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글쓰는 것이 싫어졌다

EP 0. 2022년 1월 20일, 브런치에 복귀했다

by 혜빈

며칠 전, 작가님의 글을 본지 300일이 지났다는 브런치의 구애(?)가 휴대폰 알림을 통해 찾아왔다. 그런가, 글을 안 쓴지도 벌써 3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구나. 사실 120일, 180일, 240일째에도 동일한 알림을 받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통 내키지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회사 일도 바쁘고, 해야 할 다른 일도 많았는걸. 이런 저런 일들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망설여지고, 글을 쓴다는 것만 상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것이 되돌아보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안에는 조금 더 완벽해지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실수도 많이 하고, 그것 때문에 한편으로는 자괴감마저 종종 느낀다.정확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반드시 수정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글을 쓰는 행위를 생각해보자. 내가 그동안 글을 써왔던 방식을 떠올리자면, 일단 글의 소재를 생각하고 그 글에서 나올 수 있는 메시지를 구상해본다. 그 다음에 초반에 소재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써내려간다. 최대한 재미있게. 그 다음에는 그 소재와 메시지를 연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어울리는 문장들을 조합해나간다. 중간중간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틀리지 않았는지, 문장부호는 잘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되돌아보니 이것마저 어려운 작업인데다가 하필 언론을 전공한 탓에 또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열심히 배워놓아서 내가 써내려가는 글이 괜찮은 글인지 계속 평가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 여러 통로로 조언을 구했다. 여러 조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 일단 마음대로 초고를 써보고, 이것을 고쳐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라는 조언을 채택해 다시 글을 썼지만, 내 마음대로 써내려간 초고를 또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을 뿐더러 뭔가 부족한 글이라 그 뭔가를 채워야 하지만 그 뭔가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태가 반복되어 관두었다.


늘 좋은 글만 쓸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랬으면 내가 작가로 활동했지 매일 회사에 콩나물처럼 출퇴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글의 퀄리티는 사람의 컨디션과 같아 때로는 어떻게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나오는 날도 많다. 그래,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인정하기 싫었다. 좋은 글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글을 잘 쓴다는 주변 사람 혹은 이 글을 보고 있을 이름 모를 누군가의 평가 또는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나는 내 글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고, 나의 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이런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일종의 절필 선언까지 마음속으로 했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으니 마음속으로 했던 절필 선언은 없던 일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완전히 나의 기질을 내려놓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도 '글을 쓴다'라고 하면 약간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강박 아닌 강박을 내려놓으면서 뭐라도 쓸 계획이다. 글의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다른 누군가가 나의 글이 어떻다고 판단하든 그냥 신나게 써제끼고 뒤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초고를 수정하는 것만큼 번거로운 일은 없기 때문에... 뭐 인생도 한번 살면 되돌릴 수 없는데, 글도 이런 식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브런치에 오랜만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것은 내 마음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을 모아놓는 매거진을 만든 것이다. 이 매거진에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일기 같은 느낌으로 무언가를 쓰겠다. 지금의 이 다짐이 겨울밤의 감성으로 만들어진 허세의 일종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머리가 복잡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상쾌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려고 한다.


뭐, 혹시 모른다. 진정한 명곡은 의외로 작곡가가 5분 안에 휘리릭 뚝딱해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하니, 이렇게 대충이라도 써제끼면 의외의 명작이 만들어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