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 향도 (20)
소년은 소년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라고 쓴다. 벗어나길 바라는 순간 벗어나고 싶은 울타리도 하나 생긴다라고 쓴다. _이제니, 「소년은 자라 소년이었던 소년이 된다.」 중에서
아직 늘어져 있다. 주말이란 그런 것이다. 특히나 생일 지난 일요일은 더더욱. 그렇게 한 살 더 먹었다. 만으로도 28세에 도달했다. 20년을 안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셨고 생일은 숙취에 취해 있다가 누나가 조촐하게 챙겨줬다. 단톡방과 갠톡으로 친구들의 축하와 선물 카톡이 도착했고 선물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 축하 받는 다는 것을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이제 생일이란 말에 무던해질 때도 되었지만 이번 생일은 감회가 새롭다. 나의 인생 드라마 'HIMYM'에서 테드가 처음 맞이하는 생일, 그게 만으로 스물 여덟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테드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테드는 좋은 건축회사에 소속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었고, 나의 앞날은 온갖 미지수로 가득차있다. 'HIMYM'에서의 테드 앞에도 온갖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었다. 아직 알 수 없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의 삶은 더 현란하게 출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 여전히 붙잡고 있는 기억들과 나쁜 습관들.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마음의 흉터들. 생일 날, 다시금 되새겼다. 지나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미래라고. 생일 때만 되면 나는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두 번은 나쁜 여자 때문이었고 매 년 내가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크게 느껴졌다. 이번 생일은 조금 달랐다. 있는 그대로, '생일이 되었구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긴 여정의 한 따스한 순간 정도로 기억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생일을 맞이했다.
나는 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누가 뭐라하건간에. 두 살 더 먹는게 억울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게 내 페이스라고 생각한다. 조금 늦게 가는 것을 가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회가 정해놓은 시간이 아니라 내가 정한 시간대로 걸어가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천성.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나의 중심에 있는 너무도 이기적인 나를 위해 만으로 내 생일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D+1, 그리고 D-364.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이제니의 시집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