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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12. 고비사막의 고비가 그 고비는 아닐텐데

홍고린엘스(고비사막)

by HuwomanB

게르로 돌아오니 6시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었고 어제 말을 탈 때와 오늘 낙타를 탈 때 입었던 흰색 바지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원래 계획은 6시에 사막에 올라갔다가 8시에 내려와서 씻고 저녁을 먹는 것이었지만 몽골은 해가 9시 정도에 지기 때문에 사막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늦게 출발해야 했다.

엘사와 침게는 늦게 출발하면 늦게 씻어야 한다며 주저하는 듯했다. 엘사와 침게는 우리가 기다리지 않고 여유 있게 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일종의 사명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팀을 도와주느라 시간을 많이 끌었던 바양작을 제외하면 샤워를 하기 위해 기다린 적은 없었다. 내가 늦으면 물이 아예 떨어져서 못 씻을 수도 있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예 못 씻는 것이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하자 엘사와 침게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알겠다고 하며 7시에 출발하자고 했다.



사막 오르기


7시가 되자 우리는 차를 타고 사막으로 이동했다. 낙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사막은 차로 15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사막을 오를 때는 맨발로 오르는 것이 편하다고 해서 다들 양말을 신지 않은 채로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차에 탔다. 차에서 내려서 정상에서 타고 내려올 썰매를 들고 적당한 곳에 신발을 벗어두고 사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높이 300m의 고비사막. 이 사막을 오르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고비사막의 고비가 그 고비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러다 죽을 것 같았다. 처음엔 완만한 지형이라 그냥 발이 모래에 조금 빠지는 정도였지만 경사가 심해질수록 발은 모래와 함께 뒤로 밀려났고 앞으로 가기가 더 힘들어졌다. 어느 정도 올랐다고 생각했을 때 엘사는 "아직 10분의 1밖에 안 왔어."라고 이야기했고, 그 이후부터 정말 가도 가도 정상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냥 내 몸 하나 오르기도 힘든데 썰매까지 들고 있으니 더 힘들었고 초반엔 어떻게든 썰매를 얌전히 들고 가려고 했지만 결국 썰매는 지팡이가 되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도 세게 불어서 올라가다 힘들어서 앉아서 쉬려고 하면 모래바람이 얼굴과 온몸을 때려 눈을 뜨고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직립보행을 포기하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몇몇 외국인들은 신발을 신고 올라갔는데 신발을 신으면 발이 더 깊이 빠져 발을 뗄 떼마다 엄청난 모래들이 함께 들춰지며 뒤로 쏟아졌고 바로 뒤에 올라가던 내 얼굴을 계속 강타했다. 페이스를 조절해서 그 외국인들의 뒤에 서지 않으려고 했지만 쉬었다 가다를 반복하는 중에 두어 번 정도는 그들로 인한 모래 테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높이 300m의 고비사막, 그 경사는 어마어마했다.

엘사는 가장 앞에서 올라갔고, 그다음에 나, 언니가 가까운 간격으로 따라붙었다. 동생과 침게는 많이 뒤처져서 따라왔는데 침게는 계속 "더 이상 못 가겠어. 가봐야 별거 없어. 볼 거 없어. 가지 말자."라고 소리를 질렀고, 엘사는 "빨리 와. 우리 이거 보려고 왔어. 할 수 있어" 라며 크게 받아쳤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었다. 엘사는 먼저 올라가 쉬다가 언니와 내가 엘사가 있는 곳으로 가면 조금 더 같이 쉬다가 바로 일어나 올라갔다. 앞에 가는 사람이 있어야 따라온다면서 동생과 침게가 잘 올 수 있게 우리가 앞으로 빨리 가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동생과 침게가 너무 못 올라오고 자꾸 앉아서 쉬길래 '동생이 많이 힘들어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나중에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반대였다고 했다. 침게가 계속 못 가겠다고 해서 동생이 돌아가도 된다고 자기 혼자 올라갈 테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아니야, 그래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가야지." 하며 같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그러기로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힘들어서 못 가겠어. 엘사는 썰매 안 들고 가니까 빨리 가는 거야. 나한테만 썰매 들게 하고 이런 게 어딨어."라고 불평하다가 "내가 뚱뚱해서 못 올라가는 걸까."하고 자책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네발로 올라가자 동생에게 "우리도 네발로 가자. 네발로 좋은 것 같아."라고 동생을 설득하기도 했다고 한다.(동생은 두발+한 손으로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시 힘들다고 주저앉아서 쉬다가 "그래, 우리 30 발자국만 가고 다시 쉬는 거야."라고 일어나더니 "하나, 둘, 셋, 아 힘들어."하고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했는데 안 그래도 힘든 동생은 침게 때문에 웃느라고 더 힘들었다고. 게르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언니와 나는 정말 몽골에 온 뒤 처음으로 배꼽을 잡고 웃었고(한국에서도 이렇게 웃은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쳉헤르에서도 이 이야기로 한참을 웃었다. 침게는 가이드라기보다는 그냥 철없는 동행 같다며.

사실 엘사와 나, 언니의 상황도 거뜬히 오르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간격이 벌어져 앞에서 가게 되기는 했지만 10 발자국 이상을 한 번에 가지 못하고 가다가 서있다가 가다가 앉았다가 다시 가다가를 반복하며 올라갔다. 정말 한계다, 더이상 못 가겠다 싶었지만 침게가 뒤에서 "올라가도 뭐 없어!"라고 소리를 쳤던 것이 나를 더 기를 쓰고 오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침게는 다시 올 수 있지만 난 다시 못 와. 위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가서 직접 보고 판단할 거야.


나를 다독이며 사막을 계속 올랐다. 머릿속에선 평소에 잘 듣지도 않는 CCM(이래 봬도 교회를 다닙니다.)이 울려 퍼질 정도로 위로가 필요했다. 옆에는 한번 정상을 찍고 내려온 외국인들이 놀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힘들죠?"라며 말을 걸었다. 서양인들과 한 팀인 듯한 동양인의 외모를 한 사람이 영어로 말을 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교포인 줄 알았는데 먼저 한국어로 말을 걸어 조금 놀랐다. 나중에 그의 동행인 서양인이 다른 사람과 하는 말을 얼핏 듣기로는 지금은 중국에 있다고. 외국인들은 동행을 국제적으로 구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한국인들은 서로가 한국인임을 알면서도 다른 팀이면 인사도, 격려도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실제로 정상에서 한 한국팀이 우리에게는 아는 척도 하지 않다가 외국 팀에게는 마치 나 영어 좀 한다는 걸 드러내고 싶은 듯 일부러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묵는 게르의 80%는 한국인이었는데도 같은 팀이 아니면 탐색전만 할 뿐 무언가 필요한 게 없다면 일부러 말을 걸지 않는 한국 청년들의, 나의 마음의 벽이 언제 이렇게 높아졌나 싶었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이 뒤에 쓰게 될 바양작 사건에서도 우리가 먼저 인사하고 다가갔다면 예의 없는 어린 청년들의 말 때문에 기분이 나쁜 하루가 아닌 재미있는 친구들을 알게 된 즐거운 하루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들이 다가올 수 있는 길을 사전에 차단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렇게 격려도 받고, 또 다른 외국인들의 사진도 찍어주며, 죽겠다를 반복하며 오르다 보니 가도 가도 계속 멀리 있는 것만 같았던 정상이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올라오길 잘했다. 안 올라왔으면 정말 평생을 후회할 뻔했다.


모래 언덕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무수히 많은 모래 언덕들이 파도치듯 넘실거리며 끝없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경치를 감상하고 엘사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을 때 동생과 침게가 올라왔다. "고생했어."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정상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자리를 다른 봉우리 쪽으로 살짝 옮겨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침게는 8시에 내려가자고 했고 우리는 노을을 봐야 하니 8시 30분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침게는 그러면 너무 늦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엘사는 괜찮다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기다리고 있겠다며 침게를 데리고 다른 쪽으로 갔다. 우리는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며 놀기엔 이미 체력이 바닥이어서 썰매는 내려가는 용으로만 사용하기로 하고 한쪽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놀았고 그동안 다른 외국인들이 우리 썰매를 빌려서 타고 놀았다.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외국인들의 체력이 놀라웠다.



사막 썰매: 썰매 타는 법이 따로 있나 봐요


해가 지기 시작하고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을을 감상하며 있다 보니 8시 30분이 되었다. 우리는 엘사와 침게에게 내려가자고 했고 우리의 썰매를 빌려서 놀고 있던 외국인들에게 썰매를 받아왔다. 이제 우리도 저 외국인들이 놀던 것처럼 내려가는 거겠지. 경사가 급해서 무서웠지만 침게가 괜찮다며 뒤에서 밀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무서워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안 내려갔다. 아주 천천히 미끄러지는 듯하더니 멈춰버렸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언니도, 동생도 침게도 그랬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고, 잘 내려간다는 쪽으로 자리도 옮겨보고, 누웠다가 앉았다가 섰다가 별의별 동작을 다 해봤지만 어떻게 하든 정말 천천히 내려가다가 멈췄다.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타도 잘 내려가는데 우리만 이런 거야.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어져도 되는 건가.

이 경사에도 썰매는 잘 내려가지 않았지만 노을은 계속 아름다웠다.

3분의 1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 우리는 포기하고 일어나 썰매를 들고 내려가기 시작했고, 침게는 미안하다며 우리 썰매를 대신 들고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침게는 그래도 미안해서 이거라도 해줘야겠다며 우리한테서 썰매를 가져갔다. "사장님한테 이거 안된다고 말해야겠어."라고 말하며 우리보다 더 아쉬워했다. 우리가 사막을 오른 이유가 처음에는 풍경을 보기 위함보다 썰매를 타고 놀기 위함이 더 컸을지 몰라도 정상에서의 그 풍경을 본 순간 우리가 사막에 오른 이유는 그 풍경을 보기 위함으로 가득 찼는데 침게는 우리가 그 고생을 하며 올라간 것이 오직 썰매를 타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무거운 썰매를 들고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킨 것 같아 배가 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라간 순간 만일 중간에서 "위나 여기나 생긴 거 비슷한데 썰매나 타고 놀자."라고 했다면 정말 그렇게 멍청한 선택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봤으니 다 괜찮았다.



사막에서 내려오면서 침게는 샤워하는 칸이 두 칸뿐이니 한 칸에는 둘이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언니와 나뿐이어서 나는 "언니, 저 어차피 안경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여서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언니도 상관없다고 해서 언니와 내가 한 칸에 들어갈까 했었다. 차에 타서 게르로 돌아가면서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동생도 상관없다고 본인도 안경 벗으면 안 보인다고 했고, 그럼 서로 민망하지 않게 안 보이는 동생과 내가 같은 칸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로 했다.

게르로 돌아가니 차가 조금 있었다. 우리는 나오기 전에 미리 씻을 준비를 해놓고 나와서 게르에 도착하자마자 준비했던 것들을 챙겨 바로 샤워실로 갔다. 언니는 빠뜨린 게 있다고 하여 동생과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기로 했는데 다행히 두 칸 모두 비어있었다. 언니가 올 동안 동생은 언니가 사용할 칸을 맡고 있고 나는 볼일이 급해져서 동생과 내가 사용할 칸에 옷들을 걸어놓고 잠시 화장실을 갔는데 그 사이 온 언니가 내 옷들을 다른 사람이 맡아놓은 것인 줄 착각해서 한번 웃고, 우리는 무사히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몽골 1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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