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표현으로 규정 할 수 없는
구의 증명 / 최진영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하여 조회수를 올리고자 하는 글과 내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하고자 남기는 두 가지 정도로 방향성이 나뉜다. 오늘 쓰는 글은 후자에 가깝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다 하면 자기계발서, 업무 관련 서적 등에만 손을 대게 된다. 무언가에 시간을 쏟는 것은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 아닌 가로 가치 판단이 이루어진 것은 제법 오래전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전처럼 소설책을 읽는 빈도는 눈에 띄게, 거의 없다시피 줄었다.
근래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한다. 담백하게 적고 두세 번 읽어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럼에도 깊게 남는 문장들을 잘 쓴 글이라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분야에서든 부족함 없이 본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오래간만에 서점에 들러 소설책을 짚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자 소설책을 찾는 것을 보니 내 기준에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소설작가인가 보다.
어떠한 책을 읽을까 하다 구의 증명을 읽기로 했다. 효율만을 우선시하는 이 세상에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해내고,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애쓴다. 이 때문에 여유를 갖고 감정을 느끼며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소설로 베스트셀러라니 도대체 어떤 문장들이 적혀있을까 하는 마음에 짚은 책이었다.
책의 분량은 길지 않았고 읽는 속도는 꽤 빠른 편이었기에 1시간 정도에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난 감상은 사랑에 가까운, 다만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느낌이다. 구를 지키는 담이의 방식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영역에 무엇이었다. 담이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 짓기 죄스러울 정도이다. 작가님의 문장은 담백했고 그렇기에 더 처절했다.
결말 이후의 담이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구의 장례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이는 구를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상실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는 담이에게 남은 모든 것었고, 구를 느낄 수 없는 그 곳에서 담이가 살아갈 이유도 여력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담이는 구와 같은 세계로 갈 것이다. 서로를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내기 보다 하루라도 빨리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세계에서 다시금 만나는 것이 내게는 해피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