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Meeting, Greeting (2화)
2
천장이 부서질 듯 흔들리고 있다. 어두운 석조 건물 내부에선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고, 소녀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듯한 침대에 걸터앉아 반대편 돌무더기 옆에서 신기하듯 촛불을 바라보는 로봇을 보고 있었다.
소녀는 로봇이 촛불을 처음 보는 것인가 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게 바라봐도 뭐가 나오진 않아” 소녀는 퉁명스럽게 로봇에게 말을 걸었다. 로봇은 그런 소녀의 말을 듣고 소녀를 응시하며 무미건조하게 기계음만 내고 있었다.
“Let’s Gambling” 로봇은 촛불 옆에 조금 떨어진 작은 책장 안에 있는 낡은 책 한 권을 보았다. 소녀는 로봇의 반응을 눈치채고 희미하게 웃으며 일어나 책을 보여주었다. “이게 궁금한 거지? 알려나 이거 물만큼 엄청 귀한 건데 힛”
소녀는 자신만만하게 콧바람을 불며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무려 고대시대에서 쓰이던 동화책이라는 건데 제목이 성냥팔이 소녀야!” 소녀는 로봇 앞에서 팔을 흔들어가며 재잘재잘 설명을 이어나갔다. “엄청 슬픈 내용이라 볼 때마다 울지만 정말 좋아하는 책이야”
바람소리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로봇은 소녀를 바라보며 천장을 가리켰다. “Let’s Gambling” 로봇의 무미건조한 기계음이었지만 소녀는 로봇의 저 똑같은 표정이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 건물은 진짜 튼튼해서 이 정도는 안전해.”
로봇은 이해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꾸벅거렸다. 소녀는 그런 로봇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금발아래 선글라스 한쪽에 가려진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뻐 보였다. 로봇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이해하고 싶다는 듯이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로봇의 옆에 앉은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왜 갑자기 웃냐고? 그냥... 오랜만이라서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거든..” 소녀는 사실 로봇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봇의 반응과 누군가와 이야기한다는 상황이 외로움에 사무친 그녀에겐 경계심이 무뎌질 만큼 그 존재가 낯설 만큼 반가웠다.
그러나 소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본인을 발견하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참.. 나도 뭐 하는 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
그때 로봇은 말없이 숙이고 있던 허리를 피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내밀었다. “뭐.. 뭐야?” 소녀는 로봇의 행동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로봇이 내민 오른손엔 낡은 볼트 하나가 있었다. 그러더니 손을 휙 하고 뒤집고는 주먹을 쥐고 소녀에게 내밀었다.
내민 양 주먹 꽤 낡았지만 100년 넘게 방치 혹은 혹독한 환경에 혹사당한 로봇치곤 깨끗했다.
“고르라고?” 소녀는 로봇의 의도를 눈치채기 위해 고민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로봇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양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먹을 쥔 채로, 마치 야바위를 권유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당연히 오른손 아냐..?” 소녀는 황당해하며 오른손을 가리켰다.
“Jackpot!”이라는 응답음과 함께 로봇은 비어있는 오른손을 보였다. 촛불에 비친 로봇의 무미건조한 웃는 모습이 진짜로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오른손이 아니라고?! 어떻게 한 거야?” 소녀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로봇에게 달려들었다. 소녀의 금발이 촛불에 반사되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이제 드디어 그 나이대 여자아이처럼 보였다.
로봇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뒤집더니 그녀의 귓불 뒤에서 반짝이는 볼트를 꺼내 보였다. 소녀는 갑작스레 손을 내민 로봇의 손이 차가울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생각과 놀라운 마술에 얼굴이 빨개지며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어진 소녀의 떠드는 소리에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던 천장과 대지를 뜯어내는 듯 불어대던 바람소리가 잠잠해졌다. 잠잠해진 석조 건물 안에선 로봇의 무미건조한 기계응답음과 소녀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가득 차 있었다.
3
사막의 태풍은 살아있는 생명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바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살갗을 찢고 대지를 짓밟는다. 태풍이 지나가고 작열하는 태양도 잠잠해졌다. 태풍의 잔해가 남긴 풍경 넘어 타오르는 노을을 비추는 거대한 호수 같은 물웅덩이를 A78과 소녀가 석조건물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대지는 찢어지고 그 찢어진 대지 사이에서 빛나는 물웅덩이는 다이아몬드처럼 태양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A78은 물웅덩이에 비친 노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센서에 인식되는 광량의 변화에 시선을 돌린 곳엔 압도될 만큼 거대한 하늘이 있었고, 한 대의 로봇과 한 사람의 소녀를 가볍게 압도했다. 소녀는 노을을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풍경 나는 참 좋아해. 외롭지만 또 외롭지가 않거든” 소녀의 금발이 타오르는 노을에 반사되어 주홍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런 소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로봇은 무미건조하게 소녀를 바라고 보고 있었다. “아하하하 이해가 잘 안 되지?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는 게” 소녀는 그런 로봇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발을 구르며 웃었다.
“여기서는 누군가와 이렇게 친해지기 정말 쉽지 않아. 큰 도시라면 몰라도 이곳은 자기가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해. 때론 이기적이야. 당연한 법칙이지만 이곳에선” 소녀의 푸른 눈이 조금 쓸쓸하게 비췄다. “모두가 그래. 그래도 조금이라도 친절한 마음을 남긴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서 다들 혼자야. 하지만 다들 여기서 고군분투해. 이 사막은 그걸 말해줘. 그래서 이렇게 붉은 노을을 보면...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어. 웃기지?” 소녀는 밝게 웃으며 로봇을 바라보았다. 극한의 환경에 놓인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살아간다. 이미 꽤 여러 여정을 다닌 로봇의 눈에 비친 소녀의 웃음은 전에 봤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A78의 데이터베이스 속 ‘웃음’의 패턴은 대부분 피로와 체념으로 분류되었다. 소녀의 웃음 역시 그중 하나였다. 다만 빛의 반사율이 유난히 높았다.
고되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 노을에 소녀의 금빛 머리카락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태양에서 불어오는듯한 사막의 바람이 소녀의 뺨을 간지럽혔다. 점점 더 해는 지기 시작했고 로봇과 소녀는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바람의 방향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모래 입자 속에서 금속의 울림이 섞였다. 릴리는 표정이 굳어지며 재빠르게 땅에 귀를 대고 있었고 벌떡 일어나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거친 엔진 소리가 고개 넘어 들리고 있었다. 로봇도 즉각적으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A78의 회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었다. 1.3Km... 1.2Km... 0.9Km.. 접근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그리고 카메라로 소녀를 보았을 때 소녀는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속삭였다.
“약탈꾼들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