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보이는 단어다. 생각보다 우울이란 단어는 최근에 더 많이 보이는 단어 같다. 아미 미국의 빌리아일리시의 등장과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세계적으로 대성공하고 유행하면서부터 더 많이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나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혹은 우울감이 있다면 혹은 주위에 그렇게 의심이 드는 지인이나 가족 친구들이 있다면 바로 맨 아래로 넘어가기 바란다.
우울, 생각보다 굉장히 더 개인적인 감정이다. 사적이고 어둡고 어떻게 보면 들어내고 싶지 않은 단어이다. 요즘에는 이 우울이란 단어가 많이 쓰이면서 사람들이 더 본인의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계기가 많아지기도 하는 거 같다. 그러나 이제 또 어떤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에 대해서 그저 유행하는 단어 혹은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울증이란 허상이고 그런 것은 그저 자기변명이라는 거다. 그저 이기적으로 우울이란 단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저 잠깐의 불안감을 우울이라고 착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알아본다면 우울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볍지도 그리고 가짜도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같으면 이 방면의 거인들의 그림자를 살짝 들여다보고 싶지만(프로이트, 융, 아들러, 빅터프랭클 등등) 이 글은 조금 더 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조금이라도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시켜주기 위하여 글을 쓴다.
우선 우울한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착각하는 게 우울증이다. 우울하면 우울증이냐고 바로 필터 없이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울감과 우울증은 많이 다르다. 물론 둘 다 어두운 심연에서 오는 감정들이지만 우리가 파도를 쓰나미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 원인과 영향, 시간 그리고 증상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상담을 해오면서(지금은 안 하지만) 가장 많이 본 유형은 내가 우울증인지 모르는 유형들이다.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 받아들이는 유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은 정말로 병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하더라도 병이다. 약을 처방받지 않으면 위험하고, 골든 타임을 놓치면 만성까지 가게 되는 병이다. 우울감은 조금 다르다. 물론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가 우울감이지만 잠깐의 우울감 하나만으로는 우울증이라 하지는 않는다. 굉장히 복합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고 우울감은 그중에 하나이다. 시간에 따라 우울감의 정도의 척도를 나누기도 한다. 그저 누구에게나 오는 우울감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하루만 지나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될 수 있고 이런 감정을 우울증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감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면 병원에서 검사를 추천하는 편이다. 이런 우울감은 꽤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이별, 실패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증상들이고 이런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잠시나마 우울증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진짜 우울증의 우울감은 어떻게 보면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다. 호르몬으로 이미 충분히 예민해져서 터지기 직전의 우울감이 별 이유 없이 터지거나 아니면 사소한 일상적인 이유에서 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풍선과 다르게 터진다고 이게 해소가 되지 않고 그 터지는 기분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나는 이런 증상들을 겪는 사람들의 자해를 많이 보았다.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목을 그으면 자살시도라고 생각하는 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행위 자체는 시도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행위도 종류에다라 다르게 본다. 우선 나는 자해를 감정의 폭풍과 불안의 폭풍에서 분노의 폭풍에서 본인이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그 선택을 본인이 하지 않는다. 대부분 몰아치는 감정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고통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위사람들에게 힌트를 주는 것과 같다. "더 이상 이러고 싶지 않다고, 이런 감정을 반복하기 싫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런 증상이 있으면 내원치료를 받는다. 여기서 내원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을 느끼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과 달라지고 멀어진다는 것은 과거의 인간의 본능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기에 본능적으로 그러는 것인데 이럴 때는 정말로 주위에서 잘 보살펴 줘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을 봐줘야 하고 대해줘야 할까? 나는 오히려 특별 취급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더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주위에서 오는 동정과 걱정의 시선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긍정적인 시선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땐 주위의 시선이 왜곡되게 보이고 그 왜곡된 시선으로 인지를 하면 점점 더 주위에서 멀어진다. 정말로 그런 병이다. 이게 성격이 삐뚤어져서도 피해망상인 것도 아니다. 정말로 인지를 왜곡되게 보일 수밖에 없게 뇌가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세상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되고 그 왜곡된 시선은 세상과 멀어지게 만들고, 그 왜곡된 세상에서 나의 대처능력이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두려워지고, 점점 세상과 단절되어 가고, 외로워진다.
이 왜곡된 시선은 각자 다르며 그렇기에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끼리도 서로 이해를 못 한다. 그저 같은 스펙트럼의 증상들을 볼 때 그토록 그리워하던 유대감을 느끼게 되어 이해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거지 정작 왜 그런지는 서로 모른다. 나는 그만큼 세상이 외로워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부모님 세대처럼 서로를 사랑하며 아낌없이 그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랑의 감정의 양은 같다. 그러나 개인화된 사회와 도덕적인 높은 경지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사랑을 주기는 친구와도 가족과도 쉽지가 않다. 모두가 너무 똑똑해지고 나의 우울은 약점이 되어간다 생각을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도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산책 그리고 밥, 애정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능력만 있다면 이들은 엄청난 애정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주인은 세상의 전부이기에 거기서 오는 애정과 내가 애정을 쏟아부어도 된다는 안도감 거기에서 오는 시너지가 반려동물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에 사랑을 받던 판다 푸바오가 중국의 본토로 다시 떠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슬퍼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를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웃기도 하였다.
나는 점점 사회가 더 외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감정을 공유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점점 줄어들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성의 능력치가 점점 높아질 때 오는 그 간극에서 사람들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하고 있고 나는 그 유명한 장면들도 그 이면을 잘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고, 점점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피곤한 사회성의 능력치는 점점 높아졌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적인 능력치와 더불어 사회적인 능력치를 바라는데 개인화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 그 간극은 극복하기 힘든 난관이기도 한다.
물론 그 난관을 간단하게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점점 일은 고통스러워지고 외로워져 간다. 그 외로움은 꽤 크고 그 공백을 음식으로 채우거나 반려동물로 채우거나 아니면 푸바오처럼 감정을 이입하여 동물이나 심지어 무생물에게 이입을 한다. 이런 인간의 행동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인간은 무생물에게도 애정을 줄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혼자라는 생존에 최악의 상황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외로운 세상에서 우울감을 과거와 다르게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었다고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울증이 적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추산되지 못했던 거뿐이다. 그리고 높은 도덕적인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만큼 개인화가 되지도 않았고 공동의 생활에서 서로 도와주며 살았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생겨 소속감을 가지 되는 사람들에게 소속이 없어지는 불안이란 오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과거와 다르게 굳이 공동체에 들어가 서로 도와주며 살지 않아도 개인의 경제적인 능력이 더 커지게 되었고, 교육의 수준과 더불어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적인 능력도 높아져 갔다. 그렇게 개인적인 생활을 들어내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되는 시대가 되었고 아주 오랜 시간 공동생활에서 활동한 인간의 본능에 어긋나는 생활에 기본적으로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외로움은 곧 불안이 된다. 외롭다는 건 생존에서 안 좋은 상황이고 그 상황은 불안이 되는데 이런 불안이 지속되면 우리는 불안증이라고 한다. 불안증은 정말로 이유가 거의 없다. 대표적인 병이 바로 공황장애다. 공황장애는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을듯한 기분이 드는 증상이라고 표현되는데 대중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설명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보자면, 당연히 불안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이유가 있었으나 그 불안의 이유가 해소되었어도 심장 박동이나 식은땀 혹은 과호흡 같은 증상이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몸이 반응에 계속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우울증인 사람들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왜곡된 시선에서 오는 불안은 더욱 왜곡되어 거대한 불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으면 본인이 무력하게 그 모든 상황을 맞닥트릴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거기서 오는 불안이 더 우울증과 무력감을 키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증상들을 해소할만한 커뮤니케이션 그룹조차 없으니 악순환은 계속된다. 어떤 이들은 인터넷이 있지 않냐고 하지만 익명에서 오는 폭력성은 안 좋은 영향을 더 주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우울증이거나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방법은 병원을 가는 것이다. 혼자가 두렵다면 친구와 같이 가도 좋다. 가족들이 알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에 오히려 이럴 땐 친구나 선생님 그저 손에 닿을 수 있는 누구든지 간에 연락을 취하는 게 좋다. 나는 갑자기 가출한 후배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간 적도 많다.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우선 가보는 게 맞다. 우울증은 극복이 되는 병이 아니다. 자연치료가 아니라 전문의의 치료가 필요한 병이다. 심지어 골든 타임이 있기에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런 증상들이 의심된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호르몬에서 비롯되는 거고 당신의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생각보다 호르몬은 상황을 최악으로 왜곡시킬 때가 많다. 그 환상에 잡아먹히지 말고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바란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약이 효과가 없다는 낭설은 믿지 말기 바란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연구가 되어왔고 그만큼 현대 의학에서 다루지 못하는 병이 아니다. 정말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만약 주위에서 친구나 가족이 의심이 된다면 꼭 내원을 같이 해주는 게 좋다. 정신과로 가는 그 길은 굉장히 험난하다.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두려움과 사회적으로 꺼리는 분위기 때문에 가기를 대부분 주저한다. 그저 당신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증상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걸 인식시켜주고 손을 꼭 잡고 가주면 좋다. 상당히 인내심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선의를 당신이 보여줄 수 있다면 세상은 몰라줘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영혼이 안다. 선의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그 온기 있는 손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귀해진 요즘 같은 세상에서 한 번만 이라도 그 선의를 보여준다면 나는 존경받을만하다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있거나 불안하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생각은 오래 하는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오래 하는 생각을 깊은 생각이라 하지 않는다. 그저 고민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이다. 깊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 원인과 근본을 알아내고 거기서 해결책을 내놓고 그 생각을 멈춰야 한다. 그게 깊은 생각이다. 이미 해결책이 뚜렷하거나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 단순함이 필요해지는 시대가 되었고 너무 불안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결이 단시간에 안 되거나 시간이 걸린다면 지금 바로 앞에서 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생각하면 된다. 모든 문제를 갑자기 다 해결할 수는 없기에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가면 된다. 당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왜곡된 시선이 당신이 모든 문제를 무기력하게 다 받아들이고 파멸의 길로 들어설 거 같지만 생각보다 당신은 가진 무기들이 많다. 용기는 바로 생기지 않는다. 만화처럼 소리 지른다고 갑자기 용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움직이려는 그 마음, 무기를 찾아보고 발버둥이 곧 용기가 되고 정신 차리고 보면 그 불안들은 하나같이 보잘것없는 먼지 같은 것들이다. 운동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침대에서 벗어날수 없다면 우선 생각의 양부터 줄여야 한다.
만약 이 말이 의심된다면 문제를 하나 내주고 싶다.
2024년 4월 28일 12시 58분에 당신이 했던 불안이나 우울의 이유가 기억이 나는가?
당신의 마음은 그런 먼지들에 쌓여있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외로운 세상은 더 외로워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챗GPT 하고도 이야기를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모든 말에 긍정을 해주는 녀석이기에 반려동물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수단을 써서 외로운 세상에서 덜 외롭기를 그리고 나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