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는데 엘사가 내일 7시 30분에 출발하자고 했다. 오늘 출발할 때 다른 한 팀이 같이 출발했듯이 내일도 길을 모르는 두 팀이 있어 헤라가 길을 알려주기로 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늦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늘 아침도 8시 출발이어서 허겁지겁 준비해서 차에 탔는데 길을 모르는 다른 팀이 따라오겠다고 하여 기다리느라 8시 30분에 출발했던 게 생각났다.
"그럼 그 팀도 늦지 말라고 해주세요. 오늘 우리는 빨리 준비했는데 다른 팀이 늦게 나왔잖아요."라고 하자 엘사는 "응 알겠어. 미안해~" 하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엘사가 미안하다고 하면 조금 민망해진다. 안그래도 눈치를 보고 있을텐데 괜히 더 눈치를 보게 만든 느낌이 들어서 마음 한쪽이 불편하다.
그러던 중 밖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아 안돼. 오늘 오는 내내 날이 맑아서 별이 잘 보이겠구나 했는데 사막에서 내려올 때쯤 비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고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기어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침게가 사막이 별이 제일 잘 보인다고 했는데 설마 다른 곳도 아닌 이 사막에서 은하수를 못 보는 건가.
저녁
맑은 닭국. 몽골의 국물을 맑은 국이라도 고깃기름으로 맛을 내서 기름기가 있다.
점심에 우리는 국물을 먹고 싶어서 침게에게 저녁에 라면 끓여주면 안 되냐고 물었었다. 침게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안돼. 라면 내일 먹어. 저녁 닭도리탕 할 거야."라고 이야기했었다. 닭볶음탕이면 괜찮겠다 싶었다. 라면처럼 빨간 국물일 거고, 국물도 있을 거고. 그런데 실제로 보니 닭볶음탕이라기보단 닭곰탕 같은 맑은 닭국이었다. 살짝 실망했지만 사막을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서 그런지 기름기 있는 국물이 속을 뜨끈하게 채워주는 기분이 좋았다. 싸르르 아팠던 배도 달래주는 것 같고. 그리고 첫 국물요리라 그런지 밥을 말아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 고기를 다 건져먹고 밥을 말았다. 침게가 국물 더 주냐고 해서 더 달라고 했는데 국물만 더 주는 게 아니라 고기까지 아예 한 그릇을 준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깨끗이 잘 비웠다. 한국에서는 국물에 염분이 많다고 해서 국물요리에서 건더기만 건져먹었던 터라 밥을 국에 말은 것이 몇 년 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국물요리가 이렇게 좋은 거구나.
은하수, 별 사진 찍기
저녁을 다 먹고 10시쯤 게르로 돌아가는데 비는 그쳐있었다. 비가 그쳐봐야 구름은 많이 껴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늘을 봤는데 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별들은 이미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자기들이 나오는 걸 이제야 알아봤냐는 듯이 다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빨리 에어배드 꺼내자!"
에어배드를 꺼내려고 게르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하늘을 봤는데 희끄무레한 띠가 보이는 듯했다. 은하수다! 구름은 밤에는 별빛을 가리는 검은색으로 변하는데 저건 흰색이니까. 진짜 은하수였다. 살면서 은하수를 본 적이 없어서 만약에 정말 은하수가 보이는데 내가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알아볼 수 있었다.
Milkyway. 제우스가 헤라 몰래 헤라클레스에게 헤라의 젖을 먹이려고 하다가 헤라클레스가 너무 세게 물어 젖이 분사되어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진. 오리온자리의 끝쪽이 걸쳐있는. 확실히 은하수였다.
"동생아! 저거 은하수야! 이거, 여기부터 저기까지 쭉!" 흥분해서 은하수를 따라 팔을 마구 휘저었다.
"저게 은하수야? 저렇게 생겼구나. 우와. 저렇게 생긴 건 줄 몰랐어."
"맞아, 나도 별이 엄청 많이 박혀서 반짝거리는 건 줄 알았는데 저렇게 보이는 건가봐."
은하수는 태양계가 우리은하의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있어서 지구에서 우리은하의 중앙부쪽을 보게 되면 별들이 겹겹이 겹쳐져 가장 밝게 빛나게 되는 별들의 길이니 별들이 촘촘촘촘 보이는 부분일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부드러운 우유가 흐르는 것 같았다.말 그대로 Milkyway.
미친듯이 존재감을 드러내던 별들, 그리고 은하수.
우리는 게르에 들어왔고 동생은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서 먼저 나갔다. 나는 따뜻한 옷을 꺼내 입고 에어배드를 들고나갔다. 그런데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동생아, 어디 있어?" "나 여기!"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카메라 설치하고 있었구나. 처음엔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아 서로를 찾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지 다 잘 보였다.
언니와 나는 에어배드에 바람을 넣었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냥 걷기만 해도 에어배드가 잘 만들어졌다. 맥주를 가지러 다시 게르에 들어갔다. 그 김에 이것저것 챙겨 나오려고 하는데 동생이 다급하게 날 불렀다.
"언니! 빨리! 빨리! 빨리 와 봐! 이거 봐!!!"
"뭐야? 왜? 성공했어?? 성공한 거야???"
언니와 내가 에어배드에 바람을 넣을 때 혼자 열심히 카메라를 만지던 동생이었다. 드디어 성공했구나. 첫날 별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워하고 못할 것 같다고 의기소침해하다가도 다음날 차에서 다시 모션 연습을 하던 동생, 그래 네가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함께 못 온 동기에게 보여줄 게 생겼다고 즐거워했다.
"언니, 가서 서 봐."
동생은 적당한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서서 별을 바라봤다. 처음에 검은색 맨투맨을 입고 찍었더니 바지만 나와서 다시 옷을 갈아입겠다며 게르로 들어와 맨투맨을 벗고 흰색 티를 입었다. 다들 정말 갈아입는거냐고 웃었지만 별이 저렇게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내가 검은색 맨투맨 안에 숨어있을 순 없었다. 나도 여기있다!
나는 검은색 맨투맨을 벗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동생은 자기도 찍어달라고 하면서 빛이 없어서 그냥 찍으면 별만 나오고 사람이 안 나오니까 카메라 버튼을 우선 누르고 휴대폰 후레시로 사람을 잠깐 비추고 끄는 식으로 사람에도 빛을 입혀줘야 한다고 방법을 설명해줬다. 언니와 동생도 별 앞에 선 사진을 찍고 우리는 다 이루었다며 이번엔 진짜로 맥주를 가지러 갔다.
에어배드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별을 바라봤다. 내 에어배드는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는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금방 돗자리가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게르에서 담요를 꺼내 납작해진 에어배드 위에 깔고 다시 누웠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어야지 하고 집중하고 있으면 떨어지지 않던 별이 꼭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떨어져서 '어!' 하는 순간 사라졌다.아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 소원빌기를 시도했지만 4~5번의 별똥별을 모두 '어!' 소리와 함께 보냈다.
왼쪽을 보니 달이 뜨기 시작했다. 반달이 살짝 안되는 달, 첫날엔 별을 쫓아보내는 불청객이었는데 오늘은 그 달마저 너무 예뻤다. 달이 뜨고 한 번만 더 별똥별을 보겠다고 기다렸지만, 별똥별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게르로 들어왔다. 어제 먹다 남은 보드카를 마저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아도 눈 앞에 별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내일은 바양작에 가서 낙타 인형을 살 것이다. 엘사가 우리 일정에 바양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엘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우리가 받은 일정표에도 '바양작을 지나 엉기사원을 갑니다.'라고 되어있었고 엉기사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엘사는 나에게 "바양작에서 낙타 사야 한다며? 그럼 들러서 낙타만 사고 빨리 다시 출발하는 걸로 하자."라고 했고 나는 그거면 된다고 했다. 내 목표는 낙타 인형이었으니까. 10마리 사야지. 아니 더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