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또 같은 음식을 줄 것 같아서 오늘은 다른 몽골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침게가 "그럼 우리 국물 있는 거 먹을까?" 하길래 바로 "네,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날은 유독 그랬다.
출발하기 전 침게에게 오늘 낙타 타고 게르 바로 사막을 오르냐고 물었는데 침게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중간에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있냐고 물었더니 갈아입을 옷을 차에 가지고 타면 차에서 갈아입을 수 있다고 했고 우리는 그 말을 믿고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차에 탔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앞으로 침게에게 일정을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아침
우유맛이 살짝 나는 비스킷에 모카향이 나는 시럽을 뿌리고 샌드위치처럼 두 비스킷을 포개 먹었다. 그리고 몽골 믹스커피.
아침은 간단하게 먹었다. 침게가 몽골 사람들은 이렇게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헤라도 엘사도 침게도 간단하지 않은 아침을 엄청 잘 먹었지 않았던가?
몽골 믹스커피는 우유 향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았다. 비스킷도 위에 소가 그려져 있어서 뭔가 했는데 일반적인 비스킷보다 더 부드럽고 우유 향이 났다. 그리고 위에 시럽을 뿌려먹었는데, 모카향이 났다. 두 개를 포개서 샌드위치처럼 해서 먹고 나니 다시 온전한 두 개를 포개 먹으면 느끼할 것 같아 하나를 반으로 잘라서 포개서 먹었다.
몽골의 정3.
오늘은 모든 길이 비포장이고 더 먼 길을 가야 한다고 8시까지 차에 타라고 했다. 그런데 헤라가 다른 팀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기다렸고, 그 팀은 8시 30분이 되어서야 차에 탔다. 우리는 엘사가 재촉해서 허겁지겁 나왔는데 쟤넨 뭐야.
왜 다른 팀과 같이 가냐고 묻자 그 팀 운전기사가 길을 잘 몰라서 헤라를 따라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첫날 길을 헤매서 잘 몰랐는데 헤라는 길을 정말 많이 알고 있었고 운전실력은 물론 차를 고치는 실력도 좋았다. 그래서 다른 팀들을 도와주곤 했다. 홍고린엘스로 가는 길에서는 다른 팀의 차가 따라올 수 있게 속도를 조절해주고 잘 따라오나 확인하는 정도여서 이 또한 몽골의 정이려니 했다.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한 일은 바양작에서 엉기사원으로 가는 길에 생겼다. 그 팀을 도와주느라 일정이 미뤄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보인 그 팀 청년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우리를 따라오던 차는 우리가 잠시 멈춰 사진을 찍을 때 같이 멈춰서 사진을 찍고 출발할 때 같이 출발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 시점부터는 길을 찾아서 우리를 따라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단위 환산 오류?
한참을 달리다 우리는 엘사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고 엘사는 30km 정도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포장이라 해도 30km가 2시간이나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차강소브라가에서도 100km 정도 남았다고 해서 2시간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배로 걸렸었다. 아무래도 km가 아닌 다른 단위를 착각하고 계속 km라고 하고 있는 것 같다.
신기루
엄청나게 긴 30km를 가던 중 저 멀리 산 아래에 흰 구름띠 같은 것이 보였다. 동생이 "저게 뭐지? 구름인가?" 하며 궁금해했고, 엘사에게 물어보니 "저게 사막이야."라고 대답했다. 멀리서 보면 저렇게 하얗게 보이는구나. 가까이 갈수록 흰 띠는 점점 모래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사막과 초원 사이에 큰 호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기 사막 가기 전에 물이 있는 거예요?"
"아니 그거 뭐지, 사막에서 원래 없는데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거. 그거 뭐라 그러지?"
"신기루?" "응 맞아. 신기루. 저거 신기루야. 실제로 가면 저기 물 없어."
엘사는 웃으면서 헤라에게 통역을 해주었고 헤라도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이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우와, 신기하다."
우리는 차 안에서 신기루를 찍으려고 했고 헤라는 차를 멈추었다. 엘사가 내려서 찍어도 된다고 해서 우리는 다들 내려서 신기루를 구경했고 동생은 신기루를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사막 아래 큰 호수가 있어서 모래산이 반사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가보니 사막 아래는 전부 다 초원이었고 무언가 반사되어 보이게 하는 것도 없었다.
그 후 우리는 게르에 도착했다. 응? 게르에 왔다고? 낙타 안 타고 바로 게르? 침게가 이야기한 것과 다른데?
엘사에게 물어보니 우선 게르에 짐을 풀고 점심 먹고 좀 쉬다가 낙타를 탈 거고, 다시 게르로 돌아가 있다가 저녁이 되면 사막을 오를 것이라고 했다. 사막은 낮에는 뜨거워서 저녁에 가까워질 때쯤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게르로 가서 짐을 풀었고 엘사가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오늘도 메뉴를 미리 알아 온 동생이 "시간 없어서 오늘 국물은 못 먹는대."라고 하는 순간 불안해졌다. 설마 또 같은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게르 캠프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점심
다행히 처음 먹어보는 볶음밥이었다. 그리고 설탕을 넣은 홍차.
식당에 가니 엘사가 몽골 전통 모자를 쓰고서 볶음밥을 나르고 있었다. 국물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볶음밥은 처음 먹어보는 요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게가 "밥 먹고 이따가 너네도 입어볼 수 있어."라고 말하며 홍차를 타서 우리에게 주었다. 홍차 맛은 특이했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밀크티 맛. 안에 뭘 더 넣었냐고 물어보니 설탕을 넣은 것이라 했다. 한국 가서도 한번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국물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완화되는 것 같았다. 볶음밥은 양고기와 당근, 오이, 감자가 들어가 있었고 맛있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헤라, 엘사, 침게는 거의 다 먹어갔고 나는 3분의 1 정도를 남긴 채 포크를 내려놨다. 그걸 본 헤라가 "다 먹어, 다 먹어야 해."라고 말했다. 엘사와 침게도 이따 사막 갔다 와서 저녁 먹으려면 9시는 되어야 하니 많이 먹어두라고 했다. 나는 조금 더 먹었지만 다 먹지는 못했다. 속이 또 더부룩해지는 것 같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설탕을 넣지 않은 홍차를 한잔 달라고 해서 더 마셨다. 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 침게와 엘사는 언니와 동생에게 전통의상을 입혀주었고, 그다음으로 나도 침게가 전통의상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전통의상을 입고 언니와 함께 게르 앞에서. 하늘이 정말 맑고 예뻤다.
낮잠, 책 읽기, 여행기 쓰기
점심을 먹을 때가 2시 정도였고 엘사는 3시에 낙타를 타자고 했었는데 점심을 먹는 도중 시간이 다시 3시 30분으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게르에서 좀 쉬고 있기로 했다. 홍고린엘스에서 묵은 게르는 차강소브라가에서 바양작까지 묵었던 게르 중 가장 넓고 깨끗했다.
왼쪽에 대칭으로 침대 2개가 더 있다. 언니와 동생이 있어서 사진은 반만.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각자 쉬는 시간을 가졌다. 동생은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보다가 낮잠을 자는 듯했고, 언니는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시간이 많이 남을 때를 대비해서 책을 3권 가져오셨다고 했었는데 우리 일정에 생각보다 시간이 없었다. 언니는 그래도 가져왔는데 조금이라도 읽고 가야지 라며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 계획은 매일매일 일기를 써 놓고 한국에 가서 정리하면서 여행기를 쓰는 것이었는데 첫날 오케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쓴 것을 제외하면 일기장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이러다가 까먹을까 싶어 잠깐잠깐 핸드폰에만 짧은 단어들로만 메모를 해 놓았었는데 지금 시간이 난 김에 정리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일기장을 펴고 차강소브라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핸드폰에 메모해놓았던 것들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 3시 30분이 되었고 엘사가 게르로 들어왔다.
"낙타들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대. 그래서 우리 4시 30분에 낙타 타러 가자. 미안해."
몽골의 날씨, 길 상태, 그리고 몽골 사람들의 시간 개념 상 항상 정확한 시간에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던 차였기에 일정을 아예 빼먹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었는데 엘사가 미안하다고 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그 단어를 말하는 것은 물론 듣는 것은 더더욱 어색하다.
우리는 그 뒤로 조금 더 쉬다가 4시 30분에 낙타를 타러 나갔다.
낙타를 탈 때 혹시나 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으니 모두 헬멧을 쓰라고 했다. 우리는 헬멧을 쓰고 장갑을 끼고 낙타 무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