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Next Bet(1)
9
한 밤동안 어둠에 식혀진 대지 위로 태양이 다시 뜨겁게 달구는 시간.
릴리와 A78은 떠오르는 태양의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었다. 어제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릴리였다. 그녀가 A78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지금도 그녀의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지만 묘하게 계속 광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내...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줬어’
릴리의 금발에 가린 뺨이 태양에 빨개진 건지 A78은 쏟아지는 햇빛을 손으로 가려주었다.
“아 고마워 헤헤.. 조금 덥네”
릴리는 땀을 닦으며 멀리 보이는 아지랑이 너머를 가리켰다.
“이제 곧 마을이야! 마치다 아저씨가 어떤 표정일지 벌써 기대되는데?”
릴리는 신이 나게 아지랑이 넘어 보이는 마을을 가리켰다.
“Jackpot!”
A78의 기계음이 잘 안 들릴 정도로 마을 안 시장은 시끌벅적했다. 릴리는 당황하는 듯 보이는 A78을 보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너도 깜짝 놀랐지? 여기가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큰 시장이야! 여기서 나는 식료품을 사 와 좋은 물건이 나오기도 하고”
릴리는 로봇에게 자랑을 마음껏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몸짓이 A78에겐 빛의 반사율이 더욱 높아 보이기만 하였다.
“여기서는 항상 입 조심해야 하지만 너니까 상관없으려나 하하하하”
릴리는 어리둥절해 보이는 로봇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느새 그들은 작은 식료품점 앞에 서 있었다.
“마치다네 만물점! 그래도 이 도시에서 나를 피하지 않는 마치다 아저씨네 가게야! 히히 아저씨 저 왔..! ”
A78의 렌즈 속에 비친 건 가게 안, 이글거리는 휘광과 곰 같은 그림자가 보였다.
10.
“아얏! 아팟!”
갑자기 옥수수가 날아와 그녀의 머리를 강타하였다.
“어이!! 릴리 이 녀석 어제 무슨 짓을 한 거야!”
가게 안에서 마치 곰처럼 거대한 남자가 여우처럼 재빠르게 나와 그녀와 로봇을 안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이밀었다.
“ㅁ... 마치다 아저씨 숨 막혀요...”
“크리피 페이스 녀석들 하고 엮이지 말라니까 무슨 짓 당한 거는 아니지? 이 로봇이 소문의 로봇이냐?”
릴리의 고통 섞인 대사를 들어도 ‘마치다의 만물점’ 주인인 마치다는 그녀와 로봇을 안고 번갈아보며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릴리에게 상처가 없는 것을 보자 조용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에휴... 아저씨 죽는 줄 알았잖아요, 참.. 근데 벌써 소문이 난 거예요?”
릴리는 숨을 들이쉬며 마치다에게 물었다. 마치다의 눈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A78은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흔히들 겪는 불안이라는 감정과 걱정이라는 감정이 뒤섞인 눈이었다. 그러나 어젯밤 잭슨이 보여준 눈빛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 알잖니 사막의 소문은 모래 폭풍보다 빠르다는 걸. 이미 오늘 이른 새벽부터 금발의 마녀가 잭슨을 때려눕히고 잭슨은 오늘 아침까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죽었다 뭐 소문이 무성하더구나”
“죽이지 않았다고요!”
“그래 나도 알아 만약 그랬다면 네가 이렇게 무사히 올 리가 없겠지. 그래도 오늘은 얼른 돌아가야 해. 이미 크리피 페이스의 똘마니들이 같잖은 복수니 머니 하면서 돌아다니더구나”
“아저씨가 있어도요?”
릴리는 마치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다는 그런 릴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래 이번건.. 꽤 큰 모양이야 잭슨은 떠오르는 신예였고, 퍼플헤어가 녀석을 꽤 뒤에서 밀어준다더구나”
“그... 그 정도 녀석이었다니..”
릴리가 사색이 되자 마치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시장 안에서만큼은 너네들은 안전할 거야 하지만 알다시피 여기까지 만이고 중립지역인 이곳을 벗어나면 내 손을 벗어나는 거 알잖아. 그러니 지금이라도 마을에서 사는 게..”
“아니요 괜찮아요 아저씨 그건...”
“아직 그 일이 잊히지 않은 거니..?”
마치다는 살짝 떨고 있는 릴리를 보다가 옆에 조용히 서있는 로봇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 인가? 어제 릴리 옆에 있었다던?”
마치다의 눈빛이 살짝 돌변한 그 짧은 순간을 A78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몸을 일으켜 로봇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마치 경계심을 가진 곰과 같았다. 언제나 사막에서 로봇은 적이기에 A78에게도 오히려 이 상황이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봐! 정말 고마워! 하하하하하!”
갑자기 마치다는 A78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Let’s Gambling”
A78은 계산된 행동과 다르게 행동하는 마치다를 보며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어쩌면 처음 겪어본 반응이기에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된 매뉴얼을 뒤져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 도박을 하자고? 이상한 녀석이네 하하하”
“이 녀석은 말을 못 해요 아저씨”
릴리는 마치다의 오해를 바로 잡으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음음 역시 크리피 페이스가 또 패악질을 부리려고 했던 거고.. 하마터면 너네 집을 들킬뻔한 건데 마침 저 로봇이 너를 도와줬다라... 이 말이지?”
“네 그렇죠”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 천천히 A78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마치다가 헤벌쭉 웃어 보이더니 로봇에게 달려들었다.
“하하하하하하 이 녀석 제법이잖아!”
마치다는 가벼운 로봇을 안아주며 뱅글뱅글 가게 안에서 돌았다.
A78은 초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이런 이상한 상황이 위험 상황이라 인지하지 못하였다, 사막의 아침 햇살이 작은 만물점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11
릴리는 콧바람을 내뿜으며 시장 길목을 A78과 걷고 있었다. 만물점에서 릴리는 마치다의 일을 도와주고 싶다 하였었다. 마치다는 극구 거절했지만 기분이 좋아진 릴리에게 당해낼 수 없어 작은 심부름을 부탁하였다.
‘릴리 오늘은 얼른 돌아가거라 그리고 자네 릴리를 잘 부탁해’ 마치다는 A78의 어깨를 강하게 쥐며 말했었다.
“참 마치다 아저씨는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참”
릴리는 힘차게 시장의 골목을 활보하고 있었다. A78의 렌즈에 비친 시장은 왁자지껄했고 여러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양아치, 선량한 사람들, 소시민들, 뛰어노는 아이들, 구걸하는 사람들.
“꽤 슬프지..? 저기 말이야”
릴리는 슬픈 눈으로 어린아이들이 단체로 구걸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도 어릴 때 저렇게 자라왔어. 정말 어린아이가 겪기엔 끔찍한 경험이었지.”
릴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히익! 로봇.. 그리고 마녀’ 라며 경계하였다. 그녀는 품속에서 방금 마치다 가게에서 받은 음식들 일부분과 물을 나눠주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돈을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네가 이 아이들의 대장이구나? 여기... 많지 않지만..”
그때 가장 나이 많은 남자애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만지지 마! 너... 마녀 맞지? 너랑 엮이면 죽음이 찾아온다는 거 알아! 야 너네들도 받지 마!”
소년은 동생들이 받아 챙긴 물과 음식들도 빼앗으려 하였지만 이내 아이들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형아.. 나 너무 배고프단 말이야..”
“오빠 나도..”
“이.., 이 녀석들.. 쳇”
릴리는 그런 소년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이 음식들이라도 받아줄래..?”
그때 곁에 있던 A78이 돈을 주워 소년을 형아라 부르던 작은 꼬마 남자애에게 다가갔다. 꼬마 남자애는 그런 A78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Let’s Gambling”
“뭐라고 하는 거야? 형아?”
“이 로봇이 무,,, 읍”
릴리가 A78의 의도를 알았는지 소년의 입을 막고 말을 가로챘다
“로봇이 너랑 놀고 싶은가 본데”
“푸핫 너 무슨 짓이야!”
“잠깐만 봐줘 내가 준 것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릴리는 소년을 째려보았고 소년은 기죽은 듯이 바라보았다.
A78은 오른손에는 돈 그리고 왼손에는 빈 손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손을 마구 섞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빨랐다. A78 앞에 있는 소년의 눈이 빙글빙글 돌며 ‘어지러워,..’라며 비틀거리는 듯 보였다.
A78을 어젯밤과 똑같이 멈추었다. 오른손에 대놓고 동전의 소리가 들렸다. 주위 아이들이 수근거렸다. 소년은 손가락을 깨물고 있었다. 로봇의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걱정과는 다르게 어린 소년은 환하게 웃고만 있었다.
“로봇 형아.. 오른손이지?”
“Jackpot!!!”
A78은 깜짝 놀라는 모션과 Jackpot 전용 카지노 효과음을 내며 손을 펴주어 동전을 보여주었고 릴 리가 전해주려던 돈들 나머지를 이 장면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소년에게 전했다.
“Jackpot!”
“뭐... 뭐야..? 너 바보 아냐? 속이려면 속일 수 있었잖아”
“아니 이 녀석은 그런 거 할 줄 모르더라고”
릴리는 뒤에서 웃으며 A78의 허리를 팔꿈치로 툭툭 찔렀다.
“힘내라!”
릴리는 이미 정오의 태양보다 환한 미소를 보이며 소년을 응원하였다. 소년은 부끄럽다는 듯이 릴리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릴리가 떠나간 이후 작게 속삭였다
“고.. 고마워”
그렇게 릴리는 마치다의 심부름을 마치고 시장을 벗어나던 중이었다. 시장의 그림자가 그들을 비쳐주지 않았을 때쯤 이였다.
“뭐..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릴리는 방금 소년과 소녀 무리에서 A78과 도박을 했던 소년이 A78의 코트 자락을 잡고 따라오던 것을 발견하였다.
“헤헤 로봇 형아, 금발 마녀 누나 따라왔어”
“Jackpot!”
어린 꼬마의 해맑은 대답에 릴리를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A78은 그런 소년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