이산화탄소를 뿜어댄다.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정도를 넘어서는 양의 열을 만들어내고 자연이 감당하기 힘든 물질들을 버려댄다. 그러다 지구의 생태계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죽는다. 이런 인간이 해충인 모기와 다를 게 뭘까. 적어도 모기는 자연을 파괴하진 않는다.
인간은 그저 그렇게 배설하며 사는 동물일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이러는 나도 친언니가 아보카도가 물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아보카도를 먹지 않을 때 전혀 개의치 않고 아보카도 샐러드를 사 먹을 만큼 자연친화적이기보단 자연파괴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답답해졌다. 어쩌다 인간은 이렇게까지 잔인해진 것일까.
다시 말을 타고 돌아오는데 다른 일행을 데려오는 아이와 합류했다. 그 아이는 3마리의 말을 끌고 오고 있었었는데 (각 말에는 물론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안장 없이 그냥 앉아서 쉬지 않고 떠들면서 우리와 함께 갔다. 우리를 끌어주는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그 아이의 말에 웃기도 하고, 맞장구도 치는데 영락없는 개구쟁이들이었다. 그러다 그 아이가 말에게 무언가 잘못했는지 갑자기 말 목을 끌어안으며 "미안해~"비슷한 말을 하며 쓰다듬는데 그 모습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대하듯 굉장히 순수하고 좋아 보였다. 우리 말을 끌어주던 큰아이와 작은아이도 말에 팔을 기대기도 하고, 잘 따라오지 않았던 말에게 투정 부리듯 이마를 '콩'하고 치기도 했는데 물론 생계를 위해 말을 끄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말을 대하는 그 모습들이 동물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낙타 주인과는 굉장히 대비되는 모습이어서 낙타를 탈 때 이 아이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침게는 돌아오는 길에 우리와 함께 가다가 갑자기 혼자 말을 타고 '달려갔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고 이야기하니 말이 집에 가는 걸 알았는지 갑자기 빨리 가서 그냥 그대로 간 거라고 했다. 그날 밤, 게르에 놀러 온 엘사에게 몽골사람은 원래 말을 잘 타냐고 물으니 몽골사람의 몸에는 말을 잘 타는 피가 흘러서 방법만 조금 말해주면 다 잘 탄다고 했다.
나오는 길에 낙타 인형을 샀다. 입구 양쪽에 가판대가 있었는데 각각 다른 모양의 낙타를 팔고 있어서 다양하게 3마리를 사서 나왔다. 동생도 낙타를 골랐고 언니와 나는 추가로 팔찌도 골랐는데, 내 팔찌는 사막에 갈 때까지만 해도 차고 있었는데 그 뒤부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홍고린엘스 게르를 나올 때 두고 온 것 같다.
게르에 도착했다. 엘사는 물이 없어서 샤워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어제가 샤워 못하는 날이고 오늘은 샤워하는 날이었는데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하지만 한번 해 보자."라고 했다.
한번 해 보자는 게 된다는 거야 안된다는 거야. 아 몽골말. 나는 오늘 말 타서 냄새나는 날인데 어제 못 씻고 오늘 씻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고 했다. 이때까지도 뭔가 이 사람들이 게르를 일정대로 잡지 않고 마구잡이로 잡는 건가 하는 의심이 있어서 일부러 아쉬운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엘사는 "그럼 한번 해 보자. 일단 빨리 준비해서 나와. 해 보자."라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짐만 내려놓고 대충 씻을 것들을 챙겨 나왔다. 엘사의 말에 나도 급해져서 '저게 무슨 뜻이지.' 하며 해석 중인 동행들을 "어쨌든 조금이라도 물 나올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얼른 들어가라는 거 같아요. 우리 빨리 준비해서 얼른 나와요."라며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