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오기 전부터 낙타는 성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낙타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지 못했다. 낙타 주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동생이 손을 들었다. 낙타 주인은 동생을 먼저 낙타에 태우고, 침게, 언니, 나 순으로 낙타를 탄 뒤 그 반대 순서대로 앞에 오게 줄을 세우고 각 낙타들을 줄로 연결했다.(나-언니-침게-동생 순으로 줄을 서서 갔다.) 낙타를 타기 전에 혹시나 뒤에 있는 낙타가 다리에 코를 비벼도 그건 그냥 간지러워서 그런 것이니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했다.
코를 비비는 언니 낙타, 재채기를 하는 침게 낙타
출발하기 전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내가 낙타 코 위에 연결되어있는 줄을 잡고 있는데 낙타 코가 아플까 봐 줄을 느슨하게 잡으니 자꾸 앞으로 가려고 했다. 낙타 주인이 나에게 줄을 더 당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당기니 낙타의 얼굴이 살짝 꺾여서 낙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언니 뒤에 있는 침게 낙타가 재채기를 엄청 크게 했다. 언니의 바지가 젖은 것은 물론 내 팔까지 침이 다 튀었다.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뒤에 있는 언니 낙타는 내 바지에 코를 비비기 시작했다. 그냥 코만 닿는 느낌은 괜찮았는데 자꾸 비빌수록 코 위에 줄을 다느라 끼워놓은 뾰족한 나무 막대기가 내 다리를 긁을 때는 조금 아팠다. 사진을 다 찍고 주인이 내 낙타 줄을 끌고 가니 뒤에 연결되어있는 낙타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가는 도중에도 언니 낙타는 자꾸만 코를 비볐고,침게에게 낙타 코 위에 있는 나무 막대기 때문에 아프다고 하자 침게가 주인에게 통역해 주었지만 주인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주인은 낙타가 코를 비비려고 하면 콧등을 손으로 만져주라고 했다. 주인이 말한 대로 낙타 콧등을 만지니 낙타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낙타 얼굴이 자꾸 내 손을 따라서 내 몸 쪽으로 왔다. 물 것 같기도 하고 침을 뱉을 것 같기도 해서 더 무서웠다. 콧등을 만져주어도 언니 낙타는 계속 내 바지에 코를 비볐고 낙타 주인은 이번엔 코를 때리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코를 때렸다가 아파서 기분 나쁘다고 나한테 침 뱉으면 그게 더 큰일이라는 생각에 차마 때리지는 못했다.
낙타는 내가 콧등을 만져주어도 계속 내 다리에 코를 비볐고, 침게 낙타는 계속 재채기를 했다.
나는 나무 막대기 때문에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서 돌아가고 싶으면 말하라고 할 때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나 때문에 더 타고 싶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 싫었기에 참았다.
가면서 이쯤이면 돌아가겠지 라는 생각을 몇 번 했지만 낙타 주인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더 간 뒤 낙타 주인은 사진을 찍어준다고 잠시 멈춰서 다시 나에게 낙타 줄을 잡게 했다. 주인은 언니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했고, 언니는 방수팩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있었는데 언니 낙타가 또 내 바지에 코를 비비기 시작했다. 내 낙타의 얼굴이 자꾸 꺾여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언니의 낙타가 코를 비빌 때 닿는 나무 막대기 때문에 아프기도 해서 언니에게 아직 멀었냐고 빨리 해달라고 했는데나중에 생각해보니 언니도 침게 낙타에게 재채기 세례를 맞았는데 너무 내가 불편한 것만 생각하고 재촉했나 싶어 미안해졌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언니 낙타는 내 다리에 10번 정도 코를 비볐고, 침게 낙타는 3번 정도 재채기를 했다.내가 언니 낙타가 다가올 때 손을 내밀어 콧등을 만져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우리는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고,침게 낙타는 마지막으로 큰 재채기를 하며 끝을 알렸다. 나중에 게르로 들어와서 언니는 "그 새끼는 정말 끝까지."라며 그때를 떠올렸는데 처음 듣는 언니의 거친 발언이 그 당시 언니의 기분을 너무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엘사에게 낙타가 코를 자꾸 비비는데 나무막대 때문에 아팠다고 하니 그것 때문에 엘사가 몇 번이고 낙타 주인과 이야기하고 싸우기까지 했지만 낙타 주인은 들은 척도 안 한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싫으면 낙타끼리 안 묶을 테니 각자 알아서 가라
고 해서 어쩔 수가 없다고.
단순히 불쾌한 것이 아니라 나무 막대기가(심지어 끝이 뾰족했다) 다리를 찔리서 아픈 것인데 그러다 진짜 다리에 상처라도 나는 사람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뭘 먹는 내 낙타, 트림하는 언니 낙타
출발하자마자 내 낙타는 자꾸 고개를 숙여서 땅에 얼마 있지도 않은 풀들을 찾아 야무지게 먹었다. 초반에 그러고 말겠거니 했는데 돌아오는 순간까지 계속 고개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풀을 뜯어먹었다. 말 끄는 아이들과 다르게 낙타 팔러 온 상인 같은 이 낙타 주인이 굶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낙타는 내 다리에 코를 비비는 것도 모자라 간간이 트림을 했는데 그 냄새가 엄청났다.
몽골에 오기 전 읽었던 웹툰: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서 낙타를 탔던 옷은 다른 비닐에 꽁꽁 싸매야 할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고 쓰여있었는데 우리가 탄 낙타는 그렇게 냄새도 심하지 않고 입고 탔던 옷도 격리해둘 정도는 아니었다.(그래도 나는 어차피 버릴 바지였기에 버렸다.)하지만 트림 냄새는 격리하고 싶었다. 언니 낙타는 5번 정도 트림을 했는데입을 벌리고 트림을 할 때마다 '그래도 침은 뱉지 마라.'라고 계속 주문을 걸었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어보니 침게 낙타도 트림을 했다고. 그리고 동생이 해 준 이야기로는 침게 낙타는 그 와중에 계속 똥을 싸면서 갔다고 했다.
걔는 트림도 하고 재채기도 하고 똥도 싸고 앞뒤로 정말.
이 또한 언니의 거친 회상이었다.
동생은 맨 뒤에 있어서 앞에 낙타들이 똥을 싸는 것 정도는 봤어도 뒤에 낙타가 없으니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었다고 해서 처음엔 무서운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작은 낙타에 태우는 것인가 했는데 줄 세우는 순서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타에서 내리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낙타 주인은 낙타들을 땅에 묻혀있는 고리에 한 마리씩 묶었다. 내 낙타를 먼저 묶었는데 갑자기 앉으려고 했다. 다급해진 내가 침게에게 "얘 어떡해요!!"라고 말하자 침게가 낙타 주인에게 내 낙타를 잡아주라고 하는 듯했지만 그 순간 내 낙타는 주저앉아버렸다. 너무 급작스러운 순간이라 몸이 흔들렸고 이러다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서웠다. 다행히 균형을 잡고 버텼고 낙타가 완전히 앉자 낙타 주인이 와서 나를 낙타에서 내려주었다.
내가 낙타에서 내렸을 때 다른 사람들의 낙타는 모두 서있었다. 옆에서는 언니 낙타가 앉을 준비를 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깔릴 것 같았다. 내 앞쪽에서는 내 낙타가, 뒤에서는 다른 낙타가 앉아서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니도 나에게 그냥 가만히 있는 곳이 좋을 것 같다고 하고 나도 무서워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자 낙타들이 다 앉고 다들 낙타에서 내린 다음 침게가 나를 낙타 무리에서 꺼내 주었다.
낙타에서 내려 게르 캠프로 돌아왔다. 우리는 엘사와 침게에게 이따 사막에서 '선셋 피크닉'을 하는 게 맞냐고 물었고 엘사와 침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몇 한국 여행사 상품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서 언니는 "사막에서 돗자리를 깔고.." 하며 설명하려 했지만 엘사와 침게는 선셋도 피크닉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사막에 올라가서 뭘 만들어 먹고 싶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굳이 피크닉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이들을 이해시키기엔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다 싶어서 그냥 "우리 사막 가서 노을 볼 수 있어요?"라고 물었고 침게는 샤워하려면 일찍 내려와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엘사는 보고 싶으면 봐도 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샤워는 조금 기다려도 되니 노을을 보고 싶다고 했고 엘사와 침게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노을 시간에 맞춰서 사막을 오르기 위해 조금 쉬었다가 다시 나오기로 했다. 게르로 들어가면서 동생이 언니에게 우리 일정에는 '사막에서 노을을 봅니다.'라고만 쓰여있고 우리가 그걸 선셋 피크닉이냐고 묻자 여행사 측에서는 "그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던 것을 말해주었다. 동생의 설명에 덧붙여 나는 그래서 피크닉은 생각하지 않았고 사실 노을만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고 언니고 그 상황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들이 피크닉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사막을 오르면서 깨달았다. 도저히 뭘 깔고 먹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런 개념 자체를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여행사의 일정에 들어있는 선셋 피크닉은 울란바토르 근처에 있는 미니 고비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