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픈 걸까, 위험한 걸까
1990년 중반 이전에는 밴드 음악의 시대였다. 그러나 기획사 출신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고, 기존 밴드 음악과는 다른 공격적인 마케팅과 홍보, 뮤직비디오, 전자음의 도입 등 새로운 물결이 흘러들어왔고 대중은 열광했다. 수많은 스타들이 이때 나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릿보이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팝의 시대가 스타들의 이름아래 터져 나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팝음악 중심의 세계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 장르가 꿈뜰거렸다. 바로 힙합이라는 장르다. 힙합은 1970년대 브롱스크 빈민가에서 탄생한 파티 음악이다. 아직은 소수의 마이너 한 장르였지만 1990년대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과 함께 힙합은 대중들에게 이름을 날렸다. 서부의 투팍, 닥터 드레, 스눕독 그리고 동부의 비기, 우탱클랜, 나스 등 굵직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팝 기획사처럼 본인들만의 레이블을 구성하고 시장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맛보았다.
장르의 발전은 스타들과 함께 하는데 이런 스타들의 등장으로 힙합이라는 장르에서는 계속 수많은 인재들과 천재들이 대거 유입된다. 언제나 백인 음악의 시대 같았던 미국의 시장이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의 아티스가 있었다. 그는 현대 음악의 거대한 기둥이자, 지금도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래퍼, 프로듀서, 아티스트, 사업가로서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남자, 바로 칸예 웨스트다.
1996년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제이지의 6집 The Blueprint로 성공을 맛보았는데 이 앨범에서 5곡을 프로듀싱하였다. 이렇게 이름을 알린 칸예는 2004년 The College Dropout 본인의 정규 1집을 시작으로 그 전설적인 커리어가 시작된다. 완벽주의라는 말이 생각날정도로 정교한 프로듀싱과 더불어 샘플링이 아예 새로운 노래로 탄생을 시켰는데, 힙합과 팝의 경계를 허물고 성공한 이 앨범을 지금까지도 많은 칸예 웨스트 팬들은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나에게 이 앨범이 칸예의 첫 앨범은 아니었지만 칸예웨스트라는 사람을 알고 빠져들어 이 앨범을 다 들어 봤을 때 그 전율을 아직 잊지 못한다.
It was more like spoken word, 'cept he's really puttin' it down?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만 하면서, 랩은 또 완전 제대로 하네? -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Through The Wire에서
칸예는 승승장구한다. 정규앨범에서 그가 보여준 음악적인 시도들은 당시에 너무 앞서나갔지만 결국 시대가 그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 현재의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의 자취가 안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보자면 3집의 808s & Heartbreak의 그의 시도는 오토튠의 활용과 감정선 중심 구성으로 현재의 얼터너티브 R&B를 비주류적인 장르에서 메인스트림까지 끌어올린 앨범 중에 하나다. 또 다른 예시로는 2013년에 나온 칸예의 6집 Yeezus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비트와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해서 멜로디를 거의 넣지 않은 실험적인 앨범으로 힙합이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혀줬으며,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같은 경우는 6집과 다르게 맥시멀리즘의 정수를 여실히 보여준 앨범이다. 오케스트라, 합창단, 샘플링, 기타, 신스, 피아노 넣을 수 있는 모든 악기들을 모두 넣어 사운드가 꽉 차 있지만 아름답게 조화되는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5집과 6집은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버리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앨범이자 대작을 뽑을 때 항상 5손가락 안에 뽑는 앨범 중에 하나다.
I guess every superhero need his theme music
모름지기 영웅이라면 그에 걸맞은 OST가 필요하지 않겠어? - 5집 Power에서
특히 5집은 칸예 웨스트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그가 궁지에 많이 몰렸을 때 나온 앨범이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본인이 상을 타지도 않았는데 미국의 대표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려던 순간 그가 난입한 거다.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앨범을 준비하였고 앨범이 발매된 이후로 그에 대한 여론을 뒤집히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때부터 칸예의 정신적인 불안감이 그의 조울증을 점점 그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5집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조울증의 에너지를 창작에 활용해 역사적인 명반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성공이, 오히려 스스로를 오해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칸예 웨스트는 조울증을 치료받은 적이 있으나 그는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창작에 도움이 안 되는 거 같다 말하며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는데 사실 정신질환의 치료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행동이다.
조울증은 대표적인 기분 장애 중 하나로, 정신질환에 포함된다. 정식적인 명칭으로는 요즘에 많이 알려 DSM- 5 기준 양극성 장애이고 혹은 양극성 정동 장애라고 불린다.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질환 중에 하나고 자해율도 굉장히 높은 질환 중에 하나다. 이전 글에서 우울증에 대해 다뤄본 적이 있다. 우울증의 무서운 점은 뇌가 고장이 나서 우울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고 신체적인 증상과 함께 본인을 사회와 단절시키는 무서운 병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 조울증은 우울증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며, 충동성과 자살위험 측면에서 더 높은 위험을 보이기도 한다.
우선 조울증의 조증은 독립적인 병명 같지만 사실 양극성 장애의 증상 중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이 병은 재발률이 굉장히 높고 만성적이라 정기적인 약물치료가 굉장히 필요하다. 조증 삽화(갑자기 특정 성향이 발현하는 일)가 보이는 환자들은 사고의 왜곡이 발생하는데 치료를 거부해도 "증상이 더 완화된 거 같아"같은 망상이 따라온다. 칸예웨스트가 이런 조증의 질환의 일부를 잘 보여줬는데 조울증의 치료가 본인의 예술성을 해친다고 하여 치료를 거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증’이란 이름 때문에 즐겁기만 한 병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 흥분이 비정상적으로 지속되는 상태다.
I hate being Bi-Polar. It's awesome
난 조울증이 싫어. 근데 이건 멋져
칸예의 조울증에 관한 태도를 보여주는 8집 앨범의 커버 문구
조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으로 인해 현실감각 저하, 과도한 자신감, 충동성 등이 나타난다. 칸예 역시 이런 조증의 질환을 이용하여 본인의 예술적인 영감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일들만 있다면 병이 아니다. 조증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충동 조절이 안된다는 것이다. 즐거운 기분만이 아니라 우울감, 분노, 불안등 공격적인 감정들도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증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사회적인 룰을 신경 쓰지 못하고 마치 술에 취한 듯 마치 2차 세계대전 독일의 병사들이 전쟁 초반 퍼버틴을 먹고 3일을 자지 않고 프랑스로 진격하였으나 그 문제가 충동이 조절이 안된 것처럼 자기 파괴적인 증상이 동반된다.
조증은 자기 파괴적인 폭발적인 충동성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환자를 끌어내린다. 그 이후에 본인이 저질러 놓은 파괴의 행각들이 실망감을 불러일으키며, 우울증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조울증의 우울 삽화는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조증의 엄청난 충동성 이후 오는 무기력감은 조증을 앓고 있었던 환자들에게는 더 고통스럽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입원치료와 정기적인 병원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자살 및 자해의 위험이 굉장히 크기에 기분을 조절(너무 극단적인 호르몬 분비를 방지하는) 리튬 및 여러 가지고 약물을 동원한 치료를 행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에서는 조울증 환자가 그래도 과거만큼 고통을 받는 사회는 아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칸예웨스트는 이런 치료를 거부하고 본인의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해서(어떻게 보면 이건 조증의 영향도 있기에 100% 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히틀러에 관한 논란이 되는 발언들을 하였다. 이런 발언들로 원래 협업을 하고 있던 아디다스와의 관계가 바로 끊어지고, 그의 발언은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된다. 조증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가 사고 왜곡이다. 특히 조현병과 비슷한 증세들도 있기에 그의 이런 반 유대주의 발언들은 현실을 왜곡시키는 그의 정신적인 문제에서 근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조증삽화가 있는 환자들은 외부적인 정신적인 충격에 굉장히 약한데 칸예 웨스트는 미국 대통령 출마 실패 이후 킴 카다시안과 이혼을 기점으로 이런 조증 더욱 심각해지게 된다.
그의 조울증은 그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어머니 돈다 웨스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의료사고)으로 발병하였고, 그는 끝없이 이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도 한때는 가정을 만들고, 아버지가 되어 안정을 찾을 줄 알았으나 그는 조증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 하여 치료를 거부하고 결국 킴 카다시안과 이혼을 하게 된다. 그의 음악적인 커리어는 이제 예전 전성기와 같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사업의 엄청난 성공과 더불어 음반의 역시 상업적인 흥행은 이어져왔다. 심지어 아디다스와의 협업 관계도 끊어지게 되고 계좌도 동결이 되지만 본인이 직접 사업을 이끌면서 그의 천재성과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생활 부분에서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이혼을 기점으로 그가 정말로 사랑하는 아이들과의 만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나는 히틀러에게도 좋은 점이 있다고 봐요..... 히틀러는 고속도로를 발명했고, 내가 음악가로서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마이크를 직접 발명하기도 했죠. 요즘 사람들 앞에서는 히틀러가 뭐 하나라도 좋은 일을 했다고 말을 꺼낼 수조차 없습니다. 나는 그런 것에 질렸어요. 모든 인류는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습니다.
특히 히틀러도요.- 칸예가 공식적인 프로그램에서 한 발언
그리고 히틀러와 나치독일은 고속도로와 마이크를 발명하지 않았다. 그저 대중화시켰을 뿐이다. 고속도로는 이탈리아가 먼저이고, 현대식 마이크는 1876년 에밀 베를리너와 에디슨이 만들었다.
그는 엄청난 성공을 뒤로하고 외로움과 배신감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감정들이 조증 삽화와 섞이게 되어 그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을 넘어 사회로 총구가 옮겨지게 되었다. 본인만의 생각을 그저 말했다고 생각한 칸예에게 돌아오는 것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전 부인의 가족들, 그리고 본인이 성장을 도왔던 래퍼들의 외면 그리고 생계를 정말로 위협하였던, 협업을 오랫동안 해온 아디다스까지 칸예는 점점 분노를 세상 밖으로 분출하기 시작하였고, 그의 발언들은 일파만파 큰 파장이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자면 그의 발언들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기에 결국 칸예의 책임이 크다.
나에게 그는 마치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과격한 발언들을 일삼고 나치를 마치 기믹처럼 이용하는 그를 보며 충동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돌아간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가진 책임의 무게를 이제 알기라도 한 듯 그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하려고 하였다. 특히 그가 최근에 발매한 Heil Hitler라는 노래는 대놓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훅을 넣기도 하였다. 그는 흔히들 말하는 캔슬 컬처에 정면으로 반항하듯이 이런 제목의 곡을 발매하였다. 이 곡을 공개하기 얼마 전 그의 정규앨범 Bully의 초반 작업들을 유튜브에 공개하여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마치 그저 아이처럼 본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감정들을 뱉어내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그의 행보에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유대인들의 역사는 성역화가 되어있어서 함부로 비난하지도 못하고, 예술 영역의 자유는 보장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을 들을 때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어른이 되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유는 분명히 따라오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것이 따라온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따라오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가면서 만든 기본적인 규칙들인 것이다. 칸예 역시 사회의 일원이다. 아무리 날고뛰는 아티스트라 할지라도 그도 하나의 개인이다. 개인의 자유 역시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만큼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도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구급의 영향력을 가진 그라면 그런 발언들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했을 때의 파장은 예상하였어야 한다.(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꽤 이런 발언들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히틀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악인과 비교해 봐도 꿀리지 않는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다.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잿더미가 되었고, 수많은 목숨들이 사라졌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슬라브인 그리고 고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그저 그의 게르만을 위한 국가라는 과대망상에 모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면밀히 살펴봐도 히틀러의 행동은 면죄부를 줄 수가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이고 이런 행위들을 현재까지도 금기시되는 인류의 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나치의 침공을 직접 받은 유럽에서는 지금도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이제 히틀러나 나치의 두려움을 느꼈을 세대는 사회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그런 비극을 일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금기시하게 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지워내긴 그 흔적들이 끔찍하고 지워지지 않을 상처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독일 정부는 나치와 관련된 사진 자료등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고, 이는 유럽 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미국인이기에 이런 도덕적인 것과 사회적인 파장을 제대로 예상하지도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예상을 못한 것도 칸예의 오만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칸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며 분명히 병원의 도움이 필요한 조울증의 환자이다. 모든 그의 발언의 근본에서 그에게 그런 발언들을 하게 만든 충동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분명히 조울증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가치관과 사회적인 지위에서 공식적인 발언들을 이어나갈 때 그의 오만과 조울증의 영향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는것은 아마 칸예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겐 널리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엎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그의 발언도 다시 되돌릴 수 없고 책임도 그에게 있다.
이제 반유대주의는 그만둘래. 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 하나님, 내가 끼친 모든 고통을 용서해 주시길. 나는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해.
감사합니다, 하나님.
난 그냥 내 아이들한테서 FaceTime을 받았을 뿐인데 갑자기 세상을 구하고 싶어졌어...
지구 자체가 하나님의 왕국이야. 하나님은 평화를 부르신다.
평화를 나누자. 사랑을 나누자. - 최근 칸예의 SNS
현재 그는 트위터에서 본인의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였고, 본인의 행동들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의 신앙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다시 그가 데뷔앨범의 곡중에 하나인 Through the Wire처럼 멋지게 날아오를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의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 역시 조울증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아온 조울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다시한번 철사를 통해 말을 내뱉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